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힘이 세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왕의 존재감이 각별한 태국에서 더없이 든든한 수식어는 ‘로열'이다. 1929년 라마 7세는 방콕에서 230km 정도 떨어진 아담한 어촌마을 여름 별장을 지었다. 후아힌(Huahin)이다. 건물 하나 덩그러니 세운 게 아니다. 태국 왕실은 실제로 후아힌을 사랑하고 지금도 종종 이용한다고 한다. 

후아힌이 유명해진 결정적인 계기도 있다. 서거 이후에도 여전히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푸미폰 국왕이 1950년 시리낏 왕비와 5일간의 허니문을 보내면서 후아힌은 명실공히 ‘태국 왕실이 사랑하는 휴양지’가 됐다.

아시아 100대 골프장, 태국 10대 골프장에 꼽힌다는 자랑이 무색하지 않게 코스와 관리가 수준급인 반얀 골프클럽
아시아 100대 골프장, 태국 10대 골프장에 꼽힌다는 자랑이 무색하지 않게 코스와 관리가 수준급인 반얀 골프클럽

왕실의 총애를 받고 자란 후아힌에는 ‘태국 최초’의 타이틀을 단 곳이 많다. 후아힌 기차역은 115년 역사를 자랑하는 태국 최초의 기차역이자 가장 아름다운 기차 역사로 유명하다. 최근 길 건너에 현대식 신역사가 생겨 현역에선 은퇴했지만 여전히 찾는 이가 많다. 태국 전통 건축 양식 중 하나인 붉은 겹지붕이 멋스러운 이 역사는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SNS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최초의 기차역 바로 옆에 최초의 골프장이 운영될 만큼 골프에 진심인 후아힌
최초의 기차역 바로 옆에 최초의 골프장이 운영될 만큼 골프에 진심인 후아힌

왕실의 원만한 이동이 중요한 소임이었을 후아힌 기차역 바로 옆에는 로열 후아힌 골프클럽(Royal Hua Hin Golf Club)이 있다. 가깝다 정도가 아니라 철길 바로 옆에 붙어 있다. 기차에 내려 드라이버를 뽑아 들고 걸어서 티 박스에 올라설 수 있을 정도다. 이런 기막힌 위치에 골프장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왕실의 힘이다. 역시나 태국 최초의 골프장 타이틀을 지닌 100년 역사의 로열 후아힌 골프클럽은 한동안 왕실 전용 골프장으로 운영됐다. 현재는 일반에 개방돼 골프클럽 하나 손에 들고 산책하듯 골프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태국 최초의 기차역 바로 옆에 최초의 골프장이 운영될 만큼 골프에 진심인 후아힌이니 당연히 골프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후아힌에는 블랙 마운틴(Black Mountain)과 반얀(Banyan)과 같은 명문 골프장을 비롯해 스프링필드 로열(Springfield Royal), 팜 힐스(Palm Hills), 레이크 뷰(Lake View) 등 예산이나 취향, 실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10여 곳의 골프장이 운영 중이다. 매년 8월과 9월이면 저렴한 그린피로 주요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는 후아힌 골프 페스티벌도 개최한다.  


●파인애플 밸리로 이름 바꾸는 
반얀 골프클럽

반얀 골프클럽은 2009년에 문을 연 18홀(파 72, 7,361야드) 챔피언십 코스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만의 방문이지만 반얀 골프클럽은 여전했다. 아시아 100대 골프장, 태국 10대 골프장에 꼽힌다는 자랑이 무색하지 않게 코스와 관리가 수준급이다. 오전에 내린 비가 그치고 바로 플레이를 했는데도 페어웨이는 질척이지 않고 물이 고인 벙커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배수도 훌륭했다. 그린도 미묘한 경사를 고스란히 반영할 정도로 빠르고 민감하다. 

물은 별로 없지만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나무와 벙커를 적절히 배치해 둔 반얀에서 좋은 스코어를 내려면 정교한 플레이가 필요하다. 반얀 골프클럽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려면 클럽하우스 2층 테라스에 가면 된다. 대형 연습 그린을 비롯해 푸른 융단처럼 펼쳐진 코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테라스에서 가장 잘 보이는 10번홀(파4, 430야드)은 핸디캡 2번이지만 많은 아마추어 골퍼가 가장 어렵게 플레이하는 홀이다. 티샷이 페어웨이 중앙을 지키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밀리면 반얀트리나 파인애플 등 나무가 많아 그린 공략이 어렵고 오른쪽 도그레그 홀이라 왼쪽으로 밀리면 거리 손해가 많다. 반얀의 시그니처 홀은 15번홀(파3, 147야드)이다. 티 박스 왼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지고 오른편으론 산과 계곡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여전한 반얀에서 달라지는 것은 골프장의 이름이다. 반얀이라는 근사하고 익숙한 이름을 변경하는 속사정은 알 수 없으나 2024년 3월1일부터 파인애플 밸리 골프클럽으로 이름을 바꾼다. 불쑥 파인애플이 등장한 이유는 지역의 특색과 클럽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가 의성하면 마늘을 떠올리듯 후아힌은 파인애플이 유명하다. 반얀도 파인애플 농장 자리에 만든 골프장이다. 골프장 측은 ‘이름은 변경하지만 골프장 관리나 운영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편하게 즐기는 예쁜 골프장
팜 힐스 골프클럽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반얀과 달리 팜 힐스는 반전의 재미를 보여 준 골프장이다. 기본 코스 설계는 재미나고 좋은데 관리가 아쉬운 골프장이라는 10년 전 기억이 무색하게 훌륭한 상태로 골퍼를 맞이했다. 팜 힐스는 18홀(파 72, 6,887야드) 코스로 화이트티와 블루티 사이에 있는 옐로우티(6,358야드)가 반얀의 화이트티(6,286야드)와 전장이 비슷하다. 옐로우티에서 치면 한국 주말골퍼들이 빠지기 쉬운 거리에 벙커가 있고 정신을 집중해야 넘길 수 있는 워터 해저드를 만나게 된다. 

잡초가 가득했던 페어웨이 잔디와 흙바닥 투성이 에이러프, 느려터진 그린 등 코스 관리 상태가 아쉽고 클럽하우스나 락커 시설도 낙후돼 가격을 우선시하는 골퍼에게 추천할 만하다 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페이웨이는 말끔해졌고 그린은 단단해졌다. 락커도 깔끔하게 정비를 했다. 플레이 중에는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장애물이지만 울창한 야자수와 곳곳의 워터 해저드, 이국의 화려한 꽃송이가 예쁘게 어울렸다. 반얀보다 팜 힐스가 좋았다는 평을 내린 동반자도 있었으니 성공적인 변신이다.     

 

●잭 니클라우스의 손길 
스프링필드 로열 컨트리클럽

스프링필드 로열 컨트리클럽은 잭 니클라우스가 디자인한 27홀(10,716야드) 규모의 골프장이다. 마운틴(3,513야드), 레이크(3,530야드), 밸리(3,673야드) 코스가 있다. 후아힌 3대 명문을 꼽으라고 하면 블랙마운틴, 반얀과 함께 이름을 올리는 사람도 많다. 골프 다이제스트가 선정한 태국 최고의 골프 ​​코스 상위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스프링필드 리조트
스프링필드 리조트

마운틴 코스라고 우리처럼 산을 깎아 만든 코스는 아니 산이 많이 보이는 평지 느낌이다. 페어웨이는 넓고 벙커가 많고 크다. 레이크 코스는 이름처럼 물이 많다. 페어웨이를 따라 길게 호수를 만들어 티샷의 정확도를 요구하거나 그린 앞을 가로질러 바로 공략할지 끊어서 가야 할지 선택을 하게 만든다. 리조트가 같이 있어 체류형으로도 적당하다. 발코니에 자쿠지와 작은 그네가 딸린 아기자기한 객실도 있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휴식과 골프로 온전히 충전의 시간을 갖기에 나쁘지 않다. 

▶후아힌 야시장
라운드 후 저녁 시간에는 하루쯤 데차누칫 거리에 있는 후아힌 야시장 방문을 일정에 넣어도 좋다. 태국 대부분의 야시장처럼 소소한 기념품이나 면 티셔츠, 코끼리 바지 같은 의류와 꼬치나 국수 같은 길거리표 먹거리가 즐비하다. 길게 늘어선 노점 중간중간에는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펍과 식당이 있다. 메인 거리 중간쯤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좀 더 조용하게 야맥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방콕 공항 바로 옆 골프연습장 
후아힌은 방콕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방콕에서 남서쪽으로 230km 가량 떨어져 있다. 차량으로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탑골프TOPGolf는 방콕 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요즘 뜨는 골프 연습장이다. 공항과 가까워 후아힌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나 방콕에서 비행기 시간이 남는 저녁에 방문하기 적합하다. 진지하게 샷을 다듬는 연습장이라기보다는 골프를 테마로 한 복합 놀이 시설에 가깝다. 층마다 스포츠 바가 있고 타석에서도 음식과 술을 먹을 수 있다.

 

후아힌 글·사진=김기남 기자 gab@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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