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고구려, 천리장성을 향하여

♣ 호산장성은 고구려 박작성?

중국학자들이 호산에서 발견한 산성유적이 명나라 때 만리장성으로 보고 됐고, 이에 최근 복원된 호산장성은 만리장성의 최동단기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한국학자들 중에는 호산장성이 고구려의 ‘박작성’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 찬란했던 고구려의 발자취 따라
중국대륙에 흩어져 있는 우리 유적

인디아나 존스처럼 혹은 라라 크로포트처럼 혐난한 모험이 수반되는 것만이 유적답사는 아니다.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하는 가족여행, 손쉽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역사의 현장들도 얼마든지 있다. 선양에서 갈 수 있는 고구려 천리장성 유적지와 단둥에서 찾아가는 호산장성은 방문이 비교적 쉬운 편이지만 이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 직접 가볼 수 있는 고구려 유적

천리장성은 두 가지가 있다. 아마도 더 잘 알려진 것은 고려 때 축성된 천리장성으로 국사 시험에 단골 문제였다. 시험문제로 이보다 확률 높은 예상문제도 없어서 대체로 시험에 꼭 나왔던 것 같다. 이 때문에 천리장성하면 의례 현재 북한에 있는 것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고구려 때 지어진 것이다. 당의 침략에 대비해 연개소문 때 쌓았던 것. 북단의 부여성으로부터 남단의 비사성 사이에 세워졌으며, 요동성 백암성, 안시성 등을 포함한다.
이 천리장성은 최근 중국에서 복원했고 석대자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일반관광객에게도 개방되고 있다. 이 장성은 선양에서 차로 한 시간쯤 거리에 있는 치판산풍경구내에 위치한다. 본래 일종의 저수지로 물을 보관하는 곳인데 이에 생겨난 넓고 경치가 수려한 호수를 둘러싸고 휴양지가 들어선 케이스다. 위락시설로 동물원, 식물원, 스키장, 민속촌 등도 풍경구 내에 함께 있어 여름이면 가족 피서장소로도 좋다.

고구려의 천리장성인 석대자산성은 바로 이 치판산풍경구 개발의 혜택을 입은 곳이다. 치판산풍경구를 개발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것인데, 관광 아이템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아 선양시에서 본격적으로 복원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 의해 일반인의 관광이 자유롭다. 또 풍경구 내의 안내지도에는 고구려산성이라고 적혀 있는 것도 인상 깊다.

복원은 꽤 만족할만하게 이뤄졌다. 유적지에 성만 쌓은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고구려산성의 모습에 가깝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산성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한 쪽에 쌓아져 있는 삼각형 모양의 돌이었다. 고구려 산성의 특징은 겉에서 보면 적당히 아귀 맞는 돌들을 되는대로 쌓아 올려놓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속을 보면 삼각형의 돌을 안팎으로 마주 대 놓아 서로 단단히 맞물려 견고하고 외부의 침공에도 잘 견뎌낼 수 있는 구조였다. 치판산풍경구의 고구려산성은 바로 삼각형 돌을 이용해 실제와 가깝게 복원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부분에서도 복원한 이들의 세심한 배려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복원은 성벽이 잘 보존돼 있는 서북벽은 그대로 놔둔 채 파괴가 심한 남문 주위를 다시 만들었다. 사실 그동안 석대자산성은 성벽이 일부 무너진 후에 그 위에 흙으로 뒤덮여 토성처럼 보였던 것을 땅에서 일일이 하나하나 캐내 지금과 같은 상태로 만든 것이었다.

복원 후 제법 그럴듯하게 모양을 갖춘 성벽은 고구려산성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치성도 갖추고 있다. 치성은 일정 간격으로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킨 것을 말한다. 성벽이 굴곡 없이 직선을 쌓으면 수비에 불리하다. 네모꼴 또는 반원형의 치성을 쌓으면 적이 접근하는 것을 관측하기 쉽게 하고 정면과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다.


♣ 일몰이 지고 북녘땅은 보이고

단둥 시내에서 마찬가지로 한 시간 거리 쯤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호산장성에 오르면 주변의 경치를 조망하기 좋다고 해 일몰을 이곳에서 감상하기로 결정했다. 저녁에 맞춰 가니 장성에 도착할 때쯤 해는 산자락 위에 떠 있었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평선으로 지는 일몰을 기대하며 성을 오르기 시작했다.

성곽은 5루를 지나면서부터 수직에 가까울 만큼 경사를 내달린다. 가파른 산을 따라 세워진 산성은 계단을 오르는데도 고개를 돌리면 그대로 낭떠러지. 발이라도 헛디디면 큰 일 치르겠다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산을 ‘오른다’보다 ‘탄다’는 동사가 제격일 듯싶다.

하지만 불그스름한 해는 지평선을 향해 빠르게 치닫고 있었다. 정상을 향한 발걸음은 더욱 조급하기만 하다. 심장이 가까운 왼쪽 목과 귀가 터질 듯이 두근댄다. 날씨는 차갑고 열심히 걷느라 몸은 땀과 열기로 가득했고 옅은 김마저 난다. 이쯤 되면 잠시라도 쉬었다 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정상에서 일몰을 봐야겠다는 욕심이 앞선다.

산을 따라 지어진 장성을 타고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이고 주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가 막 진 겨울 들녘은 옅은 갈색 빛으로 변한 들판과 군데군데 얼어붙은 회색빛 강물의 빛깔이 어우러져 쓸쓸한 기운이 가득했다. 동녘과 남녘으로 압록강이 보이고 그 너머가 바로 북한 땅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곳은 육지를 통해 북한과 국경을 마주한 지역인 셈. 산성 너머에 불빛과 나지막한 집들에서 북한 주민들이 산다고 하니 기분이 묘한 것은 물론이었다.

10여년쯤 전이었을까. 만리장성의 가장 동쪽에 위치하는 장성이 중국학자들에 의해 호산에서 발견됐다. 친황다오(진황도)에 위치한 산해관이 최동단기점인 줄 알았더니 새롭게 발굴된 이 산성이 최동단기점이 됐다.

많은 학자들 가운데에는 이 장성이 고구려산성일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압록강 가까이에 세워진 두 개의 고구려성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평지에 세워진 애하첨고성과 산세를 이용해 만들어진 박작성이 각각 있는데, 이미 발굴된 애하첨고성의 동쪽에 위치하는 호산장성이 박작성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글·사진=이지혜기자 imari@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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