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은 무너지려 하고 기둥은 쓰러지려 하며
철인은 시들어 버리려는 구나”

기원전 479년 봄, 공자는 병석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휘두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마치고 공자는 의식을 잃었고 일주일 후 조용히 운명했다. 4월11일, 그의 나이 73세였다. 공자의 유해는 노나라 수도 곡부의 북쪽에 모셔졌고 주위에는 송백을 심었으니 이것이 오늘의 공림이다.

산동성 중남부에 위치한 곡부는 중국고대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교육가인 공자의 고향이다. 공자에게 삶의 보람은 도에서 비롯되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논어편의 말을 통해 그는 인간으로서 가능한 최고의 경지를 추구했다.

공자의 가정환경은 유복하지 못했다. 공자가 세살 때 부친이 타계했고 가난한 가정환경 탓에 공자는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도 못했다. 모친과 모친 부의 가르침이 공자가 어린 시절 가진 배움의 전부였다. 그러나 공자는 끊임없는 정진 끝에 결국 나이 70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는 대 인격을 이룰 수 있었다고 술회한다. 공자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옛 도시인 곡부의 삼공(공묘, 공부, 공림)은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곡부시도 중국 정부에서 최초로 명명한 24개의 역사문화 도시 중의 하나이다.

● 중국의 3대 고대 건축물 공묘

북경의 자금성, 태안의 대묘와 함께 중국의 3대 고대 건축물로 꼽히고 있는 공묘는 공자를 모셔놓은 사당이다. 측백나무에 둘러싸인 공묘의 묘는 무덤의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큰 건물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공자의 묘는 공묘에 서 1.5km정도 떨어진 공림에 있다. 공자가 타계한 1년 후 노나라의 애공이 최초로 사당을 만들었고 이후 역대 황제들이 지속적으로 사당을 추가 건립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공묘의 중로를 따라 가면 조그만 정자가 있고 행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행단은 일종의 학당이라 할 수 있는데 주변에 살구나무가 많아 행단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공자는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2500년 전 공자의 가르침이 현재까지 명목을 이어 올 수 있는 것도 공자가 설법할 당시 이곳에 모여 들었던 3천여 명의 제자들 때문이다.

행단 북쪽에 있는 웅장한 건물이 공묘의 본전인 대성전이다. 대성전의 높이는 24.8m로 북경 태화전에 이은 제2의 대건축이다. 대성전 정면에 있는 10개의 석주에는 구슬로 휘감은 용이 부조되어 있다. 고대 중국에서 용은 하늘과 황제를 상징했다. 대성전에 황색기와 용의 부조를 사용한 것은 학문의 황제로서 공자가 얼마나 숭상 받았는가를 보여준다. 심지어 제사를 위해 공묘에 들린 황제의 자존심을 위해 용이 부조되어 있는 석주를 붉은 색 천으로 감싸 감추어 놓았다는 이야기는 공자에 대한 후대의 경외심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또 공묘 안에는 13채의 비정, 즉 비석을 눈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정자가 있고 전국시대부터 역대황제들이 세운 53개의 거대한 비석을 비롯해 800여개의 비석이 있다.

역대황제가 내린 장서를 보관하고 있다는 3층 목조건물의 규문각은 단 하나의 쇠못도 사용하지 않고 건축되었다. 대문 장식품인 원형의 민딩 수를 세어 보아도 황제의 것과 같은 9개임을 찾아 볼 수 있다.

● 문화혁명, 파헤쳐진 공자의 묘

그러나 공자에게도 몇 차례의 수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진시황과의 불화로 분서갱유를 겪었으며 문화혁명의 흔적은 파손된 공묘의 비석들에 아직까지도 진하게 남아 있다. 심지어 공림의 공자묘는 파헤쳐지는 참혹함을 겪기도 했다.

공자의 후손들이 살았던 저택이자 관청이었던 공부는 전체면적 3만평, 463개의 홀과 방, 건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 봉건시대 관청의 전형적인 건축물이자 역사상 가장 큰 장원을 가진 천하제일의 가옥으로 불리었다. 성인지문이라 쓰여 있는 현관을 들어서면 서로에는 객실, 동로에는 공씨 가문의 묘지가 있고 중로는 전반부의 관청과 후반부의 주택으로 구분되어 있다. 공부 안에 정원만 7개가 있다 하니 당시 공자 후손들의 위세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황제를 위해 만들었다는 남문 부근에 있는 의례문은 1949년 해방 후 강택민 주석과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을 위해 단 두 차례만 열렸다고 하는데 강택민 주석은 자신이 황제가 아니라며 그 문을 통과하기를 사양했다고 한다.

공림은 지성림이라고도 불리며 면적은 10만여평, 성벽의 길이만 7km에 이른다. 공림 안에는 공자의 묘뿐만 아니라 공자의 아들 손자 등 10만 여개의 자손들 무덤이 있다. 공자의 묘 앞에는 금색의 전서로 대성지성문선왕묘라는 글귀가 씌어져 있다. 이 비석은 송나라의 진종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부에서는 9월26일 공자 탄생일을 즈음해서 ‘공자문화절’이라는 대규모 행사가 열린다.

중국 산동성 글·사진〓박준 객원기자 tibetian@freechal.com
취재협조〓에버투어(주)왕중왕 02-3672-5100
황해훼리 02-3709-6640


♣ 평택-일조 간 정기 여객·화물선A ‘황해 훼리’

(주)황해훼리는 평택항과 중국 산동성 최남단에 위치한 일조항 사이를 작년 6월부터 취항하고 있다. 항조거리는 312마일(약 5,000km)로 18시간이 소요된다. 선박명은 ‘모닝 글로리’로 최대탑승인원은 600명/승무원 39명, 최고속도는 27놋트(시속 50km), 운항속도는 23놋트(시속 43km)이다. 매주 일요일 오후 7시, 수요일 오후 4시, 금요일 오후 6시 평택항에서 출항한다.
장시간 선박여행이 주는 첫 번째 걱정거리는 단연 배 멀미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러나 모닝글로리는 전장 165.58m, 전폭 21.50m, 총톤수 1만6,340톤의 대형 여객, 화물선으로 선내에 미세한 진동은 있지만 배 흔들림으로 인해 승객이 느끼는 롤링 정도는 낮다. 또한 선내시설로 레스토랑, 면세점, 노래방, 게임룸, 사우나, 카페 등 다양한 위락 시설을 가지고 있어 장시간 여행이 지루하지 않다. 사우나는 출항 후 24시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모닝 글로리는 4가지 룸 타입을 가지고 있다. 로얄 스위트는 35만원으로 침대, TV, 냉장고, 회의실, 테이블을 갖추고 있으며 로얄룸은 16만원, 퍼스트 클라스는 13만원, 세컨드 클라스는 11만원이다. 위의 요금은 모두 편도 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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