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일본이 최고의 국가를 세웠던 땅, 오사카와 달리 차분한 관광지로 여행객들은 자유분방하게 풀어져 있는 사슴과 함께하며 마음까지 여유로워진다. 바둑판 모양으로 이뤄진 나라 시내 어느 방향으로 가도 고즈넉하고 오래된 사찰과 만나게 된다. 교토와 같은 역사 도시이면서도 꾸미지 않은 자연과 시골 풍경이 독특한 나라만의 인상을 전한다.

-이시부타이고분·아스카데라 백제의 자취를 따라

해질 무렵, 나라에 도착해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이시부타이 고분이다. 가기 전 ‘옛날 여우가 밤마다 나타나 돌 위에서 춤을 춘 곳’이라는 설명을 들어서인지 대체 어떤 곳일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정작 도착해 보니 이시부타이는 여우와는 상관없는 거석 30개를 쌓아올린 일본 최대의 바윗돌무덤이었다.

낮은 구릉에 거대한 돌을 쌓아 올린 이 고분은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당시의 유력자인 백제 출신의 소가노 우마코의 무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길이 19m, 높이 7.7m, 돌 중량은 총 2,300t 정도며 천장을 덮은 큰 바위는 무게가 무려 77t이나 된다고. 석실 내부에 들어가 볼 수도 있다.

고분을 지나 또 다른 아스카의 상징 ‘아스카데라’로 향한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대불이 있는 아스카데라 절은 입구부터 소박함이 전해져 온다. 596년 건립 당시에는 남북으로 320m, 동서로 210m나 됐다니 현재의 모습으로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명성에 비해 너무 초라해 가슴이 아려 온다.

아스카데라 본당에 있는 석가여래상 역시 아스카 문화가 융성했던 606년에 만들어져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아스카 대불은 왼쪽에서 보면 온화해 보이고 오른쪽에서 보면 엄해 보이는 게 특징. 대불 앞에 앉자 주지스님으로부터 백제에서 건너온 도래인이 지었다는 아스카데라의 창건 배경과 한국 수덕사와의 인연 등 흥미 있는 얘기 거리가 전해진다. 설명을 듣고 찬찬히 절 뒷마당을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시공을 넘어서 백제의 향기가 풍겨 오는 것만 같다.

-도다이지 세계 최대 규모의 불상과 사슴

관광객들이 꼭 한번쯤은 들린다는 나라의 대표적인 사원 도다이지(東大寺)로 들렀다. 도다이지는 멀리서 봐도 규모가 정말 대단하다. 8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절은 2번 불에 타 현재 규모가 예전의 3분의 2 정도라니 상상조차 쉽지 않다.

도다이지의 상징은 무려 높이가 16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대불. 이 불상에 사용된 동은 무려 380t으로 20여 년의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단다. 백제인의 총 지휘 아래 고구려인과 신라인의 노력도 보태져 불상을 주조했다고, 대불 옆 기둥에는 어린아이 한 명이 지나갈 법한 구멍이 나 있다. 이곳을 통과하면 1년 내내 무병한다는 속설이 내려와 많은 관광객이 비좁은 나무 구멍 사이로 들어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성인 여자가 들어가기에도 무리가 없으니 한번 시도해 보자.

돌아서 나오는 길, 금당 입구 오른쪽의 빨간색 좌상이 눈길을 끈다. 멀리서 보면 빨간 우비를 입은 귀신 같다. 관절염에 좋다는 속설 때문에 금당에서 나온 사람들이 꼭 만지고 간다는 이 불상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졌는지 무릎이 반들반들하다. 오래된 절을 돌아보다 보면 사슴과의 특별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사슴들이 먹이를 달라고 사람들을 졸졸 따라다닌다. 사람보다 오히려 사슴이 먼저 다가오는 신기한 풍경에 ‘사슴들의 천국, 나라에 와 있구나’ 실감 나는 순간이다.

-호류지 담징 벽화가 유명한 금당

한국인이면 누구나 들어 봤을 법한 유명한 호류지(법륭사)로 발길을 돌렸다. 호류지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조 건축물로 세계유산에도 등록돼 있다는데 수리가 잘된 탓에 산뜻하다. 산책을 하며 천천히 돌아보면 반나절은 걸릴 듯 그 규모가 대단하다. 면적은 총 18만 평으로 20여 동의 건물과 불상들은 대부분 국보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아스카 시대에 세워진 오층탑과 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금당이 그 유명한 담징의 벽화가 그려진 곳이다. 610년 담징이 일본으로 건너가 이 벽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49년 일어난 화재로 불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현재는 복제품이 전시돼 있다. 경내는 대부분 불이 들어오지 않아 손전등이 있어야 내부를 볼 수 있으니 챙겨 가면 도움이 많이 된다.

매년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는 쇼토쿠 태자의 모습을 찍은 목상 구세관음이 있는 몽전이 개방돼 특별 전시도 볼 수 있다. 쇼토쿠 태자는 일본의 불교를 진흥시킨 인물로 호류지 곳곳에서 그를 모시는 흔적을 찾을 수 있다.

★ 나라 찾아가기

- 나라로 가는 항공은 없고 오사카공항을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오사카공항에서 오사카나 교토로 가 기차를 타고 40분에서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나라 관광은 자전거를 이동하면 좋다. 대부분의 역사 근처에 자전거를 대여해 주는 센터가 잘 마련돼 있다. http://www.pref. nara.jp/nara_k/

사진〓Travie photographer 최병기 manta88@naver.com
취재협조〓간사이 광역연휴협의회(린카이) 02-319-5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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