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에서 두발로 뛰며 여행을 완성하는 이들이 있다. 코로나 동안 일감이 뚝 끊기며 업계를 떠나기도, 여전한 고용불안정과 임금문제에 맞서기도 했다. 여행의 숨은 주역 가이드들을 만났다. 

 

●먹고 살기 위해 떠났다 

해외여행이 전면 중단되며 인·아웃바운드 가이드들은 갈 곳을 잃었다. 여행사나 항공사의 직원들은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았다지만, 가이드들은 대부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라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한 전직 동남아 가이드는 “코로나 동안 생계유지를 위해 귀국 후 배달알바부터 시작해 안 해 본 일이 없다”라며 “3년여의 시간이 흘러 한국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도 익숙해져 다시 업계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라고 심경을 표했다. 여행이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내 잘못’도 아닌 외부변수로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팠단다.

한국노총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출범한 ‘한국통역가이드노조’ 조합원들도 생계를 위해 다른 업종으로 뛰어든 상황이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시장 분위기도 불안감을 높였다. 한 국외여행인솔자는 “코로나 시기 다른 직종으로 옮겼다가 올 여름 해외여행 재개 분위기에 맞춰 돌아왔는데, 초기에는 출발 직전 행사가 취소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아 희망고문 같았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이드 구하기도 쉽지 않다. 가이드풀은 지역별로 상이하기는 하지만 현재 코로나 이전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일본 랜드사 대표는 일본 단체관광이 열렸던 지난 6월 급하게 가이드를 수배하다 결국 직접 행사를 뛰기도 했다고 전했다. 

해외여행이 멈춰서자 인아웃바운드 가이드들은 생계를 위협받았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행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픽사베이
해외여행이 멈춰서자 인아웃바운드 가이드들은 생계를 위협받았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행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픽사베이

외국인의 한국여행을 책임지는 관광통역안내사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7월1일부터 관광통역안내사 고용보험 제도가 시행되며, 고용보험을 내면 실업급여와 출산전후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관광통역안내사들 사이에서는 이마저도 코로나19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생계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며 겨우 이뤄질 수 있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많다. 지난 2009년 부산 실내사격장에서 일본인관광객, 사격장 직원, 한국인가이드가 화재사고로 숨진 적이 있었는데, 가이드들은 여행사로부터 행사를 의뢰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한 관광통역안내사는 “회사에 속한 ‘직원’이라고 생각하던 가이드들이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라며 “여행사에서는 고용은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가이드들을 직원처럼 부리려고 한다”라고 하소연했다.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왜 그대로?

최근 인플레이션을 두고 흔히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가이드가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이후 숙박·차량 비용 등이 모두 올랐지만 정작 가이드의 인건비는 그대로다.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 양인실 제주지부장은 “가이드는 어찌보면 개인간의 거래이기 때문에 비용도 천차만별인데 현장의 안전과 외국어까지 모두 담당하면서도 합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라며 “가이드의 최저임금 수준이 정해져야 하고 저녁이나 추가시간에 추가요금도 지불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여행자들의 눈이 되어준다는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합당한 인건비가 지급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가이드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외 현지 가이드들의 임금체계는 여전히 취약하다. 대부분 현지 가이드에게 별도의 임금을 지불하지 않으며 선택관광과 쇼핑에서 스스로 수익을 내야 하는 구조다. 한 베트남 가이드는 “다낭의 경우 경쟁이 심화되며 패키지 가격대가 20만원대까지 형성됐는데, 가이드가 일을 하고도 손해를 떠안는 경우가 많아 소위 ‘현타’가 왔다”라며 “저가상품의 실체를 공론화하려고도 해봤지만 동료들이 피해를 볼까 섣불리 나서지도 못했다”라고 전했다. 최저임금조차 보장되지 않는 구조 자체를 바꾸고, 여행객 역시 정당한 여행상품가를 비싸다고 인식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미서부 지역에는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미서부에서 활동하는 이진영 가이드는 코로나 이후 ‘일당’ 개념이 대대적으로 정착됐다고 말했다. 여행사에서 가이드와 기사에게 일당을 지불하고, 대신 선택관광이나 쇼핑 수익을 가이드와 나눠 갖는 방식이다. 이진영 가이드는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여행사에 여행객 1인당 일정금액을 내는 일종의 ‘인두세’ 개념이 만연했는데, 더 이상 쇼핑이나 선택관광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 어떤 의미에서는 일하기 편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행자들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여행사들도 좋은 상품을 만들어놓고 스스로 가격을 낮춰 ‘싸구려’라는 인식을 심을 필요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가이드 이래서 한다! 생생한 현장 여행 트렌드

미서부 이진영 가이드
미서부 이진영 가이드

미서부 이진영 가이드

미국에 이민 와서 1992년부터 가이드 일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벌써 30년이다. 모르는 나라와 문화를 소개해준다는 자부심이 들면서 가이드가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 중에는 세계 각국의 고위급 인사, 여행 중 만나 결혼한 부부, 10년만에 재회한 친구들도 있었다. 모두 가이드라서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인연이다. 관광 명소 안내는 물론 미국의 선진화된 제도와 시스템을 많이 알려왔다.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가 완전 오픈되며 여행이 쉬워졌다. 예전에는 수많은 관광지를 짧게 보고 다녔다면 이제는 보다 여유롭게 즐기는 추세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버스를 타고 휙 지나가거나 사진만 찍고 이동했다면, 이제는 다리를 직접 30~40분 동안 천천히 건너는 식이다. 체류 기간도 4~5일에서 6~7박, 길게는 10일까지도 늘어났다. 

제주 양인실 가이드
제주 양인실 가이드

제주 양인실 가이드

대학교에서 일본어 전공을 했다. 자격증 한 번 따보자는 가벼운 마음가짐이 이제는 진심이 됐다. 고용이 불안정하다 보니 처음에는 가족들의 반대도 많았지만 ‘민간외교관’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직업이다. 가이드들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꾸준히 역량강화를 하고 있다. 최근 유행 중인 K-POP, 로컬여행 등에 대한 교육과 근대문화유산 워크숍도 진행 중이다. 제주어 동아리 활동을 통해 현지 문화도 조명하고 있다.

이제는 인바운드도 테마가 다양해졌다. 제주에서는 해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체험하는 여행도 인기가 높아졌다. 도시재생, 마을여행 등도 부상하고 있다. 현재 대학생 교류회나 기업 연수 등이 많으며 목적 없이 여행만 오는 경우는 많지 않은 편이다. 

 

이은지 기자 eve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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