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여행자의 감각과 시선으로 담아낸 예루살렘, 텔아비브, 사해 그리고 엔게디.

서쪽 성벽(Western Wall)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포즈는 제각각이지만, 간절함만큼은 똑같지 않을까? 참, 흔히 통곡의 벽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현지인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서쪽 성벽(Western Wall)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포즈는 제각각이지만, 간절함만큼은 똑같지 않을까? 참, 흔히 통곡의 벽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현지인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거창함은 내려두고 
예루살렘 Jerusalem

1월의 이스라엘은 제법 시끄러웠다. 정확히 말하면 국내 뉴스에서 다뤘던 이스라엘이다. 여행 중에도,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이스라엘은 좋지 않은 소식으로 짧게나마 전파를 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여행은 다른 차원이고, 내 겨울의 이스라엘도 무척 안녕했다. 생각보다 쌀쌀했던 날씨와 제법 굵은 빗줄기는 변수였지만. 

시작은 적당히 찬 공기를 머금은 깊은 밤의 예루살렘. 벤구리온공항에서 1시간도 채 안 걸렸는데, 이곳 특유의 베이지색 건물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이 색감을 봐야 비로소 예루살렘에 왔음을 실감한다. 호텔에 짐을 푼 듯 만 듯 던져두고 분수대가 있는 광장으로 밤마실을 나섰다. 벤치에 앉아 우정을 속삭이는 친구들, 늦은 하루를 마치고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 밤공기를 마시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방인은 예루살렘에 녹아들 준비를 했다. 가벼운 산책 후에 들어온 호텔은 유독 포근했고, 낮은 조도의 로비 라운지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을 시기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양한 색감으로 여행자를 홀리는 아랍마켓. 그저 휙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예루살렘을 잘 여행하기 위해선 딱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넉넉한 시간과 편안한 운동화 그리고 성지순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이 가능하다는 사실. 그저 많이 걷기만 해도 여행지로서 예루살렘의 매력과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숙소 위치가 괜찮으면 도보 여행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데, 자유여행이라면 마밀라(Mamila) 지역을 추천한다. 이곳에서 출발하면 올드시티를 비롯해 웬만한 주요 관광지는 두 발만 있으면 충분하다. 이번에는 야파 게이트(Jaffa Gate)에서 출발해 다윗의 탑(Tower of David), 성곽, 서쪽 성벽(Western Wall), 거룩한 무덤 성당(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아랍 마켓 등 올드시티 전반을 돌아다녔다. 또 주황색 불빛이 감도는 올드시티의 낭만적인 밤까지 꼼꼼하게 봤다. 야파 게이트에서 아랍마켓 초입까지 이어지는 길과 다윗의 탑 입구에서 보는 알록달록한 광경이 특히 인상적이다. 

서쪽 성벽의 가려진 모습을 볼 수 있는 터널 투어. 예약이 필수인데, 가능하면 꼭 경험하기를 추천한다
서쪽 성벽의 가려진 모습을 볼 수 있는 터널 투어. 예약이 필수인데, 가능하면 꼭 경험하기를 추천한다

머릿속 많은 장면 중 지하에서 만난 서쪽 성벽의 모습이 가장 깊숙한 곳에 각인됐다. 우리가 흔하게 보는 서쪽 성벽은 70m 남짓 되는 벽과 그 앞에서 거룩하게 기도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별도의 예약을 통해 서쪽 성벽 터널 투어(The Great Stone Route·The Great Bridge Tour)가 가능하다. 좁고 은밀한 통로를 따라 땅속에 숨겨진 서쪽 성벽을 마주하게 된다. 유대교에서 가장 거룩하게 여기는 곳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셈이다. 게다가 1950년가량의 긴 세월이 새겨진 서쪽 성벽의 또 다른 모습을 통해 고대 유대인들의 시간과 공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텔아비브 Tel Aviv

이스라엘은 그다지 큰 국가는 아니다. 면적이든 인구든 말이다. 영토는 우리나라보다 5배 작고, 인구는 900만명 수준이다. 하지만 여행지로서의 이스라엘은 다르다. 짧은 도시 간 거리에도 불구하고, 지역별로 뚜렷한 특징과 매력이 있어 가는 곳마다 새로운 국가에 온 것 같다.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만 해도 전혀 다른 세상이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과거라면, 텔아비브는 현재를 대변한다. 여느 대도시 못지않은 고층 빌딩 숲, 수많은 인파, 각양각색의 식당과 카페, 영감을 선사하는 문화예술, 화려한 밤거리 등 국제도시의 면모는 다 갖췄다. 게다가 지중해까지 품고 있어 휴양지로도 손색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카메라를 피하지 않는다. 쉔킨 스트리트에서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는 그가 마치 인생의 승자처럼 보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카메라를 피하지 않는다. 쉔킨 스트리트에서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는 그가 마치 인생의 승자처럼 보였다

어느 여행지와 마찬가지로 텔아비브에서도 최소한 이틀 이상은 머물러야 한다. 거처는 지중해의 파란 바다를 볼 수 있는 오션뷰 호텔이 좋겠다. 비용 부담이 조금 있지만, 렛시프 헤르베르트 사무엘 스트리트(Retshif Herbert Samuel St.)에 있는 곳들을 추천한다. 호텔 코앞으로 바나나 해변(Banana Beach), 예루살렘 해변, 고든 해변(Gorden Beach) 등이 있다. 또 주요 관광지인 카멜 시장(Carmel Market), 다양한 상점과 패션, 예술 등 텔아비브의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는 쉔킨 스트리트(Sheinkin Street), 아기자기한 예쁨이 있는 네베쩨덱(Neve Tzedek) 거리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카페, 바, 클럽이 있는 로스차일드 거리(Rothschild Boulevard) 등도 도보로 닿을 수 있다. 해변을 따라 걸으면 올드 야파(Old Jaffa)마저 가깝게 느껴진다. 

텔아비브의 특징 중 하나인 바우하우스(Bauhaus) 스타일의 건축물. 바우하우스 건축물을 찾아다니는 투어도있다
텔아비브의 특징 중 하나인 바우하우스(Bauhaus) 스타일의 건축물. 바우하우스 건축물을 찾아다니는 투어도있다

이번에는 바나나 해변과 맞닿아 있는 호텔에서 머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빈틈없이 근사한 여행을 했다. 테라스에서 멍하니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아침잠을 쫓았고, 이스라엘의 신선한 재료를 활용한 맛깔난 뷔페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참, 텔아비브의 1월 기온은 우리나라 10~11월과 비슷해 활동하기 매우 좋다. 그래서 그럴까. 바다에 나가면 서핑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반팔티 차림으로 뛰는 러너들도 상당히 많다. 아침부터 활기가 넘치는 텔아비브다. 점심 이후에는 쉔킨 거리나 네베쩨덱 거리에서 쇼핑하고, 지치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텔아비브 바나나 해변(Banana Beach). 파란 하늘과 바다만 있어도 근사한 여행이 된다
텔아비브 바나나 해변(Banana Beach). 파란 하늘과 바다만 있어도 근사한 여행이 된다

해질녘에는 다시 해변으로 돌아와야 한다. 지중해의 붉은 노을을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14km에 달하는 텔아비브 해변 어떠한 지점에 있어도 낭만적으로 하루의 마침표를 찍게 되는데, 올드 야파가 가깝게 보이는 찰스 클로어 해변이 제법 괜찮다. 다음 목적지로 가야 하는데 몽환적인 풍경을 두고 가려니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저녁 식사도 허투루 할 수 없으니 올드 야파 또는 로스차일드 거리의 세련된 식당을 예약하기를. 오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거리를 만날 수 있다. 텔아비브에서의 시간이 쌓이면 아쉬운 마음 없이 이곳을 떠날 수 없게 되고, 다시금 텔아비브 항공권을 찾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겐 이마저 비일상
엔게디 키부츠 Ein Gedi Kibutz

여행의 매력은 여행자의 수만큼 다양할 것이다. 해외여행이 선사하는 비일상도 그중 하나다. 지상과 완전히 단절된 비행기 내의 시간, 다른 외형의 사람과 건축 등으로 형성되는 독특한 분위기, 이방인이 된 느낌, 일상과의 완벽한 분리 등 다양한 이유로 여행에 매료된다. 심지어 언어가 통하지 않는 데서 오는 약간의 답답함마저 즐거운 순간이 된다.

엔게디 키부츠에서 만난 이스라엘 염소. 멋스럽게 휜 뿔에 눈이 간다
엔게디 키부츠에서 만난 이스라엘 염소. 멋스럽게 휜 뿔에 눈이 간다

사해 지역의 엔게디에서는 비현실적인 공간의 아름다움을 경험했다. 엔게디는 히브리어로 오아시스(우물)의 ‘엔’과 새끼 염소의 ‘게디’를 합해 ‘새끼 염소의 우물’이란 뜻이다. 동굴과 샘이 발달한 오아시스로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이 근처 동굴에 피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은 국립공원과 자연보호구역, 공동체 키부츠의 거주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의 무대는 엔게디 키부츠다. 1953년 시작된 공동체인 엔게디 키부츠, 사해의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과 문화를 개척한 주인공이다. 과거에는 집단농장 형태로 함께 모여 일하고 소득을 분배했지만, 현재는 제조업과 관광업 등 산업 분야가 다양해졌다. 동시에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등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키부츠의 가치와 정신은 유지되고 있으며,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평화라는 단어를 풍경으로 만든다면 여기가 아닐까
평화라는 단어를 풍경으로 만든다면 여기가 아닐까

키부츠가 운영 중인 식물원(Ein Gedi Botanical Garden)과 그들이 사는 공간, 엔게디의 자연을 돌아보면서 마음의 안식을 누렸다. 평화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공간으로 만든다면 바로 이곳인 것 같아서. 현생에서 느끼는 아픔과 고통, 좌절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이곳에서 무용하다. 야자수를 비롯해 다채로운 식물이 푸릇함과 산뜻한 색감을 더하고, 널찍한 마당과 테라스가 있는 주택들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마침 아이들까지 뛰놀고.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한 삶의 모습을 엿봤다. 유대광야의 누르스름한 돌산이 배경으로 있어 웅장함을 더한다. 게다가 몇 문장으로 다 표현하기 힘든 평화로운 공간은 사람만의 몫은 아니었다. 다양한 동물이 유유히 배회하고 있는데, 운이 좋으면 야생 염소(야엘)를 만날 수 있다. 멋스럽게 휜 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순한 편이지만 막상 눈을 마주치면 염소의 카리스마에 움찔하게 된다. 두 마리의 염소가 풀을 뜯어 먹는 모습 덕에 키부츠의 풍경이 좀 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취재협조 이스라엘관광청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