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샛별 satbyul@kca.go.kr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국 과장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는 것에 대한 동경 때문에 여행을 좋아한다. 그런데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상품이 여행의 가치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개인적인 회의감이 있다. 빡빡하게 정해진 일정, 낯선 사람들과의 동행, 원치 않는 쇼핑 등 왠지 자유로움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요소들…. 그래서인지 여러 차례의 해외여행 중 패키지 여행상품을 이용한 적은 1996년도 러시아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당시 꽤나 큰 여행사가 진행한 여행상품이었고, 함께 했던 일행들도 대부분 점잖고 좋은 분들이었다. 가이드도 크게 문제가 없었고, 일정도 무난한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불편했던 걸까? 그건 좀더 여유롭게 낯선 곳을 알아나가고 그 풍광을 즐기고픈 욕구를 패키지 여행상품이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는 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이런 취향 때문에 이후의 해외여행과 신혼여행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서 지도와 가이드북을 참고하고 인터넷을 통해 숙박지와 항공편을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면서 나만의 여행을 누려왔다.

그런데 이런 필자의 취향과는 달리 패키지 여행 중심의 여행 문화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여행사의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정보의 부족, 언어장벽, 여행준비를 위한 시간의 부족 등으로 소비자들은 여전히 여행사에 의지해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그런데 여행사는 여행이 가진 본질적인 가치가 담보될 수 있을 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걸까?

얼마 전 사촌동생이 태국 푸켓으로 여행을 갈 예정이라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필자가 태국 푸켓에 여러 차례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이다. 회사에서 소개받은 여행사를 통해 여행을 갈 예정이라며 일정을 좀 봐달란다. 그런데 일정표를 보는 순간 난감해졌다. 4박5일의 일정인데, 거의 ‘별보기 운동’ 수준의 새벽에서 밤까지 꽉 찬 스케줄이었다. 주요 관광지 투어 사이사이 들어간 지압·스파 체험, 사파리, 트레킹, 쇼핑센터 방문, 게이쇼 관람 등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한 일정이었다. 사촌동생에게 뭘 제일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리조트에서 뒹굴 거리며 여유를 만끽하는 거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도 왜 이 상품을 선택한거냐고 되묻자, 동생은 대부분의 여행사 상품이 비슷하다는 거다. 그리고 가본 적이 없는 데 혼자 어떻게 다녀 오냐며 일정이 맞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필자가 모든 예약·스케줄과 정보를 제공해주는 ‘여행서비스’를 제공해주기로 하고 패키지 여행을 포기시켰다. 다행히 동생은 여유롭고 행복한 여행을 하고 왔다며 고마워했다.

그런데 얼마 전 푸켓 여행에서 피해를 당했다는 소비자의 피해구제 사건을 맡게 됐다. 여행 일정을 보니 사촌동생이 가고자 했던 상품 일정과 유사했다. 소비자가 주장하는 피해 내용은 이렇다. ‘아이들이 포함된 가족여행이었는데 성인 쇼를 관람하게 했다, 옵션관광을 하지 않고 리조트에서 쉬겠다고 했더니 가이드가 얼굴을 붉히며 남은 일정 내내 불친절했다, 6시에 문을 닫는 사원에 5시30분에 도착해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쫓기듯 구경했다, 해지는 언덕 방문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쇼핑센터에서 3시간을 쇼핑하게 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 소비자는 모처럼의 가족 여행이 ‘악몽의 시간’이 되었다며 하소연했다.

사실 위와 같은 사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행과 관련한 소비자 피해에서 늘 제기돼 왔던 문제였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비자의 정보력도 높아지고 여행환경도 많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패키지여행과 관련한 불만은 그 내용에 있어 큰 변화가 없다. 그 이유가 여행사의 영세한 수익구조 탓인지, 싼 가격만 찾는 소비자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소비자 만족’이란 소비자들이 원하는 기대에 부응하는 것 아닌가. 여행에 대한 기대 말이다.

얼마 전 친정 부모님이 유럽 여행을 떠났다. 지인들 10여명이 모여 매년 함께 가는데, 기존 여행상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럽의 소도시들만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파리 특파원을 지낸 그 모임의 리더는 유럽 구석구석의 보석 같은 소도시와 명소, 식당들만 골라 일정을 만들어낸다. 순간 ‘저런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가 있다면 적극 이용할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문화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좀더 혁신적인 여행 상품이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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