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종일 부지런히 먹고 마셔도 시간이 부족했다. 바게트 빵을 뜯으며 닭고기를 기다렸고, 매 끼니에 디저트를 거르지 않았으며,  ‘한입만 더’를 실천하다가 매일 밤 소화제를 삼켰다. 프랑스에서 가장 맛있는 길을 걸었다.

리옹의 전통음식을 판매하는 식당, 부숑에서 만난 리옹의 맛
리옹의 전통음식을 판매하는 식당, 부숑에서 만난 리옹의 맛

Tasty Road of France 
발레 드 라 가스트로노미 
Vallée de la Gastronomie

지난 2019년, 프랑스에는 리옹을 중심으로 맛있는 길이 생겼다. 디종(Dijon)에서 시작해 부르고뉴(Burgundy), 오베르뉴 론 알프스(Auvergne-Rhone-Alpes), 프로방스(Provence), 마르세유(Marseille)까지 이어지는 640km의 미식 로드, 발레 드 라 가스트로노미(Vall?e de la Gastronomie)다. 한국에는 올해 10월 공식 소개됐다. 프랑스 최고의 미식을 알리겠다는 목표 아래 여행 전문가들과 기자, 일반인 등 20여 명의 심사위원들로부터 까다로운 평가를 통해 개발됐으니 믿을 만한 구석이 많다. 

우선 길 위에는 맛있는 미식 경험이 가능한 관광지부터 와이너리, 쿠킹 클래스, 농장, 레스토랑, 치즈 및 초콜릿 숍 등 하이엔드부터 가성비 넘치는 곳까지 선택지가 다양하다. 무료 체험이 가능한 곳도 있다. 만원의 행복은 물론 고급스러운 식사까지 다양한 예산에 맞춰 일정을 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 프랑스의 우수한 미식 경험만을 모은 만큼 그 길을 따라 여행하다 보면 어딜 가든 ‘기본’ 이상의 미식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에 진심인 사람들, 양질의 제철 식재료를 추구하는 일상에서 비롯된 맛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음식의 기본은 그랬다. 생각이 많아지는 맛이다. 그중에서도 미식의 중심, 리옹에서 하루 종일 먹고 마신 이야기를 전한다. 

 

리옹에서는 ‘배터짐주의’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 프랑스 미식의 수도는 리옹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리옹에 가자”고 제안한다면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러 가자” 정도로 해석해도 되겠다. 프랑스 최초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 탄생한 도시, 세상의 모든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도전들이 이어지는 리옹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다. 
그런 의미로 리옹은 난감한 곳이다. 꼭 먹어 봐야 할 전통 음식과 식당만으로도 열 손가락이 부족한데 창의적인 도전을 이어 가는 식당들까지 두루 섭렵하려면 시간이 없다. 그래서 리옹을 여행할 때 꼭 필요한 건 미식 투어 전문 가이드다. 1박 2일 동안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리옹에서 경험할 수 있는 미식 코스를 만들어 봤다.

리옹이 낳은 전설적인 셰프, 고(故) 폴 보퀴즈가 사랑했던 레 알 폴 보퀴즈 시장. 신선하면서도 구하기 어려운 고급 식재료를 찾아볼 수 있다
리옹이 낳은 전설적인 셰프, 고(故) 폴 보퀴즈가 사랑했던 레 알 폴 보퀴즈 시장. 신선하면서도 구하기 어려운 고급 식재료를 찾아볼 수 있다

▶09:00AM 
우선 아침에는 시장으로 향하는 게 좋겠다. 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함과 활기찬 기운이 하루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레 알 폴 보퀴즈 시장(Les Halles Paul Bocuse de Lyon)은 리옹이 낳은 전설적인 셰프, 고(故) 폴 보퀴즈가 사랑했던 시장이다. 브레스 닭부터 푸아그라, 굴, 샤퀴테리 등 고급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어 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둘러보는 재미가 넘치는 곳이다. 간단한 빵이나 신선한 과일로 아침 식사를 시작해도 좋다. 

 

▶12:00PM 
리옹의 미식은 실크 산업과 뗄 수 없는 관계다. 리옹이 산업 도시로 크게 발달하게 된 시기는 16세기부터다. 당시 프랑수아 1세가 프랑스 왕족의 실크를 만들 수 있는 특별 구역으로 리옹을 지정하면서 리옹의 인구는 1세기 만에 2배 이상 늘어났다고. 그 결과, 리옹은 실크라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수많은 장인을 낳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염색, 인조섬유 등 섬유 산업에서 꽃을 피우게 됐다. 그리고 리옹의 실크 공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저렴하면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찾은 곳이 바로 ‘부숑(Bouchon)’이었다. 

부숑에서는 와인 한잔 정도 덜 채울 수 있도록 고안된 특별한 와인병을 만나볼 수 있다
부숑에서는 와인 한잔 정도 덜 채울 수 있도록 고안된 특별한 와인병을 만나볼 수 있다

부숑은 리옹의 전통 음식을 판매하는 가정식 식당이다. 리옹에는 약 150개의 부숑이 오랜 세월 영업 중인데 그중에서도 약 20개의 식당은 역사와 전통, 스페셜티 메뉴 등으로 리옹 부숑 협회의 인증을 받았다. 사실 부숑에서 판매하는 메뉴들은 생소한 편이다. 노동자들에게 부담 없이 푸짐하게 대접하기 위해 대체로 뒷고기나 내장, 잡어 등 저렴한 식재료를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리옹 전통 조리법은 소박한 식재료에도 한껏 풍미를 불어넣고 있다. 과거 부숑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식사와 함께 와인도 제공했는데 조금이라도 와인을 아끼기 위해 (와인 한 병을 다 채우지 못하도록) 고안한 특별한 와인병도 부숑에서 볼 수 있는 재미다. 

치즈마다 어울리는 와인은 따로 있다. 리옹에서는 치즈와 와인 페어링을 탐험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치즈마다 어울리는 와인은 따로 있다. 리옹에서는 치즈와 와인 페어링을 탐험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2:00PM
리옹만의 간식도 놓칠 수 없다. 리옹 거리를 걷다 보면 브리오슈 반죽 사이에 소시지를 넣어 돌돌 말아 구운 ‘소시송 브리오셰(Saucisson Brioché)’와 다양한 돼지고기, 소고기를 사용해 말린 소시지, 빨간색의 달콤한 디저트 프랄린 등이 시선을 끈다. 특히 프랄린(Praline)은 볶은 헤이즐넛이나 아몬드를 설탕물에 졸여 굳힌 디저트다. 어떤 맛일지 상상되는 색에 지루함을 느낀 리옹의 한 셰프가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빨간색을 입혀 판매하면서 리옹 전역으로 유행이 불었다고.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많다. 실크 산업이 꽃을 피우던 시절 리옹으로 이주한 이탈리아 사람들 중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린 이들이 많아서다. 여기에 ‘아이스크림콘 맛의 아이스크림’과 같은 맛을 구현한 창의적인 아이스크림 가게도 수두룩하니 다이어트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다양한 돼지고기, 소고기를 사용해 말린 소시지
다양한 돼지고기, 소고기를 사용해 말린 소시지
빨간색의 달콤한 디저트 프랄린
빨간색의 달콤한 디저트 프랄린

▶06:00PM
지금쯤이면 당연히 배가 터질 것 같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배는 절대 터지지 않는다). 저녁은 프랑스답게 마무리하길 권한다. 리옹에는 자신들을 ‘치즈에 미친놈들’이라고 소개하는 두 남자가 있다. 앙투안(Antoine)과 쿠엔틴(Quentin)이다.

앙투안은 치즈에 대한 일화, 생산 과정, 떼루아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주는 치즈 전문가, 쿠엔틴은 와인 전문가다. 두 남자는 프랑스인들이 치즈와 와인을 무척 사랑하지만 둘의 페어링에 대해서는 아직 섬세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봤다. 그래서 치즈와 와인을 판매하는 ‘레 토케 뒤 프로마주(Les Toqués du Fromage)’를 열고 치즈에 중심을 둔 와인 페어링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2시간에 걸쳐 두 남자의 설명과 조언을 따르다 보면 치즈의 종류에 따라 풍미를 올리는 와인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워크숍을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레드 와인보다 스파클링 또는 화이트 와인이 치즈와 더 궁합이 좋다는 것. 하루 종일 리옹을 맛보고 나니 배는 부르고 말이 많아졌다. 

브리오슈 반죽 사이에 소시지를 넣어 돌돌 말아 구운 ‘소시송 브리오셰(Saucisson brioche)’
브리오슈 반죽 사이에 소시지를 넣어 돌돌 말아 구운 ‘소시송 브리오셰(Saucisson brioche)’

 

글·사진=손고은 기자 취재협조=프랑스관광청 www.france.fr, 오베르뉴 론 알프스 관광청 www.auvergnerhonealpes-touris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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