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지루하다면, 그대! 세비야로 떠나라

세비야에는 전형적인 스페인을 상징하는 다양한 아이콘이 존재한다. 세비야는 ‘플라멩코’와 ‘투우’의 본고장이며스페인 역사상 최고의 영웅인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난 곳, 세계 3대 성당인 세비야 대성당이 있으며 다양한 문화와 역사의 도가니(Melting Pot)로서 가장 화려하고 다채로운 매력으로 중무장한 안달루시아의 주도(主都)이다.

스페인 글·사진=신중숙 기자 mybest@traveltimes.co.kr 취재협조=대한항공 kr.koreanair.com, 튀니지에어 www.tunisair.com, 튀니지관광청 www.tunisietourisme.com.tn, 골든유럽 02-730-7717



★돈 후안보다 정열적인 세비야의 여인들

1,034명의 여인을 품에 안은 희대의 바람둥이 돈 후안(Don Juan)은 티르소 데 몰리나(Tirso de Molina)가 쓴 <석상에게 초대받은 세비야의 호색가>에 등장한 인물이다. 하지만 수많은 여자들을 농락한 세기의 사기꾼을 욕하기 전, 그만큼 삶과 사랑에 뜨거운 열정으로 타오르는 세비야의 여인들에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년에 3,000시간 이상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여름에는 40도를 훌쩍 뛰어넘는 열기로 후끈한 세비야의 날씨만큼이나 세비야 여인들은 화끈하다. 거리에서 스치는 여인들의 옷차림이나 표정에서도 그 화려한 열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특히나 보라색 하까란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오렌지 꽃이 만발하는 봄이 오면 정열적인 세비야 여인들은 그 기운에 한없이 취해 버리고야 마니 돈 후앙의 ‘작업’은 분명 지금 시즌과 같은 ‘봄’에 더욱 활활 타올랐으리라.
가슴을 파고드는 플라멩코 무희의 움직임



★ ‘짝, 짝, 짝, 짜작’, ‘탁 타닥 탁 탁 탁’
그녀는 허망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간결하고 날카롭게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른다. 그녀의 표정은 점점 슬픔으로 일그러지고 기타의 선율과 애절한 노래 가락을 타고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관객의 가슴에 저릿하게 부딪혀 온다. 그녀의 슬픔은 극에 달하고, 슬픔이 원망이 되고 이내 분노로 치달으며 동작은, 발구름은, 흐느낌은 더 강렬해지고 몰아치는 그 광폭한 감정의 변화는 지켜보던 관객들의 눈시울까지도 붉히고야 만다.

플라멩코는 오감을 압도하는 너무나도 화려한 춤이다. 프릴이 가득 달린 기다란 치마를 훽훽 돌리고 중간중간 한쪽 다리로 치마를 걷어 올리며 섹시함을 과시하기도 한다. 기타 선율, 노래 가락, 손뼉소리, 발 구르는 소리, 손에 든 가스따뉴엘라(캐스터네츠)의 ‘딱딱딱’ 소리…. 소리는 너무도 강렬해서 보는 이의 심장 박동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마치 몹시도 슬픈 연극을 보는 양, 시시각각 변해 오는 무희의 표정도 압권이다. ‘휙 휙’ 소리가 날 정도로 강렬한 움직임마다 세비야의 오렌지 꽃 내음이 작은 무대의 공기를 통해 전해진다.



이 강렬하고도 슬픔의 정서가 잘 묻어난 춤은 15C 후반 안달루시아 지방에 집시들이 정착할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인도의 가장 낮은 카스트에 속했던 집시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유랑하며 유럽까지 이르게 됐다.

마침 그 무렵, 그라나다에 새 크리스천 왕국을 세울 때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스페인의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 여왕이 집시들을 스페인에 정착해 살게 해주며 노동력을 확보했다.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아내던 집시들은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치면 산꼭대기의 굴집으로 돌아와 앞마당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모였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삶의 시름을 달래며 춤과 노래를 추던 놀이판은 ‘잠브라’라고 불렸다. 잠브라는 집시, 도망자들, 강제로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했던 무슬림들이 서로의 슬픔을 나누고 한을 푸는 장소였다. 이렇게 안달루시아 전통 춤과 잠브라 모임이 뒤섞여 현재의 플라멩코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된 것이다.

세비야에서 플라멩코 명소로 유명한 파띠오 세비야노(El Patio Sevillano)는 세비야 투우장 건물 1층에 위치해 있다. 음료를 포함한 입장료는 33유로



★ 이슬람 문화의 숨결이 살아있는 세비야의 곳곳

세비야 관광의 시작인 스페인 광장, 세비야 왕궁, 거리 곳곳에 스쳐 지나가는 정원과 작은 집들마저도 아랍의 영향을 받았다. 세비야의 거리 어느 방향에서나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이 있다. 이것이 중세 고딕 건축물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로마의 바티칸 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과 더불어 유럽의 3대 성당으로 꼽히는 세비아 대성당(Catedral de Sevilla)이다. 성당의 크기를 보통 배로 재고는 하는데 굳이 비교를 하자면 명동 성당은 배 1척, 세비야 대성당은 11척이라니 그 거대한 규모를 알 것 같다.

이슬람 시대엔 세비야 대성당 자리에 모스크가 들어서 있었다. 기독교인들이 세비야를 되찾은 뒤 모스크를 부수고 성당을 지었다. 성모마리아 상이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을 짓밟고 있는 조각상이나 스페인의 왕이 이슬람을 의미하는 석류(그라나다)를 칼로 찌르고 있는 조각상 등, 거대한 성당 곳곳에 이슬람을 누른 것을 과시하려는 흔적들을 남겨뒀다.

세비야 대성당에서 놓쳐선 안 될 곳은 네 명의 스페인 왕이 관을 짊어지고 가는 조각상이다. ‘스페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의 관’이라며 대항해 시대를 연 이사벨 여왕의 운구라는 견해도 있었으나 최근에 서민의 관점에서 해석한 바에 따르면 운구의 주인공은 곧 콜럼버스라고 해석되고 있다.

비록 콜럼버스가 스페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는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항해를 시작해 세계사의 무대를 10배나 확장시키고 세계사의 중심을 유럽으로 뒤바꾼 역사적인 인물로 추앙받는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세비야 근처의 항구를 떠나 오늘날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를 이루고 있는 이스파뇰라 섬에 상륙, 신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으며 사망한 뒤 그의 유해는 산토 도밍고와 쿠바를 거쳐 1898년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에 안치돼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다. 세비야 성당을 나갈 때면, 고개를 쳐들고 봐야 할 정도로 그 거대한 규모와 그 예술성에 절로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비야 대성당 관람시간 평일 11:00~17:00, 일요일 14:30~18:00
입장료 7.5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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