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대리석 협곡의 잿빛 향연

‘색깔로 기억되는 도전’이 있듯이 오직 색깔로만 남는 여행지가 있다. 캐나다 배드랜드의 황토빛 대지는 그 넓이를 알 수 없었고, 필리핀 세부의 저녁노을은 바다를 새빨갛게 불태웠다. 전남 담양의 너른 죽림이 뿜어내던 그 싱그럽던 푸름은 얼마나 청량했던가. 형상과 지리와 공간은 모두 속절없이 색깔에 빨려든다. 오직 그 빛깔로서만 그곳은 추억된다. 타이완 타이루꺼(태노각) 협곡은 온통 잿빛에 휘감겨 있었다.

-화리엔의 관광거점 타이루꺼협곡

타이루꺼는 타이완 동부 화리엔(화련) 지방의 관광 거점이다. 화리엔은 타이완의 대표적인 대리석 산지. 공항에서도, 기차역에서도, 거리에서도 대리석은 흔하다. 대리석 바닥은 기본이고 조각품들도 걸작이다. 타이베이에서 비행기로 30분, 기차로 3시간이면 거대한 대리석이 펼치는 둔탁한 잿빛 향연을 만날 수 있다.

현지 가이드 왈, “화리엔의 대리석만으로도 타이완은 30년 동안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아마 “타이완의 국민이 모두 일을 하지 않더라도 화리엔의 대리석만으로 3년을 먹고 살고, 고산 지대의 차 생산만으로 2년을 먹고 살며, 고궁박물관의 입장료 수입만으로 1년은 먹고 산다”는 장제스 총통의 말을 다소 과장한 것일 테지만 결코 허투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화리엔의 대리석 빛깔은 짙고 고밀도다. 타이루꺼는 그 빛깔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타이루꺼를 오직 회색 한 빛깔에 뭉뚱그려 넣기에는 사실 그 매력의 스펙트럼이 넓고 다채롭다. 타이완에서 4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며 해발고도 3000m 이상의 고봉준령들은 경외할 정도의 위엄을 갖추었다. 그 속에 깃들여진 생태계 또한 순수하고 온전하다.

-자연과 세월이 빚은 조각품

굳이 전체를 보지 않더라도 19km에 이르는 웅장한 대리석 협곡만으로도 아찔한 대자연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타이루꺼 협곡 여행은 절벽허리를 아슬아슬 에둘러가며 타이루꺼의 심장 속으로 파고드는 동서횡관도로를 따라 이뤄진다. 비록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지만 험준한 절벽 허리를 유연하게 달리고 있는 모습과 맞닥뜨리면 자연을 향한 인간과 이를 거부하는 대자연이 벌였을법한 일대 접전이 스멀거린다.

이 도로는 1956년부터 4년에 걸쳐 약 450명이 동원돼 처음 기반을 다졌다고 한다. 당시 장제스 총통은 타이루꺼를 통과해 내륙으로 가는 길을 내고자 했지만 지형이 워낙 험준한데다가 충격에도 약해 폭약은 꿈도 꾸지 못하고 순전히 망치와 삽 정도에 의지해 진행했다고 한다. 뚫으려는 인간과 막으려는 자연의 팽팽한 대치, 그 과정에서 발생한 200여명의 희생자는 어쩌면 자연과의 협상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제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넋을 기리는 ‘장춘사’라는 사당은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경계선에 놓여 있다. 꽈~앙 꽈~앙 그날의 힘찬 망치소리는 여전히 절벽 허공을 때리는 듯한데, 협곡은 말이 없고 길은 달릴 뿐이다. 그 애틋함이 급기야 마음속에 긴 여운을 남긴다.

-회색 빛깔로만 추억되니

타이루꺼 협곡은 대자연과 세월이 빚어낸 거대한 대리석 조각품이다. 기암괴석은 천태만상으로 다가왔다 물러나기를 거듭하고 절벽 끝에 걸린 바람은 우우우 울어댄다. 발아래 물소리는 아득하니 취기를 돋운다. 하늘을 향한 그 서슴없는 상승감과 아래로 내리닫는 거침없는 기세는 흥을 돋운다. 차로, 두 발로 구곡양장 절벽도로를 따른다. 오랜 세월 풍화침식으로 생긴 대리석 절벽 구멍 속에 제비들이 집을 짓는다는 ‘연자구(옌즈커우)’가 반기고, 굽이굽이 굴곡진 ‘구곡동(지우취통)’이 인사한다. 암반터널의 암흑을 지나면 대리석 빛깔은 더욱 농도를 더하고 옥빛 계곡물은 더욱 청명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담뱃잎 모양의 타이완 지도가 허공에 그려진다. 변화무쌍이다.

인간의 범접을 거부하는 듯한 올곧음은 회색의 차가움을 닮았다. 속계에 머물되 신계와 맞닿은 듯한 신비감은 검정과 하양의 중간을 택한 그 기질과 같다. 그 차가움과 회색 기질 속에 타이루꺼 협곡이 품은 잿빛 비밀이 숨어 있다.

-원주민 아메이족과 함께 춤을~

대리석과 옥, 타이루꺼 협곡 등과 함께 화리엔의 매력을 더하는 요소로 원주민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타이완은 원주민 문화와 이에 기반을 둔 신비한 관습과 의식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원주민들의 전통문화와 의식은 수확축제와 사냥기원제 등의 형태로 남아 타이완의 다양성을 더하고 있다. 대부분 현대문명에 동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깊은 산중에서 생활하며 그들 나름의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원주민들도 많다. 대만관광청에 따르면 싸이시아족, 타이야족, 아메이족, 뿌농족, 피난족, 루카이족 등 10여 종족들이 그들 고유의 언어와 전통, 부락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화리엔 지방의 원주민은 아메이족(아미족)으로 화리엔을 방문하면 이들 종족의 수확의식과 축제 등을 공연 형태로 감상할 수 있다. 공연은 화리엔 대리석 공장에 딸린 공연장에서 이뤄지는데 알록달록 화려한 색상의 아메이족 원주민들이 민속공연을 펼친다.

공연은 약 30분간 진행되는데 끝 무렵에는 관객들과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무대에 나선 관객들 목에 꽃을 걸어주고 기념촬영을 해주는데 이에 대해 별도의 요금을 받고 있으므로 참고해야 한다.

취재협조=에바항공 www.evaair.co.kr/ 02-756-0015
업투어 www.uptour.co.kr/ 02-771-4321
타이완 화리엔 글·사진=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