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도는 휴가철에도 북적이는 섬이 아니다. 더구나 비켜선 계절에는 더욱 한적하다. 비교적 먼바다에 있는 데다 섬으로 가는 길마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이도를 한 번이라도 여행했던 사람들은 그 불편함을 오히려 다행이라 한다. 인위적인 치장 없는 산과 해안, 정겨운 마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성촌 바닷가에 반영된 목섬의 거칠고 투박한 자태
성촌 바닷가에 반영된 목섬의 거칠고 투박한 자태

●우이도 여행의 시작
풍성사구

우이도는 비금, 도초도를 넘어 흑산 바다가 시작되는 경계에 있는 섬이다. 목포에서 하루 한 번 떠나는 배가 우이1구 진리마을을 기항한 후, 2구 돈목마을에 도착하기까지는 무려 3시간 40분이 걸린다. 1구를 젖혀 두고 2구에서 여행을 시작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넘치도록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풍성사구다. 

돈목해변에서 바지락을 채취하는 섬 아낙들
돈목해변에서 바지락을 채취하는 섬 아낙들

한때 ‘동양 최대’란 수식어가 붙었던 풍성사구는 돈목해변 중앙에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풍성사구의 높이는 100m에 달했고 폭도 50m가 넘었다. 하지만 현재는 모래가 많이 유실되어 전면부 중앙은 움푹 꺼지고 높이도 30~40m에 불과하다. 많은 잡초와 식물들이 자라나 사구로의 모래 유입을 막고 오히려 면적을 침식하는 현상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사구 위쪽의 탐방을 제한하고 자연 복원 중이다. 그럼에도 활짝 열린 백사장과 수직으로 떨어지는 해안사구의 어울림은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귀한 풍광이다.

풍성사구 위에서 바라본 우이도는 모래의 섬이다
풍성사구 위에서 바라본 우이도는 모래의 섬이다

●생태의 보고 
우이도 해변

신안에는 ‘모래 서 말은 먹어야 시집간다’라는 말이 전해 내려오는 섬들이 있다. 우이도도 그중 하나로, 해안의 반이 백사장일 정도로 모래가 풍부하다. 2구의 돈목과 성촌은 같은 이름의 해변을 마을 앞에 두르고 있으며 띠밭너머해변도 1구 진리에서 멀지 않다. 특히 돈목해변과 성촌해변은 풍성사구를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는데, 그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해안을 따라 완만하게 만입된 돈목해변이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인 데 반해 성촌해변은 규모도 큰 데다 바다와 직선으로 맞닿아 있다. 지극히 남성적이다. 

우이도의 해변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모래 속까지 온전한 생태의 보고다. 수천 마리의 붉은 게가 떼를 지어 활보하는가 하면 조금만 파 내려가도 바지락이 나온다. 그토록 광활하고 풍요로운 해변을 독차지할 수 있다면? 우이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우이도에서 해변을 독차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우이도에서 해변을 독차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텐풍 비밀 스폿
성촌해변

성촌해변의 우측 끝점 마두산 아래에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들이 해변을 향해 돌출되어 있다. 밀물에 들어왔던 바닷물이 채 빠지지 못하고 바위 사이의 모래톱에 걸려 작은 풀등을 만들어 낸다.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텐풍(텐트 풍경)’의 적격지다.

성촌해변 끝자락의 풀등은 텐풍의 최적지다
성촌해변 끝자락의 풀등은 텐풍의 최적지다

그런데 우이도는 다도해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데다가 천연기념물 풍성사구가 있어 원칙적으로 야영과 취사가 금지돼 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데이 캠핑이다. 데이 캠핑은 피크닉과 같은 개념으로, 바닥에 까는 그라운드시트 대신 텐트나 타프를 이용하며 해가 질 무렵에 장비를 철수하면 된다. 

도리산을 서풍받이로 세워 놓고 돈목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도리산을 서풍받이로 세워 놓고 돈목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사라진 마을  
대초리

면적 10.7km²의 우이도는 차량이 다니지 않는 섬이다. 1구 돈목과 2구 진리를 잇는 유일한 육로도 도로가 아닌 산길이다. 섬사람들에게는 숙명과 같은 불편함이지만 여행자에게는 특별한 경험이다.

우이도의 첫 마을이지만 지금은 사라진 대초리 돌담 터
우이도의 첫 마을이지만 지금은 사라진 대초리 돌담 터

산길을 걷다 보면 지금은 사라진 대초리 마을 터를 만나게 된다. 대초리는 450여 년 전 입도인들에 의해 최초로 세워진 마을이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 유지됐지만, 돌담과 주춧돌 등 거주의 흔적만을 남겨 둔 채 텅 하니 비워졌다.

 

●정약전의 적거지
진리마을

면 출장소와 치안센터 그리고 보건소가 있는 진리는 우이도에서 가장 큰 마을로 섬의 관문이기도 하다. 진리는 지형이 비교적 평탄해서 밭농사가 가능하다. 모래가 많아 농사가 어려운 돈목과 성촌에 비해 가구 수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육지와 많이 떨어진 섬에서 작은 밭 하나는 삶을 이어 가기 위한 든든한 배경이 되어 왔다. 

도리산을 서풍받이로 세워 놓고 돈목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평범한 어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1구 진리마을

신유박해로 인해 흑산도로 유배를 떠난 정약전은 당시 소흑산도라 불렸던 우이도를 오가며 적거 시절을 보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과 밭 사이 정약전 유배지란 팻말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집터가 전부다. 

도초도를 떠나 돈목해변으로 들어오는 아침 여객선
도초도를 떠나 돈목해변으로 들어오는 아침 여객선

▶TRAVEL INFO

여객선 
목포항 여객선 터미널(11:40) → 우이 2구 1일 1회 운항 (3시간 40분 소요)

▷SPOTS 

상인으로 드물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홍어장수 문순득 생가
상인으로 드물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홍어장수 문순득 생가

홍어장수 문순득 생가
진리마을 내에 문순득의 생가가 있다. 1801년 영산포로 홍어를 팔기 위해 떠났던 홍어장수 문순득의 표류기(풍랑을 만나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난징과 베이징을 돌아 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정약전이 <표해록>이란 책에 대필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표해시말’은 정약전 사후에 우이도로 유배됐던 유암이 표해록을 본으로 해 누락된 부분을 보완해 쓴 글이다.

우이선창

‘우이선창’이란 이름을 가진 진리마을의 옛 선창은 지어진 지 300년이 훌쩍 넘었다.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국내 유일의 전통 포구 시설인 옛 선창은 근래까지 배를 건조하고 수리하던 곳으로 쓰였고 현재는 선박들의 피항 포구로 활용되고 있다. 

상산봉
상산봉의 들머리는 진리마을을 1.5km 가량 남겨 놓은 몰랑 삼거리다. 이곳에서 상산봉 정상까지는 가파른 경사를 치고 올라야 한다. 높이 361m의 상산봉 정상에 서면 360도로 해안지형과 산세의 흐름이 둘러싼다. 동소우이도, 서소우이도, 저 멀리 비금, 도초 옆으로는 대야도, 신도의 모습까지 발아래 펼쳐진다. 

▷FOOD & STAY 
우이도에는 식당이 없다. 대신 3개 마을에 15곳이 넘는 민박이 있다. 민박의 밥상은 먼 섬의 특성상 해산물을 주재료로 한다. 고기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가짓수도 많고 맛이 있으니 기대할 만하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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