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는 낯선 땅이다. 피상적으로 몇몇 사실을 알았을 뿐, 그 속은 알 길이 없었으니까. 길지 않은 여행의 매 순간이 신비로웠다. 입는 것, 먹는 것 등 일상을 구성하는 사소한 것들조차도. 리야드(Riyadh)와 알울라(AlUla)에서 마주한 극적인 모습들이다.

하라트 전망대
하라트 전망대

●Riyadh
리야드, 수도의 위용

2022년 ‘사우디아라비아’ MBS(무함마드 빈 살만, Mohammed bin Salman) 왕세자의 방한, 2030 EXPO 유치 경쟁 등의 이슈로 국가 자체는 익숙하다. 다만 여행 전까지 그 속은 알지 못했다. 오일 머니, 검은 천(아바야)을 두르고 눈만 보이는 여성들, 이슬람, 돼지고기 안 먹는 곳 등 단편적인 이미지만 떠오를 뿐.

스카이 브리지에서 본 리야드 전경
스카이 브리지에서 본 리야드 전경

직접 보고, 살을 부대끼니 새로운 인상으로 다가왔다. 여행을 통해 비로소 그 지역, 그 국가를 온전히 마주하게 됐다. 첫 번째 관문은 수도 리야드(Riyadh). 사우디의 최대 도시이자 아랍권으로 지도를 넓혀도 가장 큰 대도시 중 하나다. 특히, 수도의 위용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빌딩이 들어서고, 여행자를 위한 콘텐츠로 채워지고 있다. 홍해 프로젝트, 키디야(Qiddiya), 네옴(NEOM) 등 MBS의 사우디 비전 2030(Saudi Vision 2030)이 구현되고 있는 또 다른 지역인 셈이다. 

킹덤센터
킹덤센터

또 여행자들의 발이 돼 줄 리야드 메트로도 올해 정식 개통을 위해 담금질에 한창이다. 가격 인상이 있었다고 하나 사우디의 기름값은 여전히 합리적이고, 도시 면적(서울의 3배 이상)도 어마어마해 현지인 대부분 차량을 이용한다. 지금의 리야드는 도보여행에 적합한 도시는 아니다. 따라서 주요 명소를 오가는 메트로가 운영되면 분명 사우디 여행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알 마스막 요새.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설립의 상징물이다
알 마스막 요새.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설립의 상징물이다

리야드 여행은 화려한 도심, 현지의 일상(수크 알잘·나즈드 빌리지 등), 유구한 역사(알 마스막 요새·무라바 궁전·알사파 광장 등)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리야드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지갑 간수를 잘해야 한다. 길게 뻗은 도로 양옆으로 수많은 브랜드가 입점한 대형 쇼핑몰들이 발길을 붙잡기 때문이다. 중심가의 킹덤센터(Kingdom Centre), 알 파이사리아타워(Al Faisaliah Tower)와 킹 압둘라 파이낸셜 디스트릭트(KAFD)에 밀집한 고층빌딩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궁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제외하더라도 한 번쯤 구경할 만하다. 동서양과 전혀 다른 디자인의 건축물을 보는 것 자체로 여행이 된다
궁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제외하더라도 한 번쯤 구경할 만하다. 동서양과 전혀 다른 디자인의 건축물을 보는 것 자체로 여행이 된다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 ‘킹덤센터(약 302m)’는 외관부터 독특하다. 건물 상층부가 포물선 형태로 비어 있어 마치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관문처럼 보인다. 2000년대 초에 완공된 건물임에도 여전히 미래적인 디자인이다. 킹덤센터에는 리야드의 전경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는 ‘스카이 브리지(Sky Bridige)’를 비롯해 수많은 상점과 레스토랑, 영화관 등이 있다. 또 알 나스르의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숙소로 사용했던 포시즌스호텔도 있다.

리야드는 사우디의 지리적 중심지인 나즈드(Najd) 지역에 속해 있다. 리야드에서 나즈드 전통음식인 캅사(Kabsah, 사진 중앙), 자리쉬(Jareesh, 나즈드식 수프), 무갈갈(Mugalgal, 나즈드식 양고기조림), 삼보사(Sambosa, 튀김만두), 요거트 샐러드 등을 한상차림으로 즐길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우리처럼 좌식생활이 익숙한 편이다. 화려한 색감과 문양의 양탄자 위에서 나즈드 음식을 즐기면 사우디에 제대로 동화된 기분이 든다
리야드는 사우디의 지리적 중심지인 나즈드(Najd) 지역에 속해 있다. 리야드에서 나즈드 전통음식인 캅사(Kabsah, 사진 중앙), 자리쉬(Jareesh, 나즈드식 수프), 무갈갈(Mugalgal, 나즈드식 양고기조림), 삼보사(Sambosa, 튀김만두), 요거트 샐러드 등을 한상차림으로 즐길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우리처럼 좌식생활이 익숙한 편이다. 화려한 색감과 문양의 양탄자 위에서 나즈드 음식을 즐기면 사우디에 제대로 동화된 기분이 든다

테마파크와 쇼핑, 식사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엔터테인먼트 집합체인 ‘블루바드 월드 & 시티(Boulevard World & City)’로 향했다. 블루바드 월드에는 라스베이거스의 명물 스피어에 필적하는 구체(The Sphere)와 다양한 액티비티가 있고, 블루바드 시티는 뉴욕 타임스퀘어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번쩍인다. 게다가 월드와 시티를 오가는 케이블카가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사실 리야드의 명소 대부분이 이처럼 넓다 보니 여행자의 시간을 무지막지하게 삼켜버린다. 리야드에서만 2박, 3박 머물러도 시간이 한참 모자란 이유다. 

디리야에는 현지인과 여행자가 모여드는 핫플 ‘부자이리 테라스(Bujairi Terrace)’가 있다. 수많은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이 밀집해 있다. 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앗 투라이프(At-Turaif)와 연결돼 있다
디리야에는 현지인과 여행자가 모여드는 핫플 ‘부자이리 테라스(Bujairi Terrace)’가 있다. 수많은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이 밀집해 있다. 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앗 투라이프(At-Turaif)와 연결돼 있다

●AlUla
태고의 지구, 알울라

우리는 지구라는 별을 여행하면서 숱하게 기암괴석을 만난다. 화산 폭발로 인한 용암이거나, 긴 시간 동안의 풍화 작용 등 여러 방식으로 웅장하고, 기이한 모습의 바위들이 탄생한다. 그런데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기암괴석 중 온갖 멋진 것들은 알울라에 집합해 있다. 또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헤그라를 통해 고대 문명을 관찰하고, 알울라 계곡의 가장 좁은 곳에 자리한 구시가지에서 사우디 사람들의 오랜 터전도 거닐어 본다. 사막에서 보는 북두칠성은 덤이다. 

10세기경에 건축된 알울라 요새에서는 과거의 흔적을 여과 없이 마주할 수 있다. 사람들이 과거에 지냈던 주택들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반들반들한 지붕으로 덮인 공간들은 박물관, 편집숍, 카페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10세기경에 건축된 알울라 요새에서는 과거의 흔적을 여과 없이 마주할 수 있다. 사람들이 과거에 지냈던 주택들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반들반들한 지붕으로 덮인 공간들은 박물관, 편집숍, 카페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알울라를 여행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역들이 여럿 있었다. 여행지끼리 비교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알울라를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미국 그랜드캐니언과 데스밸리, 요르단 페트라, 터키 괴레메 등을 모두 합한 곳이라 생각하면 된다. 

코끼리 바위
코끼리 바위

알울라의 기암괴석, 특히 4억8,000만년~5억년 전에 형성된 붉은색 사암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알울라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매개체기도 하다. 이 사암을 통해 고대의 알울라가 해안과 가까웠음을 알게 됐다. 지금 보는 바위들은 조수의 움직임, 점차 쌓여 가는 퇴적물의 열과 압력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형성됐다고 한다. 알울라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인 코끼리 바위(Elephant Rock)도 마찬가지다. 

알울라 요새(AlUla Fort)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시가지. 알울라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중 하나인 고대 도시 다단(Dadan)이 오른편으로 보인다. 왼쪽에 보이는 곳은 현지인들의 생활공간으로 다양한 문화예술로 채워지고 있는 곳이다
알울라 요새(AlUla Fort)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시가지. 알울라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중 하나인 고대 도시 다단(Dadan)이 오른편으로 보인다. 왼쪽에 보이는 곳은 현지인들의 생활공간으로 다양한 문화예술로 채워지고 있는 곳이다

사우디 사람들은 영리했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신의 선물들을 적절히 활용했다. 코끼리 바위 근처에는 자정까지 불을 밝히고 있는 카페와 시샤(Shisha, 물담배) 가게가 있다. 모래를 파내 좌석을 만들었고, 조명도 있어 근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커피 한 잔 들고 시간과 자연이라는 위대한 예술가가 빚어낸 걸작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단, 사우디에도 겨울(12~3월 중순)이 있으니 옷깃을 단단히 여며야 한다. 해가 지면 알울라의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는데, 사우디의 전통 의상이자 롱코트인 빠루아(혹은 파루아, 4~5만원)가 체온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알울라 계곡 가장 좁은 곳에 자리한 구시가지는 근사한 관광거리로 탈바꿈했다.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건물 색감에 신경을 쓴 태가 나고, 레스토랑과 카페, 각종 상점이 거리를 채우고 있다. 또 진흙 벽돌로 지어진 수백 채의 집이 있는 골목을 탐방하면서 알울라의 과거를 상상하게 된다. 구불구불한 미로 끝에는 항상 새로운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알울라 계곡 가장 좁은 곳에 자리한 구시가지는 근사한 관광거리로 탈바꿈했다.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건물 색감에 신경을 쓴 태가 나고, 레스토랑과 카페, 각종 상점이 거리를 채우고 있다. 또 진흙 벽돌로 지어진 수백 채의 집이 있는 골목을 탐방하면서 알울라의 과거를 상상하게 된다. 구불구불한 미로 끝에는 항상 새로운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알울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인간의 상상력을 더해 보석 같은 작품도 창조했다. 그 결과물이 ‘마라야(Maraya)’다. 아랍어로 거울을 뜻하는 마라야는 알울라 사막 한복판에 자리한 건축물이다. 알울라의 장엄한 자연경관을 유리에 투영시켜 시시각각 옷을 갈아입는 특별한 외관을 자랑한다. 수많은 여행자가 저마다의 감성을 담은 사진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또 콘서트, 콘퍼런스, 기업 행사, 스포츠 행사 등 대형 이벤트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알울라를 흡수하는 ‘마라야’
알울라를 흡수하는 ‘마라야’

기암괴석에 파묻힌 숙소들도 인상적이다. 반얀트리 알울라, 해비타스 알울라는 다른 행성으로 초대받은 기분이 들 정도로 이색적이다. 합리적인 가격의 선택지를 원한다면 클라우드7 레지던스(Cloud7 Residence AlUla)를 기억하면 된다.

 

●Hegra
헤그라, 유적이 의미하는 것


알울라의 랜드마크,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헤그라’다. 빈티지 랜드로버에 몸을 싣고 헤그라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현재와 단절된다. 기원전 1000년 이전으로 진입한다. 헤그라는 아득히 먼 시절부터 인류가 거주했던 지역이면서 동시에 나바테아인들의 무덤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걸스 마운틴의 무덤
걸스 마운틴의 무덤

사막 바위를 깎아 만들어진 나바테아 사람들의 무덤이 곳곳에 있는데, 지금까지 110여 개가 발굴됐다. 가이드 투어를 통해 굵직한 무덤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먼저 걸스 마운틴(The Girls Mountain)으로 불리는 무덤 집합체가 흥미를 돋우었다. 약 30개의 무덤 공간이 여성의 소유물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한 무덤당 시신 한 구만 안치하는 게 아니라 15~20구를 모신다. 게다가 뼈만 남게 되면 무덤 내부의 바닥을 파서 쌓는다. 즉 무덤 한 곳이 엄청난 수의 영혼을 간직한 셈이다. 

복원된 히나의 얼굴
복원된 히나의 얼굴

걸스 마운틴은 시작일 뿐이다. 헤그라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무덤과 인물은 따로 있다. ‘쿠자의 아들 리히안의 무덤(Tomb of Lihyan son of Kuza)’과  나바테아 여성 히나(Hinat)를 기억해야 한다. 리히안의 무덤은 주인이 정확히 명시된 무덤으로, 무덤 내부의 조각과 비문을 통해 나바테아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헤그라에서 가장 큰 무덤으로 높이가 약 22m에 달한다. 멀리서부터 뚜렷하게 보이는데, 혼자 우두커니 서 있어 ‘외로운 성(The Lonely Castle)’라는 별명도 있다. 

히나는 약 2000년 전 헤그라에서 약 40세의 나이로 고인이 된 여성이다. 그런데 다시 살아났다. 고고학자, 법의학자, 모형제작자 등이 힘을 합해 그녀의 얼굴을 복원했다. 헤그라에서 생활한 조상 중 한 명이 부활한 셈이다. 헤그라 웰컴 센터에서 그녀의 이야기와 모습을 만날 수 있는데 설명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 든다.

5억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바위들. 도예가가 빚은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5억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바위들. 도예가가 빚은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헤그라가 시사하는 바가 하나 더 있다. 헤그라의 무덤을 잘 보면 상단에 5개의 계단이 있다. 계단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뜻하는데, 이는 사우디의 문화와는 다른 맥락이다. 그런데도 헤그라를 문화유산으로 남겨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개방한 점은 변화에 대한 사우디, 그리고 MBS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취재협조 사우디아라비아관광청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