,"스위스는 작지만 다양한 표정을 지닌 나라다. 알프스의 숨막히는 절경이 보는 이를 압도하는가 하면 한없이 평화로운 산골 마을의 순박함이 일상에 지친 신심을 달래주기도 한다. 스위스의 다채로운 표정은 알프스의 눈 녹은 물이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호수도 한 몫을 한다. 호수가 많은 스위스에서도 중부 유럽 최대의 담수호인 레망 호수(Lac Leman)는 스위스의 매력을 여실히 드러낸다. 제네바(Geneve)를 비롯해 몽트뢰(Montreux), 베배(Vevey), 로잔(Lausanne)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명소가 모두 레망호를 중심으로 발전한 호반 도시들이다.

이중 레망 호수의 서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제네바는 유럽 유엔본부를 비롯해 고등난민사무관 등 20여 개의 정부 기관과 200여 개의 비정부기구가 운영되고 있는 국제 도시다. 제네바 시내 18만명 가량의 인구 중 38% 가량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국제 도시 제네바의 위상을 실감케 한다.


사랑이 빛나는 레망 호수

■ 스위스 속의 또 다른 스위스

여행객의 입장에서 제네바는 스위스라는 하나의 틀에 녹아 있는 다양한 민족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매력적이다. 2만7,000여명의 직장인이 프랑스에서 출퇴근을 할만큼 지리적으로 프랑스와 인접해 있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제네바는 한결 활동적인 스위스다.

하루 300대 이상의 기차가 왕래하는 중앙역(Cornavin)도 마찬가지. 중앙역과 프랑스로의 출퇴근이 집중되는 몽블랑 다리 사이는 스위스에서는 드물게 교통 혼잡과 자동차 경적 소리까지 경험할 수도 있다. 취리히가 기름칠 잘 된 시계같가면 제네바는 같은 나라의 도시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가정적이고 검소하기로 유명한 스위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퇴근 후 노천 카페에서의 수다와 맥주 한잔의 여유가 제네바에서는 그리 어색하지 않다. 해질 무렵 레망 호를 따라 곳곳에 조성된 호수 공원에서는 산책 나온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공연이 열린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동호회 수준의 공연이지만 연주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 여유롭기만 하다.

여름이면 4만 송이의 장미가 만개하는 공원 뒷 편으로는 고요한 레망 호를 뚫고 하늘 높이 치솟는 제트 분수가 활력 넘치는 제네바의 역동성을 잘 드러낸다. 제트 분수는 3월초부터 10월말까지 140m의 높이로 물줄기를 뿜어 올리며 위용을 과시한다.

제네바의 활기찬 일상은 몽블랑 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앙역에서 레망 호수가를 직선으로 잇는 이 거리에는 관광객들의 분주한 발걸음 속에서 스위스의 명물 시계 점포를 비롯한 각종 상점과 세계 각지의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제네바의 과거를 엿보고 싶다면 구 시가지를 찾으면 된다. 종교개혁의 주역인 칼빈 조각이 웅장하게 세워져 있는 제네바 문과대학 구내를 지나 마로니에 공원을 거치면 구시가지가 나타난다.

마로니에 공원에는 1770년대에 만들어진 길이 120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의자가 눈길을 끈다. 제네바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구시가지의 옛 건물들 사이에는 개신교의 성지로 불리는 성피에르 대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 중세로의 여행 그뤼에르

레망 호수 주위에는 이밖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관광 명소가 있지만 조금 색다른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스위스 중세의 아름다운 고성을 찾아가 보자. 시용성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뤼에르(Gruyere) 성은 레망 호수 지방의 손꼽히는 아름다운 고성으로 손색이 없다.

제네바에서는 기차로 2시간, 로잔에서는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그뤼에르 성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어 그뤼에르 도시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제네바에서 자동차를 이용한다면 레망호를 따라 펼쳐지는 환상적인 드라이브도 만끽할 수 있다. 잔잔한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따라 시용성이 보이기도 하고 멀리 만년설이 희끗희끗 고개를 내민다.

13세기에 세워져 수많은 귀족의 손길이 지나 간 그뤼에르 성은 리스트가 소유했던 피아노와 코로의 회화, 루이 왕조 시대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1938년 이후부터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성 내부에는 옛 성주와 함께 했던 시대별 가구와 주방 도구 등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8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다양한 건축 양식과 그림 등은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 속으로 날아간 듯 생생하다.

그뤼에르 성 인근에서는 열 기구 체험이나 헬리콥터 투어 등도 운영된다. 1분당 35 스위스 프랑(한화 약 3만원)이라는 엄청난 헬기 탑승비용만 감당할 수 있다면 산간 마을 그뤼에르 지방의 아름다운 경관은 물론 알프스 산맥의 웅장함을 한 결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스위스 글·사진=김기남 기자 gab@traveltimes.co.kr
취재협조=스위스관광청(www.myswitzerland.co.kr) 02-739-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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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네바 공원에서 공연을 감상할 때는 간혹 분위기에 젖어 긴장을 늦추는 관광객을 노리는 소매치기 범죄가 발생하기도 하니 항상 소지품 관리에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 그뤼에르는 치즈로도 유명하다. 스위스 전통 음식인 퐁듀에도 많이 이용되는 그뤼에르 치즈는 프리부르크(Fribourg) 지방이 원산지로 중세부터 지금까지 명품 치즈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뤼에르 마을에서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많은 퐁뒤 레스토랑이 성업 중이며 마을 아래에는 견학 시설과 시식 장소를 갖춘 치즈 공장도 운영되고 있다.

★ 레망 호의 몽트뢰는 세계의 부호들이 선호히는 휴양지의 하나로 매년 3월과 7월에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재즈 축제를 비롯해 8월말 음악축제 등 갖가지 이벤트가 끊이질 않는다. 종교 개혁가 보니발이 갇혀 있었던 지하 감옥이 있는 시용(Chillon)성도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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