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시림과 연어떼가 만나는 벤쿠버

사실 캐나다 여행은 그저 장대한 자연을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했다. 산이 아우리 높은 들, 폭포가 아무리 웅장한 들 감동은 스쳐지나가는 것이고 남는 것은 몇장의 기념사진이 아니겠느냐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록키도 없었고 나이아가라도 없었던 2박3일의 짧은 투어 동안 가져온 추억은 록키보다 높고 나이아가라보다 넓었다. 답답할 정도로 고집스럽게 자연을 ‘고스란히’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캐나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자연과 아름답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아는 것 같다.

유서깊은 어촌 마을 스티브스톤의 따뜻한 저녁, 밴쿠버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글라우즈 마운틴의 스노우슈잉, 모든 롤러코스터를 공포를 제압하는 경비행기 탑승, 캐나다의 설봉들처럼 머리가 하얀 흰머리 독수리와 함께 했던 래프팅까지 잊지 못할 추억은 얼마든지 있다.


-연어 통조림 산업 꽃피운 스티브스톤
-벤쿠버시서 불과 10여분 ‘보웬섬 산림욕’
-100m 우뚝솟은 원시 천연 우림의 ‘위용’

밴쿠버는 에어캐나다를 통해 인천과 연결되는 관문이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이 곳에 첫발을 딛게 되지만 대부분 간단한 시티투어를 마치고는 록키산맥이나 나이아가라 폭포, 빅토리아 등지로 서둘러 빠져나가 버리곤 한다. 이런 사실이 못내 아쉬운 밴쿠버 코스트 & 마운틴 관광청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18명의 다국적 팸투어단을 눈 덮인 밴쿠터 인근의 산과 바다로 안내하고자 했다. 겨울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방 안에 웅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날선 칼바람을 당당히 맞서는 것이라나.

죙일 구름뒤에 졸고 있던 해가 동절기 근무를 마치고 재빨리 사라진 뒤에도 우리 일행은 밴쿠버 바로 아래쪽 리치몬드(Richmond)의 작은 어촌에 있었다. 연어수확과 통조림 산업으로 이름을 날렸던 스티브스톤(Steveston) 빌리지는 지금도 그 명성이 유효하다. 어촌의 부두마다 수백척의 고깃배가 정박해 있었다.

어둠속에서 그 실루엣을 파악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스티브스톤은 벤쿠버 다운타운에서 불과 25분 거리에 위치한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다. 그 세세한 역사와 뒷얘기까지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고깃배를 만들며 이 곳에 정착했던 초기 일본 이민자 가족의 집이나 농장은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의 가족사와 생활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1894년에 세워진 조지아 통조림 공장(Gulf of Georgia Cannery)은 낚시부터 유통까지 연어 통조림 제조 전 과정을 보여준다. 통조림 크기로 적당히 토막난 연어 모형들은 비린내가 날 듯 생생하다. 한국의 어촌마을과 이 곳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작은 시골마을을 그럴듯한 관광지로 개발하는 방식은 더욱 흥미로운 일이다.

경비행기를 탄다는 기대에 아침부터 은근히 설레였던 마음은 하버 에어 씨플레인(Harbour Air Seaplanes)의 경비행기를 탑승한지 2분만에 두려움으로 돌변했다. 그마나 일정한 리듬이 적용되는 롤러코스터에 비해 순간도 예측할 수 없는 경비행기의 요동은 ‘짜릿, 찌릿’을 넘어서 ‘울렁울렁’으로 마무리 됐다.

어쨌든 밴쿠버 해안선위로 시원스레 날아오른 경비행기는 조지아 해협을 돌며 설봉과 밴쿠버시, 하얀 요트가 점으로 박혀 있는 바다의 전경을 한 프레임에 넣어 주었다. 두어 바퀴 회전을 하던 비행기는 밴쿠버 서쪽 해안의 작은 섬 보웬(Bowen Island)에 일행을 놓아 주었다.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기에 딱 좋은 산책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5200헥타아르의 우림을 천천히 거니는 동안 ‘락우드 어드벤쳐(Rockwood Adventures)’사의 가이드가 이 곳의 생태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삼나무(cedar)와 미국산 소나무(Douglas fir) 등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침엽수림은 연중 강수량이 많고 온난한 서안 해양성 기후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어떤 나무들은 100m 이상의 높이를 자랑하기도 한다. 온통 푸른 이끼옷을 입은 천년의 고목들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겸손해진다.

고사목 사이로 어린 나무들이 어렵사리 뿌리를 내리며 숲은 수천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었다. 밴쿠버 같은 국제적인 도시에서 배로 불과 10여분 거리에 이렇게 원시적인 천연 우림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게으르고 평화로운 산림욕은 물살이 거칠게 내려가는 계곡에서 잠시 숨을 멈췄다.

캐나다 서부해안과 스쿼미시(Sqaumish), 프레이저(Fraser) 등의 강은 전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규모 연어 서식지로 해마다 수많은 연어들이 모천회귀의 숙명을 실천하는 곳이다. 이 힘찬 이동을 돕기 위해 가파른 계곡 옆쪽으로 연어들을 위한 계단식 통로가 설치돼 있다. 오로지 산란을 위해 먹지도 않고 거센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이 사랑스러운 물고기들은 독수리들이 겨울을 나기 위한 양분이 되어 주는 등 이 지역의 생태환경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덕 모간스 인(Doc Morgan’s Inn)에서 따듯한 스프와 야채, 고기가 어우러진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한 뒤 보웬섬을 빠져나오는 방법은 다행히도 비행기가 아니라 배였다. 차가운 바닷바람과 파도에 대비해 두꺼운 방수 작업복을 껴입은 사람들에게 붉은 사슴뿔 머리띠가 하나씩 주어지자 모두들 배나온 진짜 산타크로스처럼 보인다.

빠른 모터보트를 타고 이동하는 시웰스 씨 사파리(Sewell’s Sea Safari)는 보웬섬을 출발해 서부 밴쿠버 호올스슈 베이(Horseshoe Bay)의 시웰스 정박지에 도착하기까지 45분간 인근 바다를 질주했다. 때때로 덮쳐오는 물보라에 옷이 젖고 차가운 바람에 빰이 얼얼해지면서도 바닷가 절벽을 따라 세워진 아름다운 주택들에서 부러운 눈을 떼지 못했다.

캐나다 밴쿠버 글·사진〓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취재협조〓밴쿠버 코스트&마운틴 관광청 www.vcmbc.com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