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 부국장
                       김선주 부국장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남았다는 활판인쇄소를 소개했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활판인쇄소가 보란 듯이 운영되고 있어서 놀라웠다. 연세 90세를 바라보는 백발의 조판공이 원고에 맞춰 작디작은 납 활자 하나하나를 조합해 건네면, 역시 백발인 인쇄공 할아버지가 철컥철컥 베틀 돌리듯 인쇄기를 돌려 하얀 종이 위로 글자와 단어와 문장을 찍어냈다. 오프셋(Offset) 방식으로 대량 생산된, 혹은 프린터기로 쉽게 뽑아 낸 현대 인쇄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정감이 가득 묻어 있었다. 활판인쇄는 1960년대 후반까지 절정기를 누렸지만, 컴퓨터식자시스템(CTS) 등 신기술에 밀리고 치이더니 결국 1980년대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활판인쇄소에 대한 신기함 뒤편으로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춰버린 활판인쇄소에 대한 애잔함이 밀려왔던 이유다. 

코로나19 첫 해였던 2020년, 여행업이 얼마나 큰 타격을 입었는지 보여주는 정부 통계가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2월 말 발간한 ‘관광산업조사 2020’에 따르면, 2020년 12월31일 기준 여행업 사업체 수는 1만6,660개로 2019년보다 1,563개(8.6%) 줄었고, 종사자 수는 6만1,784명으로 전년대비 -40.2%(4만1,527명↓)를 기록했다. 매출액 하락은 더 충격적이다. 2019년 8조6,271억원에 달했던 매출액은 2020년 4,354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무려 -95%다. 한 자릿수에 머문 사업체 수 하락률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인데, 이는 직원 열 중 넷을 내보내고 코로나19 이전의 5% 수준에 불과한 매출액으로 겨우 여행업 등록만 유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어렵게 2020년을 버텼다한들 2021년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지금 여행업 실상은 더 처참하다고 봐야겠다.

지금까지 2년 동안 여행업은 어느 모로 보나 몰락의 길을 걸었다. 활판인쇄소 처지가 남일 같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고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활판인쇄소야 기술 진보에 따른 자연스런 퇴장이었지만, 지금 여행업은 여행업의 통제권을 벗어난 외부 악재로 휘청거리고 있다. 사실상 강요당한 몰락이다. 국경을 막고 각종 출입국 규제를 덧씌우고 대놓고 여행하지 말라 주의를 주니, 이런 상황에서는 손 쓸 도리가 없지 않은가! 여행업 지원의 절박함 못지않게 당위성도 큰 이유다. 현실은 차갑다. 그토록 애원하고 호소하고 건의했지만 여전히 여행업은 생존지원에서 홀대받고 있다. 여행업은 정부의 안중에도 수중에도 없으니 총궐기대회라도 해서 목소리를 높여야한다는, 분노 섞인 푸념이 흉흉하게 나돈다. 동어반복이지만, 정부는 지금이라도 여행업계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피해에 합당한 지원에 나서길 바란다. 행정명령을 받았느니 어쩌느니 하며 답답한 틀 뒤로 숨을 일이 아니다. 불필요한 출입국 규제가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가다듬는 일도 절실하다. 살짝만 봐도 벼랑 끝 여행업을 위해 서둘러야 할 일들 천지다.

2021년에도 모든 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여행신문>은 멈추지 않았다. 한 해 동안 50회의 인쇄를 더해 지령 1960호를 맞이했고, 2021년 들어 본격화한 ‘온라인 데일리’도 안착했다. 2022년 새해도 마찬가지다. 여행신문 창간 30주년의 해이니 오히려 더 부지런을 떨 참이다. 활판은 사라졌어도 인쇄는 여전하듯, 아무리 내몰린들 여행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김선주 부국장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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