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이집트 신왕국시대의 많은 왕들이 잠들어 있는 ‘왕가의 계곡’. 전세계에서 과거 이집트 영광을 보러온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앞쪽 모래언덕이 쌓인 무덤이 두탕카멘의 것이다.


죽음 마저도 풍요로운 신비의 땅

피라미드 지역이 고대 이집트의 고왕국과 중왕국 시대의 번영을 보여주고 있다면 나일강 중류,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67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풍요로운 도시 룩소르(Luxor)는 신왕국시대의 영광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도시다. 약 3500년전(BC1500 - BC1000년) 이 도시는 이집트는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까지 다스린 왕국이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왔던 이집트를 대표하는 왕, 람세스들이 살았던 시대이기도 하다.

현재 룩소르는 이집트 관광의 가장 중심지이기도 하다. 신전과 장례전, 왕의 무덤들이 즐비하며 나일강을 중심으로 즐길 거리도 많다. 화려한 호텔에서부터 저렴한 숙박시설 등을 갖추고 있으며 나일강 상류로 향하는 나일강 크루즈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룩소르가 이방인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것은 ‘여유스러움’이다. 몸은 여러 관광지를 보고 체험하고자 서두르고 있어도, 주머니속에 가진 건 별로 없어도 왠지 풍족해진 듯한 여유가 이곳에 머무는 내내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수천년전 인류가 누렸던 번영에 대한 자부심 때문일까. 바쁜 것 하나 없이 느긋한 이집트인들의 생활에 어느덧 동화되었기 때문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3500년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에 있을 터였다.

룩소르의 풍요로움은 이른 아침 호텔 객실 창밖 풍경에서부터 느껴진다. 나일강변에 위치한 호텔의 리버뷰 객실이라면 눈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심호흡부터 해보자. 물안개 피어오르는 나일강과 한적한 강변 풍경이 마음을 편하게 어루만진다. 현재의 수도 카이로를 먼저 체험했던 여행객들이라면 더할 나위없을 것이다. 하긴 우리는 카이로 이상으로 바쁘고 변화무쌍하고 시끄러운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마음과 달리 여행일정은 바쁘게 진행된다.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객들이 룩소르에 머무는 일정은 대략 하루, 이틀정도인데 짧은 시간내에 볼 것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 한여름이면 한낮의 수은주가 너무 올라가기 때문에 점심 식사 후 잠깐 쉴 것을 고려한다면 투어는 새벽 또는 저녁 늦게까지 진행된다.

룩소르의 투어는 일반적으로 강의 서쪽과 동쪽을 나눠서 진행한다. 이집트인들에게 해가 뜨는 동쪽은 ‘삶’을 의미하고 해가 지는 서쪽은 ‘죽음’을 의미한다. 왕의 무덤들이 즐비한 왕가의 계곡과 제사를 지내는 장례전들은 나일강 서쪽에, 번영을 상징했던 신전들은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루 일정이라면 오전엔 서쪽을, 오후엔 동쪽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호텔이 위치한 시내에서 20여분 지나 나일강을 건넜다. 거대한 모래산이 푸른하늘과 초록의 대지를 사이에 두고 떡 하니 들어서 있다. 저 산 반대편이 왕가의 계곡이다. 멤논거상은 이 산과 나일강의 중간 쯤에 위치하고 있다. 이름처럼 높이 20m의 거대한 규모의 2개의 거상은 마치 외부의 칩입으로 부터 왕의 무덤들을 지키기 위해 서있는 듯하다. 900톤에 이르는 하나의 돌을 깍아 만들어진 이 거상 뒤로는 신전이 있는데 지금은 폐허속에 간신히 흔적만 찾을 뿐이다. 아멘호텝3세 석상으로 불리는 멤논거상은 세월의 흐름 속에 얼굴의 형태조차 분간하기 어렵게 손상을 입긴 했지만 강인한 면모를 느끼기에는 손상이 없다.

끝도 보이지 않은 사막 평야에 서 있는 모래산이 심상치 않다. 10여분 넘게 차를 타고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옛 이집트의 영광을 짐작케하는 각종 보물들이 발견된 곳이다. 나일강을 바라보는 쪽은 귀족들의 무덤이 즐비하고 반대편은 왕의 무덤들이 즐비한 왕가의 계곡이다. 낮은 언덕들을 헤치고 입구에 닿으니 오목하게 들어간 골짜기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왕가의 계곡. 낯익은 투탕카멘 왕 등 지금까지 24개의 왕 무덤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지금까지도 계속 발굴 중이다.

외형부터 보는 이를 압도하는 피라미드와는 달리 신왕국시대의 무덤은 골짜기로, 땅속으로 들어간다. 피라미드가 일찍부터 도굴꾼들이 표적이 된 것을 보자 신왕국시대의 왕들은 이러한 도굴을 피하기 위해 땅속으로 무덤을 팠고 왕이 묻히고 난 후 입구 또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봉쇄해버렸다. 그러나 도굴꾼의 강탈은 피할 수 없는 법. 신왕국시대가 지난 제3혼란기에만 62개의 무덤 61개의 무덤이 파헤쳐졌다.

유일하게 남은 무덤이 18세의 나이에 요절한 어린 왕 투탕카멘의 것. 19세기 말에 발견된 투탕카멘 왕의 무덤 덕분에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비밀이 어느정도 벗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위한지 9년만에 요절한 덕분에 그의 무덤 규모는 다른 왕들보다 작은 40m의 정도의 깊이였고 그래서 도굴꾼들의 주목을 피했다. 더군다나 다른 왕의 무덤을 도굴할 때 파내느라고 쌓아올린 흙 때문에 그의 무덤 입구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집트 인들은, 아니 세계의 고고학, 인류학, 이집트학 학자들은 투탕카멘의 손상되지 않은 무덤 발굴을 두고 ‘운명’이라고 부른다.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왕이 즉위하는 순간부터 무덤 공사가 시작되며 제위 기간이 길수록 무덤 안이 깊고 넓으며 벽과 천장은 각종 부조와 벽화 등으로 더욱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고작 9년간 즉위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굴된 각종 부장품들은 카이로 박물관의 2층을 모두 채우고도 남을 정도인데 60여년을 즉위했던 람세스2세의 무덤을 채웠던 각종 보물들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지 과연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다.

일부 무덤들은 직접 방문객들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물론 보물들은 남아있지 않지만 벽과 천장의 부조와 벽화들을 감상하는 것만 해도 놀랍기만 하다. 가장 화려한 무덤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은 람세스 3세의 무덤이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으로 칭송받는 람세스 3세의 무덤은 깊고 화려하다. 무덤 길이만 해도 140m에 이르며 무덤 안에는 크고 작은 방들이 들어서 있다. 부조와 벽화들은 신과 왕의 얘기를 전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3000여년전 색채감이 살아있는 부조와 벽화들의 얘기를 잘 모르더라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여백보다는 꽉채운 완성의 미를 추구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미적 감각은 오늘날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짐이 없다.

이집트 글·사진=김남경 기자 nkkim@traveltimes.co.kr
취재협조=대한항공 02-2656-2001,
이집트관광청 02-795-0282, 트라브코 20-2-737-1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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