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에는 5가지의 바다가 있다고 한다. 녹차의 바다, 철쭉의 바다, 소리의 바다, 자연의 바다, 그리고 100가지 빛으로 분산하는 초록의 바다가 그것이다. 주한 외국인들과 함께 바다를 보는 마음으로 주말을 이용해 보성 여행을 떠났다.

-보성다향제 … 낯선 이방인들의 입맛도 사로잡아
-아홉 번 덖고 비비는 과정 거쳐야 향과 맛이 ‘최고’
-노란 송화가루 매화꽃 띄운 녹차 카푸치노 ‘일품’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를 소개하는 여행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테마투어코리아가 인연의 끈이 됐다. 일산 쪽에서 영어강사를 한다는 캐나다인들이 다수를 차지했고, 그 외 몇 팀의 가족 여행객, 시도 때도 없이 후레쉬를 터뜨리는 기자들 두서넛이 함께 했다. 1박2일의 짧은 여행에서 우리는 그 중 3가지 바다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짙은 안개에 쌓여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었던 차밭의 망망대해, 투박한 뚝배기처럼 툭툭 거친 마디를 넘는 서편제 판소리의 바다, 그리고 봄비에 젖어 더욱 싱그럽게 도드라지는 16개의 봉우리는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고, 다시 구비 구비 파도를 이루는 또 다른 바다였다.

고속철 KTX를 타고 광주에서 내려 다시 보성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 개량한복을 곱게 차려입는 보성 문화유산해설가 박금옥씨가 간단한 영어와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하고 보성의 자랑거리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시를 읊듯 보성을 소개하는 문화유산해설가 박금옥씨의 설명을 적절한 영어표현으로 통역하기 위해 애쓰는 테마투어 코리아 이정옥 사장의 이마에 구슬땀이 맺힌다. ‘아기가 옹알거리는 모습의 새싹’, ‘순진하고 여린 잎들을 뜨거운 무쇠솥에 넣고 덖는다’ 등 도저히 영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단어와 표현들이 나올 때마다 무안해하는 박금옥씨와 그 표현들을 가능하면 살려내려는 이 사장의 실랑이가 아름다운 에너지를 발산했다. 또 박금옥씨가 직접 불러 준 요절한 천재소녀에 대한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는 근대 음악 ‘부용산’은 오래된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애잔한 떨림이 있었다.

맨 먼저 도착한 곳은 보성다향제(5월5~9일)가 한창 열리고 있는 보성체육공원. 행사장은 간이 천막들이 들어선 난장의 모습이지만 그 그늘 아래에는 ‘차에 대한 모든 것’과 ‘보성에 대한 모든 것’이 하나하나 숨겨져 있었다. 녹차 시음회 코너처럼 먹을거리가 있는 곳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법이다. 쓰고, 시고, 짜고, 달고, 떫다는 녹차의 다섯 가지 맛을 감별해 낼 재간은 없지만 인스턴트 녹차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순하고 부드러운 맛과 향기에 마음속 여린 잎들이 젖어든다.

이날 장터의 또 다른 볼거리는 외국인으로 이뤄진 우리 투어팀이었다. 가루차 시연 행사에서도, 카메라 세례속에 가장 먼저 ‘서비스’를 받는 특권을 누렸다. 식으면 가라앉기 일쑤고 색이 너무 짙어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가루차는 알고 보니 먹는 법이 따로 있었다. 녹차가루에 적당한 온도의 물을 붓고 대나무 끝을 잘게 갈라서 만든 차선으로 휘휘 저으니 보드랍고 연한 거품이 그릇을 가득 채웠다. 이것을 적당한 양으로 찬에 나눠 담고서는 찻잔마다 노란 송화가루를 살짝 얹고 그 위에 분홍색 매화꽃을 띄우는, 실로 멋들어진 차다. 각자가 자신의 차밭을 가지고 있다는 다례 시연단의 아주머니들은 고운 한복을 똑같이 차려입고 차를 만들 때도 같은 순간에 같은 동작을 한다. 그런 일사분란이 가루차 시연의 또 다른 ‘묘미’라고 한다. 볼거리는 무궁무진한데 시간이 한없이 모자라다. 그래도 기어이 화장끼 없는 얼굴로 녹차 마사지를 받고 보성표 녹차도 구입하고 나서야 차에 오른다.

대한다원은 짙은 안개로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키는 사진 동호회 사람들과 출입이 금지된 차밭 사이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 커플들까지 온갖 풍경이 그려진다. 깨끗한 물과 비옥한 토양으로 차가 생산되기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진 보성에는 곳곳에 이런 차밭을 숨기고 있다. 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비비는 과정(구중구포의 제다방식)을 거쳐 탄생한 차는 그윽한 향과 맛으로 ‘최고’라는 찬사를 얻었다. 사람의 인생에도 아홉 가지 단계가 있다는데, 나는 과연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안개 자욱한 차밭 한 가운데 서서 ‘순진한 어린 잎’들이 잘려나간 자리를 조심스레 어루만진다.

전남 보성 글·사진〓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취재협조〓테마투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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