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부에선 태산이 큰 산이라 하지만 태산은 그다지 큰 산이 아니다. 태산의 높이는 겨우 1545m, 산세의 절경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70여개의 선봉을 가지고 있다는 태산의 초입은 건조하고 보잘것없는 석산에 불과하다. 그나마 중천문까지 미니버스로 편안하게 올라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2.7.km를 올라가면 남천문에 이르고, 남천문에서부터 태산 정상까지 걸어서 30분이니 가벼운 산행이나 한번 하고 내려가면 그만일 것이라는 생각은 언뜻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태산에 대한 기대감을 이렇게 손쉽게 접어 버리기엔 우리는 태산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하늘과 땅이 분리되지 않고 뒤엉켜 혼란하던 태고에 판구가 태어나 하늘과 땅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이후 1만8000년 동안 판구의 키는 점점 더 커졌으며 하늘은 점점 높아졌고 땅은 점점 더 두꺼워졌다. 마침내 하늘과 땅을 완전히 분리하였을 때 판구는 기운이 다해 죽게 된다. 판구의 몸이 산산조각이 남에 따라 그의 눈은 태양과 달이 되었고, 그의 피는 강으로 변하였으며 그의 땀은 비가 되어 내렸고, 그의 머리와 두 팔, 두 다리는 중국의 신성한 다섯 개의 산이 되었다. 태산은 호남성의 형산, 하나성의 숭산, 협서성의 화산, 산서성의 항산과 함께 그 다섯 개의 산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이 이야기가 바로 판구의 전설이다. 산동성 중부 평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태산은 중국인들에게 판구의 전설로 그들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 다섯 개의 산중에서도 특히 태산을 가장 신성한 산으로 여겨왔던 것은 중국인들의 사고에서 태산이 판구의 머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거나 또는 중국인들에게 탄생과 봄을 상징하는 의미인 중국의 동쪽에 태산이 위치한다는 지형학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 3000년 동안 지켜 온 신성함

지난 3000여 년 동안 중국의 황제들은 태산을 숭배해 왔다. 태산의 모든 것들은 태산의 신성함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며 태산의 신성함을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태산에 오를 수 없는 황제는 부덕한 통치자로 간주되었고 태산에 오른다는 것은 황제의 권력에 대한 신의 승인으로 간주되었다.

중국의 황제들은 춘추전국시대부터 태산에 올라 하늘에 ‘봉’이란 제사를, 땅에게 ‘선’이라는 제사를 드렸고 이 두 가지가 합쳐져 ‘봉선’이라는 행사가 되었다. 진시황은 중국 첫 번째의 황제로서 처음으로 태산에 와서 봉선을 드렸다.

20여점의 고대 건축물과 1400여점의 석각이 있는 태산은 중국문화의 축소판이다. 공자도 태산에 올라 ‘천하가 어찌 이리도 작은가’라고 술회한다. 그러나 공자가 태산에서 본 것은 외형적인 태산의 규모가 아닌 태산의 곳곳에 배어 있는 수천 년 역사를 가진 중국의 존재감이었을 것이다. 한무제가 태산에 오른 것을 기리기 위해 스스로 석비를 세웠지만 끝내 자기 마음을 몇 가닥 글로 표현할 수 없어 빈 여백으로 석비를 내버려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무자비’는 태산이 중국인들에게 어떤 사무침을 주는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 도화원 케이블카로 정상까지

그리고 2100년. 세월이 흐르고 또 흘렀다. 태산의 정상에는 3성급 호텔이 들어섰고 수많은 내외국인 관광객이 정상을 메우고 있다. 사람이 메는 가마를 타고 태산에 오르며 한편으로는 태산에 대한 경외감에, 한편으로는 들썩거리는 가마에 수고가 적지 않았을 72명의 옛 황제들 모습을 그려보면 현재 케이블카로 손쉽게 태산에 오르는 이 호사는 으쓱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케이블카로 태산을 손쉽게 오르면서 수천 개의 계단을 밟아 오르며 태산이 전해 줄 그 깊은 존재감을 느껴보는 일은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케이블카는 측산과 암산 두 방향에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암산 쪽은 자연경관 손상이 심해 측산 쪽을 택하는 것이 좋다. 측산 쪽 케이블카 승차장이 있는 도화원은 태산 서북부에 자리 잡고 있다. 골짜기에 복숭아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어 도화원이라 불리고 있는 이곳은 봄이 되면 꽃들이 만발해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케이블카 승차장 뒤편 길을 통해 도보로 산에 오를 수도 있는데 산정까지 대략 2시간이 걸린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적색 문과 창문이 인상적인 100여 미터의 상가를 지나면 ‘천가’라는 문에 다다른다. 천가에 들어서서 바라보는 태산의 경관은 장엄하다. 정상 못 미쳐서 태산 할머니를 모신다는 벽하사가 있다. 정상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황하까지 보인다고 한다.

● 대묘, 태산에 바쳐진 거대한 경배

태안은 산동성 중부에 위치해 있고 북쪽으로는 성도인 제남과 남쪽으로는 공자의 고향인 곡부와 이어진다. 대묘는 태산을 배경으로 태안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태산을 향한 순례 객들이 전통적으로 쉬어 가는 곳이었으며 대묘 자체가 태산에게 바쳐진 거대한 경배이기도 했다. 대묘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기원전 1009년에 건축된 황색처마의 천황전이다. 송천황전의 현판은 송진종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글자의 크기가 고르지 않아 송진종이 술에 취한 채 글씨를 써내려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천황전 내부, 길이 62m의 프레스코화는 태산의 아들로 송진종을 표현했던 송왕조 시기부터 존재해왔으며 태산신에게 봉선 드리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진종은 자신의 지위를 태산신의 지위와 동등한 것으로 격상시키려 했다고 전해진다. 대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대묘의 후문으로 나와 계속 걸어가면 태산의 남천문에 다다르게 된다. 대묘는 200여개의 다양한 비석들로 가득 찬 야외 박물관 같은 곳이기도 하다. 원래 태산의 정상에 있었던 한 비석은 2000년 전 진시황 당시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동성 태안 글·사진=박준 객원기자 tibetian@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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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훼리 02-3709-6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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