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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식을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로 가던 도중, 사진기자와 그의 영화 속 ‘그 장면’들에 대해 깔깔대며 이야기를 나눴다. ‘공공의 적’에서 파렴치한 주류업자를 코믹하게 그려낸 안수, 설경구에게 맞으면서 의자에 앉아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코믹한 모습, 일명 ‘마파도 화장실 폭파 장면’이라고 불리는 상대역 이정진이 잘못 던진 담뱃불에 볼 일을 보던 중 바비큐가 될 뻔했던 장면 등등. 정작 본인은 그 수많은 영화 속에 가장 기억나는 장면을 뭐라고 꼽을까.

장면과 기억나는 장면은 관객들이 뽑아주시는 거고 사실 저는 그 장면들을 촬영할 때 더 힘이 들었거든요. ‘공공의 적’ 할 때도 경구형한테 엄청 맞고, ‘마파도’ 찍으면서는 실제로 불씨를 몸에 붙이기도 했거든요.”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는 이제는 배우 이문식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얼마 전‘플라이 대디’를 찍기 위해 체중을 15kg이나 감량하며 ‘몸짱 배우’의 반열에 올라선 그가 아니던가. 만년 조연 배우에서 이제는 주연 시나리오가 쏟아져 들어오며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명실상부한 스타로 자리잡고 있는 그이지만 예전과 달라진 건 돈 걱정 안 하고 밥을 먹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최근 이문식이 주연한 영화 ‘구타유발자’와 ‘플라이 대디’는 ‘괴물’과 맞붙었고, 멜로배우의 꿈을 이루었던 드라마 ‘101번째 프러포즈’는 ‘주몽’이라는 대작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조한 흥행과 시청률이라는 안타까운 결과가 나왔다. ‘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입장에서 그가 느끼는 부담과 책임감이 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흥행이라는 것은 주변의 여건들이 얼마나 운 좋게 맞아 떨어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올해는 ‘특히’ 대작들과 붙는 운세인가 봐요. 하지만 적은 수의 관객과 시청자들이 작품을 봤을지라도 그분들이 얼마나 그 작품을 좋게 기억하는지, 얼마나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평가하는지가 더 중요해요.”

-그저 열심히 할 뿐, 평가는 관객의 몫

평가란 것이 배우가 할 일이 아니고 또 흥행이라는 것은 결국 배우 한 사람의 몫이 아닌 팀워크의 문제라는 것. 감독, 제작자, 조명, 녹음 등 많은 스태프들의 역할이 한데 어우러져 영화나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일해 왔던 영화와 드라마 팀은 완벽한 팀워크를 자랑했지만 최근 몇몇 작품에서는 아쉽게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 다시 그 팀과 호흡을 맞춰 보고 싶단다. 또 지금까지 그의 선택에 대해 후회나, ‘더 잘했어야 하나?’하는 아쉬움도 없다. 시청률이나 흥행 등 양적인 부분에만 연연한다면 더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겠냐며 맡은 역할을 어떻게 해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엽기적인 할머니들과 벌이는 요절복통 에피소드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마파도’는 만년 조연 이문식에게 주인공으로서 재평가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작품이다.

“제가 주연을 맡아서 영화가 흥행한 게 아니라 운 좋게 흥행하는 영화에 제가 출연했던 거죠. 네 분 선배님들과 정진이 같은 좋은 배우와 일하는 행운도 얻었고.”

‘사람’과 ‘기회’를 얻게 해 준 작품으로서 그에게 ‘마파도’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1편의 기운을 이어받아 신인배우 이규한과 함께 현재 ‘마파도 2’ 촬영을 한창 진행 중이다.
“하루하루 즐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어요”

연극을 하며 먹었던 눈물 젖은 빵. 서른이 넘는 나이에도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안 돼서 인근의 산을 오르며 여행을 대신했다.

“멀리는 못 갔고 관악산, 도봉산, 북한산, 청계산 등 서울 근교의 산들은 오르지 않은 산이 거의 없어요. 특히 북한산에서의 에피소드가 많죠. 돈도 없고 품만 팔면 갈 수 있는 곳이니 김밥 싸들고 집사람과 데이트를 하러 산에 올랐죠. 그러다 조난당했다가 구조 당한 추억도 있고.”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냈고 주변에서 ‘러브콜’이 쇄도하는 스타가 됐지만 정작 빵점짜리 아빠고 남편으로서도 아내에게 미안함이 크다. 그래서 큰맘 먹고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워, 얼마 전에는 그의 인생에서 첫 해외여행으로 필리핀 보라카이의 클럽 파라다이스 리조트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알파치노 영화 중에 ‘칼리토’라는 영화가 있어요.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떠날 곳을 꿈꾸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런데 보라카이에 가보니 바로 그 영화 속에 나오는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에 지금 내가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감동적인 거예요.”

-배우에게 여행은 영감의 원천

배우에게 있어서 여행은 그 자체가 큰 공부다.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익숙한 것들과는 다른 것들을 체험하고 영감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후배 연기자들이나 그의 자녀들에게도 “기회가 닿으면 바로바로 떠나라”라고 말한다.

“경험이란 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잖아요. 한 살이라도 젊고 여유가 될 때 최대한 많이 보고 느끼고 행동하며 살아 있는 지식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런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그렇게 독려해 주던 사람도 없었거든요.”

그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여행지는 터키. 풍부한 역사적 사실과 유적지가 가득한 여행지에서 역사적인 힘을 느껴 보고 싶단다.

“예전에 이문세씨가 산악인 엄홍길씨와 함께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에서 공연을 한 기사를 봤어요. 기회가 된다면 산악인들과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산을 오른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잖아요. 그런 분들과 대화하면 깨닫는 게 많겠죠.”

‘플라이 대디’ 시사회 때 예전 드라마 ‘다모’ 폐인들이 찾아와 작은 선물 하나를 건넸다. ‘초심’이라고 적힌 열쇠고리를 열어 보고는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어린 아이의 첫걸음, 그 느낌을 항상 기억할 수 있다면 한걸음 한걸음을 허투루 걷고, 살아가지 못하겠죠. 내 첫 연극 무대와 처음 스크린에 비춰졌을 때의 그 흥분을 유지할 수 있다면 더 겸손하고 항상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스타의 본모습이 매스컴 속과는 다르다는 것쯤은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이문식은 더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본 그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게 사뭇 진지하다 못해 심각하기까지 했다.

“되게 진지하세요”라는 기자의 말에 “진지해야죠. 삶에는 연습이 없잖아요. 한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열심히 살아야죠”라고 답하는 이문식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몽타주’가 따라 주지는 않지만 연기파로 널리 사랑받는 할리우드의 대배우 더스틴 호프만과 데니 드 비토가 오버랩된다. 한 번뿐인 인생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 그의 진심이 통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가 아닐까.

사진〓Travie writer 신성식 neo2sta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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