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민을 벗는 영혼의 여행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문화관광상품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템플스테이(Temple Stay)를 추천하겠다. 외국인의 눈에서 한국적 불교와 승려들의 생활을 단순히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가득한 번민과 욕심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한 ‘나를 위한 여행’이 여기에 있었다.

☞ 108 연꽃이 피는 대원사 ‘템플 스테이’

부슬 부슬 내리기 시작한 비는 멈출 기세가 없지만 가방까지 비옷으로 덮어쓴 채 주지스님인 현장스님을 따라 경내로 들어선다. 20여명의 외국인에 섞여 도착한 보성 대원사는 1501년의 역사를 가진 백제 고찰이다. 웅장하고 세련되진 않았지만 구석구석 사람의 손때가 묻은 것이 그렇게 정감어리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대형 목탁과 염주는 장식품이나 전시품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남을 위해 기도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종소리는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 현장 스님이 울려주시는 금종 소리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 비에 흠뻑 젖으면서도 꼼짝 않고 귀와 손을 가지런히 모아본다.

물이 많은 천봉산에 자리잡고 있어서 대원사 경내에는 7개의 연못이 자리 잡고 있다. 땅에 묻혀 있는 365개의 수반(깊지 않고 입구가 넓은 도기를 땅에 묻어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에 일제히 꽃이 피면 절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인다고 한다. 108가지나 되는 연꽃은 여름에 만개해 절정을 이룬다. 생명을 상징하는 물이 많아서일까, 예로부터 천봉산은 ‘어머니’, 대원사는 ‘자궁’에 곧잘 비유되곤 했다. 1박2일의 짧은 시간이 그 토록 아늑했던 것도 우연은 아닌 모양이다. 낙태당한 어린 영혼, 자식이 없는 부모 들을 위한 특별기도가 올려지고 빨간 모자를 쓴 동자상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요사채에 들어서니 빗줄기가 커튼처럼 드리워지는 절사의 마루 끝에 맛깔스런 음식들이 정갈하게 차려졌다. 싱싱하고 깨끗한 나물과 야채, 과일들이 형용할 수 없이 푸짐하다. 육류는 물론이요 자극적인 고춧가루도 쓰지 않는 것이 사찰음식의 규칙이지만 손님대접을 위해 붉은 김치와 고추장도 등장했다.

나른해진 몸이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야할 곳이 한 곳 더 있다. 국내 유일이자 최대 규모의 티벳박물관이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다. 현장 스님께서 직접 15년간 티벳, 중국, 몽골 등지를 다니며 모은 불상 등 1000여점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교환 프로그램의 하나로 대원사에 머물고 있는 티벳스님이 직접 여러 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티벳스님은 인도에서 태어나셨고 정치적인 탄압 때문에 지금까지 한번도 티벳을 가 본적이 없다고 한다. 박물관 관람 후 판소리 공연이 잠시 이어지고 두 스님과의 대화시간이 주어졌다. 낯선 종교에 대한 질문들이 끝난 후에는 선체조를 함께 하면서 하루의 피로와 긴장을 풀었다.

절사의 아침은 새벽 4시30분, 종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대적광전에 모여 불경을 외고, 108배를 하고, 참선을 하는 모든 의미와 대웅전의 탱화들을 하나하나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는 현장 스님의 자상함에 감히 졸수가 없다. 간단한 잦죽으로 아침을 먹고 연꽃차로 입을 씻은 후 경내를 산책한다. 가파른 야생 녹차밭 사이 오솔길을 지나 산신각에 올랐다가 대 숲 사이 오솔길을 내려오며 기념사진도 한 장 찰칵. 이틀 동안 쉬 없지 내려준 비가 절사의 고즈넉함을 더했다.

세면대가 없다는 이유로 샤워실 대신 화장실의 단 하나뿐인 세면대에 줄을 서기도 하고 아침식식사로 나온 잦죽에 손도 대지 못했던 외국인들에게 현장 스님은 “절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하면 ‘절’은 최상의 장소”라고 말씀하셨다. 108가지 연꽃이 일제히 피어오르는 여름이 한 복판에 다시 한번 절을 찾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왔다. www.daewonsa.or.kr

천소현 기자 joojoo@traveltimes.co.kr
취재협조=테아투어코리아 www.themetours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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