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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기타리스트인 타레가(Francisco Tarrega)는 알람브라의 아름다움에 감명을 받아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을 만들었다.
연인에게 거부당해 상심한 타레가에게 알람브라 궁전은,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연인에 대한 흠모의 마음이며
가질 수 없어 애끊는 사랑의 표현이다.

- 그라나다가 가진 아름다움의 결정체

스페인 시인인 프란시스코 데 이카자(Francisco de Icaza)는 그의 시에서 “그라나다에서 맹인이 되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인생이 있을까”라고 읊었다. 그에게 알람브라 궁전은 눈에 담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이었다.

우리를 안내했던 가이드는 스페인에서 가이드가 되어 가장 행복한 까닭은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알람브라 궁전을 여러 차례 드나들 수 있어서라고 말한다. 그에게 알람브라는 언제 만나도 새로운, 늘 마르지 않는 샘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건네주는 단아한 연인 같은 느낌이란다. 누구나 알람브라 궁전을 다녀온 뒤에는 자기만의 특별한 족적을 남기고,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를 갈구한다. ‘그라나다만이 가진 아름다움의 결정체(結晶體)’라고 말하기에 손색이 없는 이 아름다운 궁전이 가진 특별한 매력은 무엇일까.

- 수억의 사연이 어린, 고요한 알람브라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사멸 이전의 찬란함이 퇴락의 슬픔과 동시에 묻어난다. 알람브라궁전은 이베리아반도 마지막 이슬람 문화의 거점이었던 그라나다 왕국의 심장이었다.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가 함께 다스리던 기독교 스페인이 13C 꼬르도바를 멸했다. 감성적이며 섬세했던 그라나다의 왕 무함마드12세(스페인 사람들에겐 보통 ‘보압딜’로 알려져 있다)는 무슬림인들의 종교, 재산권, 상권을 유지시켜 달라는 조건으로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카스티야의 속국이 되는 길을 택했다. 무함마드12세에게는 굴욕이었겠지만 아름다운 왕궁과 백성들을 지키고 싶은 왕의 바람과 신비로운 알람브라의 아름다움에 반해 버린 스페인 왕 사이에 최선의 타협점이었을 것이다. 결국 15C 기독교 부부 군주가 그라나다마저 차지하기로 마음먹고 무함마드12세는 두 기독교 군주의 발에 굴복의 입맞춤을 하고 왕국에서 쫓겨났다.

그가 세라 네바다 산맥의 남쪽으로 달아나며 마지막으로 왕궁을 바라보며 눈물짓던 곳은 지금 ‘한탄의 고개’라고 불린다. 이곳에서 그의 어머니가 “왕이여, 남자처럼 이 왕국을 지키지 못했으니 여자처럼 울어라”고 말하자 왕이 말하길 “어머니, 이 지상낙원에서 12년밖에 살지 못한 것이 한스러워 눈물을 흘립니다”라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무함마드12세는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모로코에서 숨을 거둔다.

수천만개의, 아니 수십억개의 추억과 전설이 서린 알람브라는 발달된 건축 양식과 그 섬세한 미적 감각 때문에도 쉽사리 눈을 뗄 수가 없다. 13~14C에 걸쳐 세워진 이 궁전은 무슬림인들이 그들만의 천국을 떠올리며 세운 것이라고 한다. 궁전의 어디에서나 ‘생명’을 상징하는 물소리를 듣고, 물 위에 떠 있는(즉, 물에 비친) 궁전을 바라보며 차분한 명상을 즐기도록 디자인됐다. 문득, 알람브라 왕궁의 침묵을 상상해 본다. 오직 들리는 소리는 아랍 여인들의 옷에서 작은 구슬들이 부딪치며 달랑거리는 소리와 분수대에서 조로로록 떨어지는 물소리뿐. 살랑대는 바람결에 거울처럼 왕궁을 담고 있는 널찍한 아라야네스 중정의 잔잔한 수면이 살포시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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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람브라를 감상하는 방법

알람브라 궁에 들어가면 그라나다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알까사바(Alcazava)성, 까사 레알(Casa Real)궁전, 헤네랄 리페(Generallife)별궁 그리고 카를로스(Carlos) 5세 궁전까지 보통 네 곳을 보게 된다. 최소한 네다섯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궁전의 규모도 크고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의미가 방대하다.

이들 중 까사 레알 궁전은 알함브라 궁의 핵심이어서 알까사바 성과 함께 입장권에 30분 간격으로 입장시간이 표시되어 있어 출입인원이 통제되는 곳이다.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들어가면 문화재에 손상을 입힐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까사 레알의 심장인 코마레스(Comares)궁전은 섬세하고 정밀한 아라베스크(Arabesque)문양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룬다.

이곳에는 왕이 향연을 베풀던 방과, ‘두 자매의 방’ 등이 있다. 이 방은 무함마드12세가 가장 총애한 두 자매를 위해 지은 공간이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이들 자매는 기독교인이었다. 훗날 무함마드12세는 기독교인에 의해 왕위를 빼앗겼지만 기독교도였기에 그라나다에 남았던 두 자매 덕에 알람브라 궁전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정복자마저 찬탄을 아끼지 않은 알람브라 궁전에도 기독교의 흔적이 보태졌다. 16C에 궁전 옆에 세워진 카를로스5세 궁전이 그것이다. 카를로스5세는 이슬람에 비교되는 유럽의 발달된 건축 문화를 보여 주겠다며 ‘범우주적 건물’을 목표로 이 궁전을 만들었다. 르네상스의 건축 양식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투영된 걸작으로 손꼽히지만 알람브라에 있어서는 결국 파괴의 현장일 뿐이다.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알람브라의 맞은편에 하얗게 반짝이는 알바이신 마을을 산책해 보는 것도 좋다. 특히 해질 무렵 ‘별처럼 떠 있는’ 알람브라를 바라보며 그라나다에서만 마실 수 있는 알람브라 맥주 한잔은 또 다른 특별한 추억으로 남는다.

알람브라궁전은 인터넷을 통해 미리 표를 예약해서 가는 것이 좋다. 하루에 입장인원을 제한하고 있어 표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일반적 요금은 13유로다. 가이드 투어 및 교통이 표함된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패키지로 예약할 수 있다. www.alhambra.org

- 알람브라의 놀라운 건축기법

★ 유럽의 고서에는 “유럽인의 옷은 그 올이 비쳤는데, 그들(이슬람)의 옷은 다리가 비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이슬람 문화의 발전된 직조술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 직조술은 알람브라의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 가령 벽에도 ‘수’를 놓아 장식을 했다거나 천장을 퍼즐 식으로 맞췄고 왕궁의 정원을 카페트 직조사가 꾸며 정원마저 기하학적 무늬와 반복된 패턴 구조로 반듯하게 꾸며 놓은 데에서 그 발전된 직조술의 면면을 살펴 볼 수 있다.

★ 이슬람 건축 양식의 기본이 된 기둥의 머리와 기둥 몸체 사이사이를 납으로 때웠다. 그로 인해 지진 등의 자연 재해로부터 궁전을 비교적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현대 지각 변동이 심한 지역에서 사용하는 건축공법이 이미 이슬람인들에 의해 700년대부터 건축물에 사용되고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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