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이 칼럼에서 우리나라 축제에 대해서 느꼈던 생각을 꼭 한 번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전국을 강타한 탄핵정국과 대규모 촛불집회를 보면서 그 때가 이쯤인가 하는 생각에 펜을 들게 되었다.

우리나라 전국에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100여개의 축제가 있다고 한다. ‘90년대 중반 이후에 이렇게 많은 축제가 뜬금없이 양산된 것은 역시 당시의 지방자치제의 본격실시가 그 기폭제가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적은 예산(?) 투입만으로도 ‘아이템’만 좋으면 한 순간에 동네가 유명해지고 그러고 나면 당해 지방자치단체장의 입지는 차기의 불안한 선거판을 염두해 둘 때, 그야말로 반석에 오른다는 계산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 중 몇 개의 축제는 일정수준 성공했다고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수의 축제는 전시행정의 전형과 그 전형성에서 필연적으로 파생할 수밖에 없는 비효율과 저급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초라한 조경물에 어디가나 똑같은 팔도음식 마당의 돼지 바비큐와 파전, 동동주…, 그리고 저 한편엔 철공소에서 제작한 조악한 바이킹 등 국적 없는 난장에 모처럼 축제장을 찾은 가족들은 치를 떨고 돌아서는 것이 우리 축제의 모습은 아닌가? 가뜩이나 없는 축제 주제에 대한 골몰은 결국 유명한 역사적 인물의 생가, 유배지, 주 활동지 등으로 찢겨지고 그 정체성조차 모호해지는 느낌은 비단 몇몇 사람만의 생각은 아닐 듯 싶다.

이렇게 우리의 축제가 다만 행사로만 전락되는 이유는 축제에 대한 본질적 고민보다 이벤트 경영이라는 기술적 측면에 대한 의존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여 진다. 일본의 마쯔리나 유럽의 많은 축제에서의 벤치마킹은 그 내용과 의미보다 형식만을 베끼는 것에서 그 한계가 결정되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인문학적인 연구 성과에서 무지막지하게 해석해 놓은 축제에 대한 논의를 모두 끌어오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피같은 혈세인 예산을 쓰면서 관광객 유치에서 엄청난 폭발력을 가질 수 있는 축제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통상적으로 축제는 인간의 기본적 속성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을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기본적 속성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것은 기득권적 권력, 불평등한 모순, 억압과 갈등을 의미한다. 바로 그 평상을 깨뜨리고 다시 평상으로 돌아와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계기가 축제인 셈이다.

축제는 말 그대로 축하잔치와 종교적 제의의 합성어이다. 축제의 기능에 대해서는 사회적 통합효과나 프로이드가 주장하듯 해방과 일탈을 통한 난장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정도가 축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논의라고 할 때 우리 축제는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까. 어쨌든 축제가 일탈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관광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은 우선 지적해 두자. 솔직히 이번 탄핵공방이 정치적 이해에서 유도되고 한편으론 멍청하게 말려들었다는 측면을 논의로 하더라도 이후의 촛불집회는 멋진 한마당 축제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잘못된 기성사고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참여자들이 파괴에 대한 즐거움을 만끽한다는 점에서, 참여자와 동조자의 동지애와 결속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일상으로 돌아갈 때 다치지도 않았고 카타르시스 효과가 남았다는 점에서 이는 본질적으로 축제의 속성에 고스란히 부합된다. 촛불집회가 관광분야 이벤트 개발 담당자에게 멋진 숙제를 던져준 셈이다.

김상태 stkim@kctpi.re.kr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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