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현장 24시는 항상 긴장감이 고조된다. 몇 년 전 오랫동안 저자와 친하게 지내온 홍콩의 한 PR회사의 대표가 “삼호의 조봉구씨를 아느냐? 조봉구씨가 김대중 정부를 통해 과거의 억울한 사연을 세상에 알리려고 하는데 법적인 일과 대미관계는 미국에서 담당할 텐데 한국의 언론에 그 실상을 알리는 일을 좀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아파트붐 초기 방배동의 삼호 아파트를 지었고 중동진출을 하여 삼호의 이름을 국내외에 떨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사라진 삼호건설의 창업자 조봉구씨! 1997년의 어느 봄날 아침, 시중에서는 조봉구씨가 사라진 것을 하나의 미스테리로 여기고 있었고 저자도 언론인으로서 의문투성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참에 조봉구씨 사건을 접한다는 호기심반, 평소 저자의 회사에 꽤 많은 비즈니스를 연결시켜줬고 오랜 기간 사귄 친분 반으로 그의 부탁을 수락하고 일에 착수하게 되었다.

저자는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여러 사정들을 밝힐 자료도 없을뿐더러 그런 의도도 없다. 다만 5공 군사정권 때 일이기에 입도 뻥긋하지 못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후 이제 때가 되었다고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그 문제를 ‘정의’(Justice)차원에서 규명하고 조봉구씨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고 나선 사람은 미국무성 산하기관의 고위 공무원 제프 씨브라이트(Jeff Seabright)씨, 그는 조봉구씨의 딸 조영애씨의 남편이었다.

로스앤젤리스에 있는 씨브라이트씨의 법대 동창이 운영하는 대형 법률회사에서 LA카운티 수피리어 코트에 대림건설등을 상대로 20억 달러 상당의 재산 반환 청구에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을 요약하면 삼호 건설의 조봉구 회장은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을 하자마자 부실기업 정리 대상에 올라 모든 재산을 몰수당한 후 1984년에 사라져버렸다. 그 이후 그의 동정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죽은 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필자의 관심은 그 사건 자체보다는 조봉구씨의 기막힌 인생역정이 더 큰 관심사였다. 한국최고의 갑부였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서 미국 정부의 연금을 받으면서 17평의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면 아마 자살을 생각 할 수도 있지 않았을 까 생각해봤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여 생활하는 법을 잘 터득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필자는 조봉구씨의 사위인 씨브라이트와 딸 조영애씨를 만나기 위해 워싱톤을 방문하였으며 그때 조봉구씨도 워싱턴으로 오게 되어 조봉구씨를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모습이 변했고 그 기막힌 인생역정을 어떻게 견디어 냈을 까하는 호기심으로 그를 만나게 됐다. 그러나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차분히 과거 얘기도 하면서 긴박했던 1984년을 털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분명 악에 북받친 사람이 아니고 편안한 마음으로 큰 용광로에 증오와 분노를 녹이면서 그 기막힌 사연을 남의 얘기처럼 얘기했다.

지금 조봉구씨는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살아있다면 84세의 노인으로 미국 정부의 연금을 받으면서 작은 아파트에서 과거를 잊고 조용히 인생을 관조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무거운 짐을 버리고 최고의 ‘행복지수’를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조사를 보니 행복 지수는 일인당 국민소득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질적으론 가난하지만 정신적인 만족감이 큰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 1위, 필리핀이 세계 5위, 대한민국이 24위 미국과 일본이 훨씬 뒤에 있다고 한다. 지금도 아마 17평 아파트 주위를 바쁘게 산책하고 있다면 그는 분명 상당히 높은 행복지수를 누리고 있을 것이다.

김경해 kyonghae@comm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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