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스, 예술가들의 비밀아지트


북아프리카 한쪽에 자리 잡은 작은 국가 튀니지. 이 생경한 도시가 당최 어디냐는 하나같은 질문에 사람들의 반응 역시 한결같다. 먼저 <스타워즈>의 촬영지라는 설명에 “정말?”이라는 반응이, 그다음 역사의 베일을 한 꺼풀 벗겨 3차례의 포에니 전쟁으로 고대 大로마 제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한니발의 카르타고(Carthage)’의 도시라고 말하면 “아~!!”하는 깨달음의 탄성이 나오기 마련이다. 튀니지의 카르타고 왕국은 3차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에 함락된 이후 프랑스 식민까지 겪으며 이슬람 문화, 베두인(유목민) 문화, 로마 문화에 프랑스 문화까지 더해져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튀니지는 아직까지 전혀 가공하거나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여행지의 느낌이다.

그래서 튀니지를 여행함은 무지갯빛 다양한 문화와 문명으로의 여행을 넘어 조붓한 혼자만의 비밀아지트를 독점하는 기분까지 들어 절로 우쭐해지는 걸까. 예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예술가들과 오늘도 시디 부 사이드의 한 카페에서 지중해의 여유로운 시간을 탐닉하는 그 누군가처럼 말이다. 튀니지의 여행은 수도 튀니스(Tunis)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a Suburb of Tunis
아프리카에서 만나는 로마의 영광

‘로마의 유적지로 명성이 자자한’ 이탈리아, 터키 등에서 만났던 유적들은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다니기에 바빴다. 반면에 한적한, 그리고 주변의 절경과 어우러지고 현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튀니지의 로마 유적지들은 마치 날씨 좋은 날 거니는 조각 공원 같다.


1. 나귀에게 풀을 먹이는 노인 2. 알제리로 통하는 포장도로 3.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모자이크를 수집해 놓은 바르도 박물관의 한 모자이크 작품

El Djem
<글래디에이터>의 실제 촬영지

유네스코가 지정한 튀니지의 7개 세계 문화유산 중 하나인 엘젬 원형경기장은,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약간 작은 규모이자, 그 보존상태가 훌륭해 ‘아프리카의 콜로세움’으로도 불린다. 극장은 당시 이 도시의 인구수를 약간 웃도는 3만5,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하니 3C경에 이곳에 자리한 로마제국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로마의 콜로세움이 ‘잿빛’이라면 엘젬은 노란 흙빛의 콜로세움이 새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콜로세움의 장엄함보다는 웅장한 규모의 영화 세트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17C 폭정에 광분한 주민들이 경기장에 모여 반란을 일으켜 군대의 공격으로 경기장의 반은 훼손됐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머지 부분은 잘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이 한적하고 원형에 가까운 엘젬의 원형극장을 배경으로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촬영됐다고 한다.

좁은 통로와 계단을 따라 꼭대기 층에 올라 원형 경기장을 한눈에 담은 뒤, 지하 경기장의 구석구석과 글래디에이터들이 머물렀던 공간들까지를 샅샅이 둘러볼 수 있다.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면 통로 양쪽으로 검투사, 맹수들의 방이 늘어서 있고 환기와 채광 시설, 우물까지도 잘 갖춰져 있다. 게다가 검투사나 맹수가 등장할 때 ‘엘리베이터’ 역할로 쓰였던 장치들도 살필 수 있다. 3만 명이 넘는 군중들이 들고나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니 오늘날과 비교해 보아도 뒤떨어지지 않는 뛰어난 건축술과 효율성에 탄성이 나온다.


4. 당시 공중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었다고 한다 5. 원형이 잘 보존된 엘젬 원형 경기장

Dougga
로마시대 사람들의 생활 생생 체험

튀니스에서 자동차로 서쪽으로 약 2시간 거리에는 고대 누미디아 이래 도시가 있었다는 두가라는 로마시대의 유적지가 그 원형의 터와 상당한 유적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 두가의 고대 이름은 띠가(Thyga). 비록 로마의 변방 도시이고 고산 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가장 번성했던 2, 3C에는 인구 5,000명 이상의 도시였다.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두가 유적지에서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옛 로마 시대를 거니는 즐거움은 다른 어떤 곳보다 더하다. 노예시장과 주피터, 주노, 미네르바의 신전과 공중 목욕탕과 체육관, 지하도, 공중 화장실과 집창촌까지도 볼 수 있다. 재밌는 것은 공중 목욕탕은 냉탕, 중탕, 온탕까지 있는데 아프리카라는 기후적 특성 때문에 ‘냉탕’의 규모가 가장 크다. 집창촌의 기둥도 남아있다. 터키의 에페소에서 ‘세계 최초의 광고’가 등장했던 것처럼 이곳에도 집창촌을 알리는 광고판이 그대로 남아있다. 터키의 그것은 ‘다 커서 오라’는 간접적인 의미의 광고라면 두가의 광고판은 ‘여성의 성기와 남성의 성기를 묘사’한 직접적인 광고다. 또 당시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었다고 한다. 반원 형태로 둘러쳐진 공중 화장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들의 장난기 어린 웃음소리가 인적이 드문 두가 유적지에 울려 퍼진다.

말과 마차가 드나들던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포장도로’는 튀니스의 카르타고와 알제리까지 잇는 길이었다. 이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던 작은 숍과 집들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하늘이 새파란 날, 노란 유채꽃 사이에 빼곡하게 남겨진 로마 유적들을 상상 속에서 부활시키고, 영화로운 과거를 머릿속에 그리며 자유로운 걸음을 즐겨 보는 재미도 튀니지에서 놓치지 말 것.

튀니지 글·사진=신중숙 기자 mybest@traveltimes.co.kr
취재협조=대한항공 kr.koreanair.com,
튀니지에어 www.tunisair.com, 골든유럽 02-730-7717
튀니지관광청 www.tunisietourisme.com.tn


1. 안토니우스의 공동 목욕탕(Thermes d’Antonin). BC 146년 카르카고에 진출한 로마인이 축조했던 대규모 목욕탕이다 2. 산토리니를 떠올리게 하는 시디 부 사이드의 하얗
고 파란 집, 파란 하늘, 그리고 무슬림 여인들 3. 도자기, 카페트, 기념품을 구입하기 좋은 상점이 곳곳에 위치해있다 4. 시디 부 사이드의‘고양이와 여행자’

Nearby Tunis

카르타고의 애상,
시디 부 사이드에서 달래다

튀니스 근교의 여행은, 인접한 카르타고와 시디 부 사이드의 일정을 함께 계획하는 것이 좋다.

흔적만 남았지만 한때는 영화로웠던 카르타고의 허망함을 시디 부 사이드의 탁 트인
지중해 바다와 온통 새하얀 건물들, 포인트가 되어 주는 튀니지언 블루의 창틀과 대문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동화 마을 같은 분위기로 달랠 수 있다. ‘산토리니’가 부럽지 않고
아기자기한 골목을 거닐고, 새파란 지중해 바다의 낭만과 햇살과 바람을 가득 들이마시며
조용한 카페에서 한껏 게으름을 즐기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띄울 엽서 한 장을 써 보자.

Carthage
한니발의 카르타고는 어디에…

기원전 9C 페니키아인들이 세우고 로마에 의해 파괴되고 재건됐던 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아름답고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1973년 유네스코는 남아 있는 유적을 구하기 위한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국제적인 협력을 얻어 조직적인 발굴과 보존을 시작했다. 지금은 튀니지 정부도 그 일대의 건물 신축을 금지하고, 고고학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유적지를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다. 비르사(Byrsa) 언덕에 오르면 몇 개의 돌기둥 사이로 듬성듬성 잡초가 자라는 황량한 카르타고 시대의 흔적만이 간신히 남아있다. 하지만 로마시대의 유적지는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


5. 단 하나도 같은게 없는 튀니지의 문 6. 시디 부사이드는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기 좋다 7. 시디 부 사이드 사람들은 하얀 벽이 더러워지거나 빗물에 씻겨 내려가면 틈틈이 하얀
칠을 하고 또 한다

Sidi Bou Said
‘나만의 도피처’가 될 것 같은 예감

시디 부 사이드는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해안 절벽 위에 자리잡았다. ‘3청(靑)의 마을’이라는 별칭은 새파란 지중해, 새파란 하늘, 온통 하얀 집들의 새파란 창틀 때문에 붙었다.

그래서 혹자는 시디 부 사이드를 ‘산토리니’에 비교하고는 한다. 또 언제나 햇살로 눈부신 마을과 가로수와 오렌지 나무와 꽃들이 만발한 작은 공원과 어여쁜 테라스를 가진 작은 카페가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이곳은 남부 프랑스의 여유와 낭만까지도 가득 품고 있다. 게다가 튀니스 시내에서 택시를 이용하면 20분 안팎의 가까운 위치에 있어 드나들기도 편리하다. 산토리니가 ‘사람들이 가득한 인기 있는 여행지’라면 튀니스의 시디 부 사이드는 ‘인파에 벗어나 여유를 즐기고픈,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일 테다. 여행의 끝, 지중해의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예쁜 테라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만끽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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