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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영하 14도의 한파가 몰아치던 어느 겨울, 삼한사온도 자취를 감춘 맹추위의 대한민국. 귀에 꽂은 라디오 채널을 바꾸기 위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는 것도 꺼려지는 그런 날씨에 등대 체험을 위해 동해로 떠났다. 서럽도록 시린 날씨와 성난 바다에 맞서 오늘도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뿜어내고 있는 등대. 따스한 이불의 유혹을 떨치고 만난 등대는 예전에 봐 왔던 동해와는 또 다른 면모를 보여 주며 근사하게 다가왔다.

글·사진=김명상 기자 취재협조=해양문화재단 www.ocf.or.kr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물 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김남조 <겨울 바다> 中



■푸른 쪽빛 바다와 대진등대

버스 안에서 까무룩 잠이 들다 깨기를 몇 번. 도착한 곳은 강원도 고성군에 자리한 대진등대다. 등대를 이처럼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라 그런지 색다르다. 파란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솟은 하얀 탑은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하나의 자연체와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대진등대는 등탑이 팔각형 구조로 이뤄져 등대라기보다는 관광용으로 지어진 건물로 보일 정도로 미려한 외관을 하고 있다. 전망대로 올라가면 탁 트인 주변 경관이 시각적 청량감을 선사한다. 바다색은 참으로 짙은 파란 색을 띄고 있는데 만약 동남아시아에서 보는 에메랄드 빛 바다라면 오히려 실망했으리라. 이처럼 푸르디 푸른 쪽빛 바다여야만 겨울을 왜곡 없이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대진등대는 유인등대로서는 가장 북쪽에 있어 날씨가 좋으면 멀리 해금강과 금강산 등 북한지역까지 보인다. 불빛은 12초 간격으로 깜빡이며, 약 37km 떨어진 해상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등대 빛은 깜빡거린다고 표현했지만 실상 깜빡이는 것이 아니라 돌고 있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2개의 무인등대는 대진등대에서 원격으로 관리된다. 2개의 등대를 연결한 선이 곧 북방어로한계선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며 어선들이 월북의 위험 없이 조업하도록 돕는다. 10여 년 전만 해도 자칫 선을 넘어 월북을 하게 되면 납포 후 자진해서 월북했다는 확인서를 쓰게 하고 계속 잡아뒀다고 한다. 남북 분단의 아픔이 새삼 다가왔다.




■포구의 아련한 정취 대포항

대진등대에서 남쪽으로 가다 보면 속초시의 대포항에 닿는다. 속초등대전망대를 가기 전에 식사를 하며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추운 겨울에다 폭설로 어선들이 조업을 중단한 상황이었지만 포구 특유의 활기는 여전했다. 입구부터 입맛을 자극하는 오징어순대와 큰 새우 튀김이 길 옆 가판에 놓인 채 여행객의 발길을 유혹한다. 가격도 1,000원 정도로 부담이 없어 일행에 한턱 쏴도 좋다. 각종 수산물과 건어물을 살 수 있는 상점과 회 한 접시 먹고 가라는 상인들의 호객도 귀찮기보다는 즐겁기만하다. ‘가격이나 물어보고 가’라는 말에 흥정도 어느덧 재미가 붙는다.

갈매기가 배에 앉아 끼룩대는 항구를 배경으로 맛보는 신선한 회는 바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도심에서는 단가가 낮은 생선을 잡아 부당이익을 취하는 횟집이 일부 적발됐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곤 하는데 여기서는 눈으로 직접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안심이다. 4명이 우럭, 광어, 세꼬시, 오징어 등을 푸짐하게 고르고 나니 3만원이다. 이 정도 양을 서울에서 그대로 맛보려면 5~6만원은 족히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회에다 소주 한잔 걸치고 매운탕까지 먹고 나니 부러울 게 없다. 그렇다. 먹는 즐거움이 없는 여행은 말 그대로 ‘집 떠나면 개고생’일 뿐이다.
먹거리 가격대: 오징어순대 1개 1,000원, 새우튀김 4개 1,000원




■알록달록 예쁘기도 해라
속초등대전망대

대포항에서 약 30분 정도 떨어진 속초등대전망대의 밤 풍경은 낮에 본 하얀 등대와는 대조적이다. 색색 조명이 등대를 알록달록하게 비추기 때문일까. 속초의 야경은 몽환적으로 물든다. 이곳에서는 속초 시가지와 동해바다는 물론 설악산 등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어 관광객의 인기를 얻고 있다.

속초등대는 1957년 처음 불을 밝혔으며 45초에 4번 반짝이는 불빛은 36km 거리까지 닿는다. 속초등대의 등명기는 1953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으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해양문화재단을 통해 등대 체험을 하는 이들은 직접 올라가 볼 수 있다. 거대한 렌즈의 직경은 1m에 달하며 프리즘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어 멀리까지 불빛을 전달한다. 이것이 빙글빙글 돌며 위치를 알리는데 모터와 같은 동력이 없는 시기에는 등대원이 직접 축을 끼우고 정기적으로 돌려야 움직였다. 이를 제작한 일본 회사는 현재 문을 닫았다고 하는데 너무나 튼튼하게 만든 탓에 추가 수요가 없어 경영난을 겪은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등대 바로 옆의 직원 숙소는 예상과 달리 그냥 일반 아파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따뜻하고 편리하다. 펜션처럼 조리기구가 갖춰져 있어 취사를 할 수 있고 숙소에서 바라보는 시내 야경이나 바다 풍경은 위치 좋은 스카이라운지나 일급 호텔이 부럽지 않다.

■성당인가 등대인가

주문진에서도 등대를 만날 수 있다. 주문진항은 오징어, 명태, 꽁치, 무연탄, 경유 등이 반입되던 동해 중부지방의 어업전진기지로 호황을 누렸으며, 부산~원산 간을 운항하는 기선의 중간 기항지로 배들이 자주 입항한 곳이었다. 1918년 세워진 주문진등대는 강원도에서 첫 번째로 세워졌으며 벽돌로 건조된 등탑은 우리나라 등대 건축의 초기에 해당하기에 건축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마치 성당을 연상케 하는 이 등대는 디자인적으로도 매우 유려해 사진촬영지로도 인기가 좋다. 푸른 하늘을 벗삼아 하얀 등대와 함께 사진을 찍으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등대 체험의 지름길

등대 체험은 각 지방 해양항만청 홈페이지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표 참조>.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현재 여수 거문도등대, 부산 가덕도등대, 울산 울기·간절곶등대, 제주 산지등대 등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용 희망일 전에 미리 각 지방해양항만청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되고 설·추석 연휴기간 등 지정 기간에는 이용이 제한된다. 해양문화재단에서는 정기적인 등대 체험 행사 진행을 검토 중이다. 이를 통하면 편리하므로 체크해 보자. 숙박, 교통, 식사 포함해서 10만원 수준이다. www.ocf.or.kr

단순 견학의 경우는 등대가 개방되는 시간에는(오전 9시~오후 6시) 언제나 관람이 가능하다. 숙박시에는 등대 옆의 직원용 숙소를 개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세면도구, 수건, 휴지 등의 개인물품이 필요하며, 개인의 식사는 주변 식당이나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

숙박은 아니지만 프러포즈가 가능한 등대도 있다. ‘포항 구항 방파제’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LED 전광판 연출 문구(특수문자 가능)와 배경음악 등을 신청하면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포항지방해양항만청 pohang.mltm.go.kr 054-245-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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