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쇼핑이지만 선택관광 100달러, 상품가 육박
“채워야 하는 실적 있어” 현지 가이드의 호소
고객 인식 변화 필요, 저가보다 편리함에 초점

코로나 이후 첫 중국여행을 떠났다. 칭다오 3일 10만원대 초저가 패키지 상품으로. 선택관광이 덕지덕지 붙었지만 인생 첫 패키지 여행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무난했다. ‘제 값 내고 갔으면 더 좋았을 걸’하는 생각은 덤이다.

중국 칭다오 글·사진=이은지 기자 even@traveltimes.co.kr

오전 6시 인천공항 여행사 카운터. 코로나 동안 텅 비었던 카운터도 하나둘 주인을 찾고 있다 / 이은지 기자 
오전 6시 인천공항 여행사 카운터. 코로나 동안 텅 비었던 카운터도 하나둘 주인을 찾고 있다 / 이은지 기자 

■가이드의 은밀한 접선

중국여행은 다소 까다롭다. 아직까지 관광비자가 필요한 나라여서다. 자유여행이라면 비자 발급을 위해 평일 업무시간에 비자센터(단수 5만5,000원)를 직접 방문하거나, 대행업체(10만원대)에 맡겨야 한다. 시간·비용적으로 부담되기 마련인데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니 여행사에 비자발급 비용(약 5만원)과 여권 사진을 보낸 뒤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었다. 출발 당일 공항에 도착하니 입국에 필요한 세관 및 건강 QR코드도 모두 알아서 발급해 준 상태였다. 오전 6시, 2박3일간 함께 할 20여명의 일행과 인사를 나눴다. 10명 이상의 단체관광객이라면 단체비자(별지비자)가 발급되는데, 비자에 적힌 순번대로 차례로 입국 심사를 해야 하니 서로 얼굴을 익혀둬야 했다.

2021년 개항한 칭다오 자오둥 신공항에서 가이드를 만났다. 1시간 가량 비행기가 지연돼 서둘러 일정을 시작했다. 곧바로 ‘현지 사정에 의해 일정 순서가 변경될 수 있다’는 안내 문구를 실감했다. 동선 상의 이유로 둘째 날로 예정된 관광지 중 일부를 첫째 날에 방문하기로 했다. 물론 모두의 동의 하에 말이다. 매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는 칭다오 맥주 축제 기간. 국내외 관광객으로 한창 붐비는 성수기란다. 가는 곳마다 바글바글한 관광객 사이를 뚫고 일행들과 함께 움직이며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중간중간 30분~1시간 가량 자유시간도 제공했다.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한 식당을 섭외했는지 현지식 식사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간, 바쁜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다. 가이드가 마이크를 들고 관광지, 체험, 식사 등 다양한 선택관광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가로 오신 만큼 사실 제가 회사에 채워야 하는 실적이 있으니 긍정적으로 잘 생각해 달라”고 호소하며 특히 옵션 세 가지를 추천했다. 이따 객실로 개별적으로 찾아뵙겠다는 말도 함께였다. 짐을 정리한 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이드와의 삼자대면이었다. 같이 간 일행이 50달러짜리 선택관광 하나만 하겠다고 하자 가이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옵션 여러 개를 하면 가이드 재량으로 할인해줄 테니 조금만 더 생각해 달라는 말을 끝으로 협상 아닌 협상은 보류됐다.

일행 내에서도 선택관광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대다수가 당연하게 선택관광을 신청했다 / 픽사베이 
일행 내에서도 선택관광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대다수가 당연하게 선택관광을 신청했다 / 픽사베이 

■선택관광 해줘야죠 vs 강매 아닌가요?

선택관광을 두고 일종의 눈치싸움이 펼쳐졌다. 잠시 호텔 체크인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호텔 로비에서 중년의 여성분이 다가와 어떤 옵션을 할 거냐며 물었다. “꼭 해야 하나요?”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표정으로 묻자 답이 돌아온다. “내가 그동안 패키지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이런 초저가상품은 선택관광 해줘야 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가이드가 손해 봐. 패키지 처음 왔다니까 말해주는 건데 강요는 아니고, 잘 생각해 봐요.” 은근슬쩍 또 다른 이에게 가서 의견을 묻자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웬만하면 가이드가 추천하는 옵션은 다 해줘야죠. 우리는 세 개 다 하려고.”

신기했다. 패키지 여행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당연히 선택관광에 불만인 사람들밖에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강매 아니냐”며 강경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원래 다 하려다가 가이드의 태도가 불만족스러워서 가장 비싼 선택관광 하나만 하겠다”는 일행도 있었다. <여행신문>에서 꾸준히 출혈경쟁의 폐해를 지적해왔듯이, 왕복항공권 수준의 초저가 패키지 상품은 현지에서 마이너스를 떠안고 쇼핑과 옵션으로 메우는 구조다. 이러한 현실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소비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다.

칭다오 3일 10만원대 초저가 패키지 상품에는 선택관광이 덕지덕지 붙었지만 인생 첫 패키지 여행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무난했다. / 픽사베이
칭다오 3일 10만원대 초저가 패키지 상품에는 선택관광이 덕지덕지 붙었지만 인생 첫 패키지 여행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무난했다. / 픽사베이

결국 100달러짜리 선택관광을 신청하고 둘째 날 일정을 시작했다. 총 3개 210달러 상당의 옵션을 180달러에 해주겠다는 보다 구체적이고 은밀한 가이드의 제안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기존에 지불한 여행상품가보다 더 많은 금액을 현지에서 지불하는 셈이지 않나. 총 여행경비를 따져보면 비싼 금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패키지 상품가 자체가 워낙 저가이다 보니 선택관광 비용에 대한 가격저항이 발생했다.

신청하지 않은 선택관광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근처에서 머물며 자유시간을 보냈다. 다른 사람들의 관광이 언제 끝날지 명확하지 않고, 멀리 이동할 수 없어 제한적이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먹기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기다렸다. 4시간은 족히 걸린 풍경구 선택관광을 하지 않은 한 사람은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 지루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마사지 순서가 되자 가이드가 살며시 다가와 “몰래 두 분에게만 마사지 제공해 드릴 테니 후기 잘 부탁한다”며 속삭였다. 참, 고객의 평가에 운명이 좌우되는 일이지 싶었다. 

칭다오 노산풍경구 정상. 케이블카를 타고도 약 40분을 더 걸어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 이은지 기자 
칭다오 노산풍경구 정상. 케이블카를 타고도 약 40분을 더 걸어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 이은지 기자 

■정당한 가격으로 인식 변화

결론적으로는 가격으로나 일정으로나 나름 안도의 한숨을 내쉰 여행이었다. 출발 전 같은 기간으로 같은 숙소와 항공편을 조회했을 때 최저가는 각각 21만원, 24만원이었다. 10만원대의 패키지 상품가에 가이드·기사 팁(30달러)과 추천 선택관광(180달러)을 모두 포함한 금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패키지는 이동과 식사가 모두 포함되어 있으니 훨씬 저렴한 셈이다. 8월3일 현재 쇼핑을 없애고 선택관광을 줄인 40~50만원대의 칭다오 상품도 여러 여행사에서 판매 중이다. 소비자들이 OTA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구매하는 금액보다 여행사가 공급받는 요금이 비교적 저렴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출발 전 준비사항과 현지에서의 일정을 계획하고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그 편리함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터. 그 수고로움을 감안하면 앞으로 취향에 맞는 패키지에 기꺼이 돈을 더 지불할 의향도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만연한 '패키지는 저가'라는 기존의 인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꺼이 선택관광을 신청하는 일행들을 보며,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건강하고 현명한 소비라는 사실을 고객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키지 여행이 처음이었던 동반인은 “어차피 총 여행경비는 비슷하니 차라리 선택관광을 기본 일정에 포함시키고 가이드의 권유 없이 편하게 여행하는 게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길, 가이드가 또 다른 중국 여행지를 소개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백두산 상품을 추천했다. “이번처럼 저렴한 가격으로 오시는 것도 좋지만 다음 중국 여행은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고 이동 시간이나 대기 시간을 줄인 상품을 이용해보셔도 좋을 것 같다”고 넌지시 당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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