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1월 8일, F-80 슈팅스타 4대의 엄호 하에 B-29 폭격기 79대가 일제히 신의주 상공에 출현했다. 이들의 임무는 중국과 조선을 잇는 압록강과 두만강 위의 교각을 폭파해 중공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 600톤의 폭탄과 소이탄 8만5천발이 투하됐지만 이 작전은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유난히도 추웠던 그 해 겨울 압록강이 두껍게 얼어 붙었고, 중공군은 다리를 통하지 않고서도 직접 강을 건널 수 있게 됐다.”


반절만 남은 다리 북녘 향한 짧은 인사

-단둥, 압록강 사이두고 신의주와 맞닿은
-‘치욕의 역사 잊지 말자’ 압록강단교 보존

● 크루즈여행의 낭만과 멋

인천 제1여객터미널을 떠난 동방명주호는 북한 영해로 향하고 있었다. 북한의 해안선이 보일정도로 가까이 운항하진 않아도, 이 배는 단둥과 인천을 가장 가깝게 연결할 수 있는 근접선을 그린다.

한중합작회사인 단동국제항운유한공사에서 운영하는 중국 선박이기 때문에 사실상 별다른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한국인으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해를 지나고 있다고 의식하니 그 어떤 불편함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생소함을 더욱 즐기고 싶은 욕심에 어둑해진 갑판 위에 올라서 본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검푸른 어둠과 하얀 파도는 단순하지만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보이지 않는 저 너머가 북한이고, 시간 감각마저 무뎌지는 순간이다.

이 배의 목적지인 단둥(단동)이란 이름이 낯설다. 하지만 단둥에 가면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들을 만날 수 있다. 단둥의 한편을 흐르는 ‘압록강’과 이 강을 사이에 두고 다른 한편에 위치한 ‘신의주’다.

단둥은 또한 황해와 맞닿아 있는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다른 연안도시가 그렇듯 단둥은 공업이 발달했는데, 특히 신의주 특구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곳의 부동산 시세는 중국에서도 이른바 잘 나가는 어느 땅 못지않다.

배 안에서는 약 16시간여를 지내게 되는데, 지루할 걱정은 없다. 짐 풀고, 갑판에 잠깐 나갔다 오고, 저녁 먹고, 면세점 잠깐 들르고, 맥주 한잔 하며 담소 좀 나누면 어느새 밤 12시다. 색다른 공간과 희소성 있는 기회가 만들어내는 효과로 이야기는 더욱 잘 풀리고 덩달아 그 또는 그녀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 ‘북한 땅아 내가 왔다’

흔히 압록강 관광이라고 하는 곳은 다름 아닌 6.25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동강 나버린 압록강단교와 지금도 북한과 베이징을 연결하는 철도가 다니고 있는 압록강대교가 나란히 있는 곳이다.

압록강 단교 옆에는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관광객들을 실고 압록강을 유람하는 통통배와 모터보트들이다. 유람선은 가격별로 시간도 차이가 있고 가보는 곳도 다르다. 여름에는 조금 비싸더라도 모터보트를 이용하면 북한 사람들과 큰소리치지 않아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신의주 땅에 보다 가깝게 돌아준다.

배가 출발하면 우선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유명한 바로 그 위화도로 향한다. 요동정벌에 나섰다가 되돌아가 조선을 세운 이성계.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던 곳이라지만, 작고 허름한 집들과 갈대들은 다소 황량하기까지 했다. 위화도는 ‘섬 도(島)’자가 붙어 있지만 실제로 여의도가 그러하듯 육지와 이어진 땅이다.

다시 배는 압록강단교로 이동했다. 멀쩡해보이던 다리가 신의주 쪽으로 향하다 뚝 끊겨져 있다. 다리가 있던 흔적만 이어지는 끝에는 어린이 놀이공원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어느 놀이기구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배가 신의주 땅에 바짝 붙자 북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남한 사람들이 가까이 가면 짱돌을 던지거나 욕하거나 무표정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에는 손도 흔들어주고 웃어주는 이들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압록강을 넘어 탈출하는 사람도 있는 시대이니, 북한도 우리가 상상해오던 경직된 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어 선착장 바로 옆에 있는 압록강단교에 올랐다. 압록강단교에 입장료가 생긴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난간과 길을 새로 만들고, 밤에는 정해진 시간동안 휘황찬란한 야간조명도 밝히고 있다. 끊어진 곳 앞에 가면 처음 다리에 들어설 때도 보았던 한자로 ‘압록강대교’라고 씌어진 비석이 놓여져 있는데,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돈을 받는다.

다리 끝에는 폭격을 맞아 제멋대로 우그러져 있는 철근의 형태가 생생했다. 반은 멀쩡한 상태라 복구해서 사용할 법도 한데, 치욕적인 순간을 잊지 말자며 후세에 교훈이 되도록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압록강 단교 대신 사용되고 있는 압록강 대교는 중조우의교라고 불리우며 기차, 버스, 사람이 모두 이용한다. 바로 가까이에 있어서 압록강 단교에 서보면 차나 기차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단둥 사진·글=이지혜기자 imari@traveltimes.co.kr
취재협조= 단동훼리 713-5522
CDT투어스 732-6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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