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취재로 간사이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일정 중 나라현에서 아스카데라, 호류지 등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들어왔던 사적지를 직접 방문하게 돼 나름 뿌듯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나라에서는 고대 한국인에게서 이어받은 백제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보다 안타까움이 먼저 느껴졌다.

먼저 간 곳은 일본 최초의 절 아스카데라(법흥사)였다. 이 절은 백제 불교문화가 꽃 피운 ‘아스카’ 시대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스카 시대를 대표하는 아스카데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절에 들어가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명성과 달리 당시의 1/3만 남아있다는 아스카데라는 나라현의 유명 절들에 비해서도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는 한국의 수덕사에서 보내준 석탑도 벌판 한 쪽에 이름도 없이 서 있어 황당했다.

안타까움은 호류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사교과서에 나온 “고구려 스님 담징이 일본에 건너가 호류지 금당 벽화를 그렸다”는 호류지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만한 곳. 그러나 호류지 내부를 설명해주던 일본인 가이드는 한국 기자들 수 명을 앞에 두고도 담징의 ‘담’자도 꺼내지 않아 당혹케 했다. 금당벽화를 바로 눈앞에 두고서도 말이다. 전시실에 있는 벽화의 복제품마저도 호류지의 반대로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라 지역은 오사카, 교토와 더불어 최근 늘고 있는 해외수학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수학여행의 증가에만 초점을 맞췄지 모르고 또는 알고도 이러한 현실을 모르는 채하고 있었던가.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을 보기 위해 역사 유적지를 찾는 것이지 한국 문화가 초라하게 방치됐다는 비애감을 느끼기 위해 그리도 설레며 여기까지 발걸음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을 입 맛 대로 바꿀 수는 없을 일이 아닌가. 현장에서 뛰는 한국인 가이드들의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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