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알벡에 살아 숨쉬는 로마의 전설

쓰러지고 부서져 시체처럼 널부러진 돌덩이를 보며 고대도시의 화려한 영광을 상상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당시의 시대 상황과 역사를 이해하고 있다면 작은 꽃무늬 조각에서도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공부(?)가 부족한 관광객에게 황량한 돌무더기 유적은 세월의 무상함을 증거하는 시간의 퇴적물 이상으로 다가오기가 힘들다.

2. 레바논 下 - 바알벡 신전과 베카계곡

베이루트에서 동북쪽으로 85km 가량 떨어진 바알벡(Baalbeck)은 로마 시대에 세워진 크고 웅장한 신전으로 유명한 역사의 도시. 레바논산맥과 안티레바논산맥 사이의 골짜기인 베카계곡(Beqaa Valley)의 최북단 1150m 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페니키아인들이 주신으로 모시던 ‘바알’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아직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알벡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과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신전을 모두 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이라는 수식어는 특별한 사전 지식이나 감정의 메마름과 상관없이 어느 정도의 감동을 보장한다는 일종의 보증서와 같다. 유네스코도 ‘세계문화유산’의 권위를 인정한 레바논의 고대도시 바일벡이 여행객에게 주는 감동은 충격에 버금간다. 무방비 상태에서 받은 충격은 크고 여운도 오래 남기 마련이다.

● 파르테논보다 큰 바알벡 신전

20세기를 전후해서 실제 발굴에 들어간 바알벡은 알렉산더대왕과 이집트의 지배를 지나 기원전 64년경 로마제국의 손에 들어가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바알신을 숭배하고 제물을 올리던 자리에는 쥬피터 신전이 들어서고 바카스, 비너스 등의 아름다운 신전이 세워진 것도 로마 시대에 일어난 일이다. 로마는 지중해와 아랍세계를 연결하는 중요 골목인 바알벡에 로마 제국의 가장 큰 신전을 세움으로서 그들의 힘과 부를 드러냈다.

바알벡에 남아있는 3개의 신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신전은 물론 주피터 신전이다. 신전 입구와 육각형의 앞마당, 그레이트 코트(Great Court), 신전 등 4부분으로 구성돼 있는 주피터 신전은 신전 건물의 크기만 측면 88m, 정면 48m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크다. 2세기 경 세워진 주피터 신전에는 22m 높이의 돌기둥 6개가 나란히 서서 당시의 웅장함을 과시하고 있다.

곁에 있는 사람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잘생긴 이 6개의 기둥은 원래 54개 기둥 중 일부였으나 나머지는 시간의 무게에 흔들리고 지진에 넘어져 버렸다.

주피터의 바로 옆에는 바카스 신전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바카스 신전은 워낙 보존 상태가 좋아 굳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는 수고가 필요없다. 거대한 주피터 신전 바로 옆에 있지만 바카스 신전은 내부 모양까지 온전히 갖추고 있어 왜소하다는 느낌 보다 또 다른 볼거리를 전한다. 이들 신전은 단순히 ‘크다’는 규모의 위용을 뛰어넘어 작은 조각 하나하나에도 예술성을 충분히 살렸다.

바카스 신전 내부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면 길 건너편으로 비너스 신전의 터가 남아 있다. 주피터와 바카스 신전에 비해 보존 상태나 규모가 미치지 못하지만 시내 한가운데에 이 멋진 신전이 있다는 점도 놀라운 경험이다. 2층 이상의 전망 좋은 식당에서는 신전의 웅장한 자태를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 로마의 빵바구니 ‘베카계곡’

바알벡에 이처럼 화려한 유물이 세워지고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베카 계곡이라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로마의 빵바구니’로 불릴 정도로 비옥한 베카계곡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레바논을 윤택하게 만드는 든든한 후원자다.

베카 계곡은 기름진 토지와 산맥에서 내려오는 샘물이 흐르는 레바논 제1의 곡창지대다. 로마가 밀을 비롯해 포도 등 다양한 농사가 가능한 베카계곡을 소중히 여겼음은 당연한 일이고 바알벡의 신전은 로마의 관심과 욕심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여러 기후적 특징으로 베카계곡은 와인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매우 달고 시원한 양질의 포도가 생산되는 데다 몇몇 와인 공장에서는 11도 정도의 온도와 적당한 습도가 유지되는 천연 동굴까지 갖추고 와인의 숙성과 저장에 이용하고 있다.

바알벡에서 40분 정도를 동쪽으로 이동하면 안자르에 닿는다. 베이루트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간의 무역로를 오가는 상인들이 쉬어가는 장소였던 안자르(Anjar)는 로마가 아닌 아랍시대의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또 다른 고대도시.

아랍 첫 왕조인 우마야드 왕조의 여름 휴양지로도 더욱 번영을 누렸으며 600개의 상점이 번성했고 왕궁과 상점터 등이 남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 파괴된 상태라 이미 바알벡을 경험했다면 별 다른 감동을 받기 어렵다.

레바논 글·사진=김기남
기자 gab@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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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바논의 식사 ★

신선한 야채 푸짐

지중해와 베카 계곡이 있는 레바논은 중동 국가 중에서 음식이 맛있기로도 유명하다. 특히 다른 중동 국가와 달리 물이 풍부하다 보니 야채가 잘 자라고 식당에서도 싱싱한 야채를 인심 좋게 내놓는다. 레바논을 비롯해 중동 국가의 식사는 여러 반찬을 놓고 밥을 먹는 우리네처럼 메인 음식이 나오기 전에 여러 가지 음식이 상에 푸짐하게 차려진다는 점에서 친숙하다.

야채가 풍부한 레바논은 음식을 주문하면 매운 고추와 배추 모양의 상추, 피망, 토마토 등의 야채가 땅콩이나 으깬 밀 등을 재료로 만든 여러 가지 소스를 곁들여 차려진다. 여기에 수프와 중국 딤섬처럼 생긴 튀김 만두, 오이지와 비슷한 맛의 장아찌류 등 전채 음식이 나오면 상이 가득 차게 되고 나온 음식들은 취향에 따라 얇은 아랍 빵에 싸서 먹으면 된다.

전채 음식으로 식욕을 돋우다 보면 고기나 생선, 볶음밥과 같은 음식이 나오는 데 양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정작 메인 음식을 맛 보기 전에 양이 차버릴 수도 있다.

중동 음식 중 양고기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꺼려하는 사람이 많지만 양갈비 구이 등은 도전해 볼만하다. 후식으로는 포도와 배, 사과 등의 과일과 차나 커피가 나오는 데 과일은 동남아시아만큼 풍성하게 나오고 커피는 매우 쓰며 차는 매우 달다.

한편, 레바논을 비롯한 중동국가에서의 점심은 보통 2시 이후가 일반적이다. 때문에 12시면 식당을 찾는 관광객들은 현지인들로 북적이는 식당 풍경을 접하지 못해도 별다른 오해는 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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