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과 나트랑, 
베트남의 두 도시에서 깨우고 달랜 감각들.

롱선사
롱선사

지난 가을께부터 ‘떠난다’ 하는 소식이 꽤 잦아졌다. SNS 피드엔 아득해져 가던 나라 밖 여행의 순간들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날이 차가워지니 몸 좀 풀고 싶은 마음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던 시간 동안 무뎌진 감각들을 깨우고 또 달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대번에 멀리 가는 건 좀 그렇고, 그래도 공기가 좀 달랐으면 좋겠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조건들을 하나둘 헤아리고 난 끝에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워밍업’이다.

 

●Ho Chi Minh City 호찌민

오토바이로 자전거로, 호찌민 한 바퀴

마침 호찌민은 11월부터 4월까지 건기 시즌이었다. 기온으로 치면 30도 안팎, 한여름인데 습하지 않으니 좀 걸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차례 비가 쏟아져도 잠시 피하면 그만이다. 

호텔을 나서자마자 꼬리가 보이지 않는 오토바이 행렬이 베트남에 닿은 것을 실감케 했다. 그럼에도 이전의 호찌민과는 달랐다. 쉴 새 없이 울리던 오토바이 경적과 땅을 울리는 듯한 엔진 진동이 확실히 덜했다.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베트남에도 꽤 오랜 기간 봉쇄·이동 금지·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코로나 방역 조치가 잇따랐다. 그에 따른 경기 침체와 고유가도 오토바이 구매와 이용에 영향을 미쳤다. 그 사이 경적 소리를 내지 않는 등 도심 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이 진행됐다고 했다. 

한 가지 더 눈에 띈 것은 공유 자전거였다. 팬데믹을 겪으며 베트남 사회에서도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자연스레 자전거 수요가 높아졌다고 했다. 2021년 12월 베트남에서는 처음으로 호찌민에 공유 자전거 서비스가 시작됐다. 공항과 도심, 관광지 중심으로 정거장이 설치된 탓에 아직까지는 현지인보다 관광객들이 더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지만. 

주변에 물어 공유 자전거 이용에 필요하다는 ‘TNGO’ 앱을 다운받았다. 베트남 현지 번호가 있어야 회원가입을 할 수 있는데, 베트남 유심을 구입해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문제될 일은 아니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갖춰져 있지 않아 오토바이 부대와 함께 두 발을 굴러야 한다는 점이 멈칫하게 했지만 오토바이의 도시에서 자전거 타기란 신선한 발견이었다.

 

호찌민에서 멋진 카페를 찾는 법 

여전하면서도 사뭇 달라진 베트남의 공기를 들이켰으니 이젠 정말 감각을 끌어올려야 할 시간. 시작은 커피다. 브라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양의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양의 생두를 수입하는 나라, ‘하이랜드 커피’, ‘콩 카페’와 같은 현지 브랜드들의 영향력이 스타벅스를 주춤하게 만든다는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다.

수 카페
수 카페

호찌민에서는 도심 곳곳 자신들만의 커피 철학을 추구하는 숨은 카페들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숨어 있다’고 표현한 이유는 숍하우스 형식의 도심 건물들 대부분이 담장 없이 벽과 벽을 맞대고 있는 구조라 그렇다. 숍하우스는 보통 저층부는 상점, 그 위로는 주택으로 구성된다. 매력적인 카페들은 2층이나 3층에 포진해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의 경우 카페 주소를 알고 찾아가도 건물 1층 가장자리에 난 좁은 연결 통로를 찾지 못하거나 그 앞에서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뒤돌아서는 경우가 많단다.  

팬데믹이 지속되는 동안 외국인 관광객이 확 줄면서 호찌민 시내에 문을 닫은 카페들이 상당하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수 카페(SOO KAFE)의 움직임은 상당히 용감하다. 2021년 4월에 문을 열었고, 오픈 한 달쯤 지나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무려 5개월간 임시 휴업을 해야 했지만, 그해 12월 벤탄시장 근처에 2호점을 냈다. ‘농장에서 한 잔의 커피가 되기까지(farm to cup)’ 전 과정을 세심히 살펴 장인 정신으로 만드는 크래프트 커피(craft coffee)를 지향한다는 말에 그들의 도전이 무모하지만은 않을 거란 느낌이 왔다. 수 카페에서는 베트남식 에그커피부터 에스프레소, 브루잉 그리고 사이펀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커피를 맛볼 수 있다. 

통킨 코티지
통킨 코티지
통킨 코티지
통킨 코티지

한편 통킨 코티지(Tonkin cottage)는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기품이 느껴졌다. 2022년 9월에 문을 연 카페로, 베트남 북부 지역의 민속과 정서에서 영감을 받아 연출한 공간이 돋보였다. 대표 메뉴는 에스프레소 2샷에 3가지 맛의 우유를 황금 비율로 배합해 만들었다는 ‘브라운 커피’. 한정 수량이라 아무리 맛있어도 한 사람당 두 잔까지만 마실 수 있다는 주의사항을 알려 주니 맛보지 않을 수가. 자신만만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인정의 눈빛을 보내자 바리스타가 호기롭게 호찌민에서 괜찮은 카페 찾는 법을 일러 줬다. 첫째, 호텔에서 추천하는 카페는 믿고 거를 것. 둘째, 거리로 나와 걸으며 작은 간판들을 살필 것. 셋째, 자신의 감각을 믿고 카페 문을 열 것. 그의 말에 100% 동의했다. 딱 그 방식으로 닿은 곳이 통킨 코티지였으니.

 

내 손으로 만드는 반쎄오 한 접시

베트남에선 길거리를 걷다 출출해지면 노점에 앉아 한 접시 가뿐히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있다. 베트남식 부침개, ‘반쎄오(Banh xeo)’다. 국내 베트남 음식점에서는 편히 맛보기 힘들었으니 현지 쿠킹 클래스에서 반쎄오 만드는 법을 확실히 배워 가리라 다짐했다.

호아 툭 쿠킹 클래스는 3가지 베트남 요리를 만들고 맛보는 일종의 식도락 프로그램이다. 수업은 하루에 두 번 오전 9시, 오후 2시30분에 시작한다. 수업료는 80만VND, 한화로 4만5,000원 선. 셰프와 함께 현지 시장을 둘러보고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직접 구입하는 장보기도 가능하다. 약 8,000원 정도의 교통비가 추가되며, 장보기는 하루 한 차례 오전 8시 떤딘(Tan Dinh) 시장에서 진행된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지만 영어 울렁증이 있더라도 상관없다. 셰프를 잘 따라만 해도 꽤 그럴듯한 음식이 완성된다. 채식주의, 알레르기 등 특이사항을 미리 알려 주면 그에 맞게 재료를 준비해 준다. 

다 만든 음식은 레스토랑에서 준비한 디저트, 음료와 함께 시식할 수 있다. 수업은 총 3시간에 걸쳐 진행되니 맛을 음미하기에도 충분하다. 완성된 반쎄오를 앞에 두고 뿌듯한 표정으로 “선생님, 반쎄오 맛있게 먹는 법 알려 주세요.” 했더니 “음, 사실 비가 좀 와야 좋은데. 비 오는 날 먹으면 제일 맛있어요”라며 웃는다. 세상에, 정녕 비 오는 날 부침개는 국경을 초월하는 맛의 공식이란 말인가! 한 차례 시원하게 비가 쏟아지길 바라며 맛있게 한 접시를 비운다.

 

스쿠터 타고 호찌민 깊숙한 곳으로 

베트남에서는 한국에서 발급받은 국제면허증이 통하지 않는다. 현지에서 베트남 운전면허증으로 교환해야 하는데 40만VND의 수수료와 약 5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더구나 최근 엔진 배기량 50cc 미만의 내연 기관 오토바이는 물론, 최대 출력 4kW 미만의 전기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경우에도 운전면허 취득이 의무화됐단다. 그럼에도 ‘찐’ 베트남 생활상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운전기사가 딸린 오토바이 투어가 제격이다. 베트남 주요 도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즐기는 시티 투어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호찌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데이 투어 프로그램은 단연 ‘사이공 베스파 투어’가 아닐까.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유명 스쿠터 브랜드 베스파(Vespa)의 빈티지 모델을 이용할 수 있는 오토바이 투어다. 보통 신청자가 묵는 호텔에서 출발한다. 신청시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을 조율할 수 있다. 베스파와 헬멧, 드라이버, 투어 가이드, 음식과 음료, 보험, 우천시 비옷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는 비용이 1인 기준 95달러. 

프로그램 종류는 호찌민의 야경과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사이공 바이 나이트(Saigon by Night), 현지 생활문화를 접할 수 있는 인사이드 사이공(Inside Saigon) 등 다양하다. 강력 추천하는 프로그램은 시내 골목골목을 돌며 맛있는 베트남 음식들을 두루 맛보는 로컬 스트리트 잇츠(Local Street eats). 쌀국수, 숯불 꼬치구이, 반미 등 노점과 식당을 가리지 않고 맛집만 쏙쏙 골라 인도해 준다. 투어는 저녁 6시부터 4시간가량 호찌민 시내를 지그재그로 돈다. 먹고 달리고, 또 먹고 달리고의 반복. 꽤 역동적인 신선놀음에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Nha Trang 나트랑

비나이다 비나이다 

나트랑에 닿은 여행자들은 본의 아니게 종교 대통합에 일조하게 된다. 인도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고대 참파 왕국 유적지 뽀나가르 참탑, 얼마나 거대한지 나트랑 시내에서 어렵지 않게 조망할 수 있는 좌불상이 자리한 롱선사, 그리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석조로 세운 아름다운 나트랑 대성당까지 도심 주요 관광지들이 어쩌다 보니 대부분 종교 유적지다. 태풍의 영향권에 접어든 나트랑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도 나는 왜 굳이 그곳들을 다 둘러봤을까.

나트랑 대성당
나트랑 대성당

힌두교 사원, 불교 사찰, 가톨릭 성당을 가리지 않고 나는 제단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기도까진 아니고, 그냥 좀 ‘잘 봐 주세요’ 하는 느낌으로. 마음이 그랬다. 처음엔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했던 감염병이 국경 폐쇄와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로 이어지며 세계는 혼란에 빠졌다. 뿐만 아니라 경제 격차에 따른 불평등한 백신 분배, 감염자를 특정 인종, 계층, 종교와 결부시키면서 나타난 편견과 차별. 여러 사회 문제가 감염병 종식만큼이나 시급한 해결 과제로 부각됐다. 그 어두웠던 날들에서 겨우 조금씩 벗어나게 됐고, 이렇게 해외여행을 다시 경험하게 되었으니 태풍이 대수고, 종교가 대수인가. 구체적인 바람도 없이 그저 잘 봐 달라 할 밖에.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빗줄기에도 아랑곳 않고 기도하는 이들, 제단에 빗물 고일까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에게 두루 경의를 표하며.

뽀나가르 참탑
뽀나가르 참탑

순간순간에 기뻐하기를 

신기하게도 리조트에 머무는 동안에는 날씨가 말도 안 되게 좋았다. 잠자코 쉬라는 신의 계시인 것처럼. 비를 쫄딱 맞으며 짧은 도심 산책을 끝낸 후엔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자’고 결심했다. 사실 아나만다라 깜란에 머물면서 굳이 바깥으로 나갈 이유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나만다라 깜란
아나만다라 깜란

깜란은 나트랑 공항 인근에 위치한 지역이다. 근래 나트랑에 새로 문을 여는 호텔·리조트들은 대부분 깜란에 자리를 잡고 있다.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상당수의 호텔·리조트들이 나트랑 도심부의 화이트비치를 따라 들어서 있었는데, 최근 정책이 바뀌어 이제 더 이상 나트랑 도심 해변에서는 호텔·리조트를 개발할 수 없게 됐다. 2022년 6월, 화이트비치 가운데 자리했던 에바손 아나만다라 리조트가 숙박 기능을 없앤 후 레스토랑과 스파만 유지하는 것으로 운영 방침을 전환하고, 깜란 지역에 새로운 아나만다라 리조트를 오픈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아나만다라 깜란에서 시내까지 차로 40분은 가야 하지만 리조트 셔틀이나 택시를 이용해 오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물론 굳이 리조트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 시내에서 멀어졌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아나만다라 깜란
아나만다라 깜란

느긋하게 조식을 챙겨 먹고, 그보다 더 천천히 초록 야자수 사이를 걸었다. 수영장에 걸터앉아 두 발을 참방참방하다가 프라이빗비치로 나가 밀려들었다 밀려나가기를 반복하며 부서지는 파도를 멍하니 바라봤다. 쓰고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싶다. 부지런히 쉬었다고나 할까. 분명 호사였다.

아나만다라 깜란
아나만다라 깜란

문득 예전의 나라면 어땠을지 생각해 봤다. 분명 비가 와서, 혹은 리조트가 시내로부터 너무 멀어서 등등 누리지 못한 것들에 대해 크게 아쉬워했을 테다. 오래 발이 묶였던 덕에 처음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의 감정, 모든 것이 다 설레고 기쁨이었던 그 여행의 감각이 되살아난 것만 같았다. 그래, 순간순간에 기뻐하자. 이것이 워밍업으로 떠난 여행에서 챙겨온 유일한 기념품이었다.  

 

▶AIRLINE

2023년 1월 기준 비엣젯 항공(Vietjetair)은 서울과 부산에서 베트남 주요 여행지를 잇는 직항 노선을 운항 중이다. 서울에서는 호찌민·하노이·다낭·나트랑·푸꾸옥·하이퐁·달랏·껀터, 부산에서는 호찌민·하노이·다낭·나트랑 노선을 이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저가항공사(LCC)들이 단일 등급 좌석인 반면 비엣젯항공은 스카이보스(SKY BOSS)라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일반석에 비해 앞뒤 간격이 10cm가량 넓은 좌석이 제공되며 우선 체크인, 사전 좌석 지정, 공항 라운지 이용, 탑승 게이트와 항공기 간 개별 차량 서비스, 기내식·음료 무료, 30kg 위탁 수하물 외 기내 반입 수하물 10kg 무료 등의 혜택이 있다.

▶COVID-19 ISSUE

베트남 입국은 코로나19 검역 절차 폐지로 백신 접종 여부나 PCR 검사 결과 등의 별도 증빙 없이 가능하다. 단, 여권 유효기간은 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야 한다. 현지 여행시 실내외 마스크 착용 의무 규정도 없다. 최대 15일까지 무비자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글·사진 서진영  에디터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비엣젯항공(Vietjet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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