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걸어가던 길을 중도에 접고, 방향을 선회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도전이 때로는 무모한 모험으로 비치는 것은 그만큼 성공의 가능성이 희박한 까닭이다. 허나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맞부딪혀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도전해보지 않은 이들이 절대 체득할 수 없는 내공이 있기 마련이다. 탕갈루마리조트의 한국사무소를 맡고 있는 KTR 김현철 대표가 바로 그런 존재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던 시절부터, 여행사에 몸을 담았고 IMF를 거치며 산전수전을 겪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제 리조트 전문가로, 강단에 서는 교수로 ‘지속가능한’ 여행 전문가의 한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파란만장했던 여행사 경력

지금의 리조트 마케팅 전문 회사를 운영하게 된 데는 1988년부터 약 10개 여행사를 거치며, 쌓은 경험들과 당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이 바탕이 됐습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관광학’에 매력을 느껴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크라운관광의 공채를 보고 입사를 하게 됐습니다. 영어를 아주 잘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영어를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이 드물었던 터라 여행사에서 대우를 해주더라구요. 덕분에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며, 부수익을 많이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행사들이 직원복지가 너무 열악해 자주 회사를 옮겨 다녔습니다. 착취당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마치 노조위원장이라도 되는 듯, 불의한 대우를 참지 못했던 거죠. 당시만 해도, 선후배들과 함께 단체로 여행사를 옮겨다니는 조직 문화가 있었는데, 그렇게 여러 여행사를 전전했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 1월, 미도파관광 근무 시절, 답답한 한국을 떠나기로 결정 했습니다. 타히티로 갈 준비를 하던 중, 선배의 조언에 따라 사이판으로 가게 됐지요. 그곳에서 약 1년 동안 랜드사에서 근무했는데, IMF가 터지면서 혈혈단신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월급쟁이 벗어나고파 독립 결심

당시 대부분의 여행사가 문을 닫았던 터라, 잠시 외도를 했습니다. 보험사 영업도 했다가, 웨딩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이벤트 회사도 창업을 했지만 오래는 못했습니다. 결국 여행업으로 돌아오게 됐고, 투어이천, 온누리, 여행매니아 등을 거치며 영업 본부장 역할을 맡았습니다. 회사에서 중책을 맡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고객들이나 함께 일하는 항공사 직원들이 점점 젊어지면서 떠날 때가 됐다는 느낌이 들었던 거죠. 2004년 8월 월급쟁이 생활에 한계를 느꼈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여행사를 그만두기 몇 년 전, 나이가 마흔이 됐을 때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관광전문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IMF 때 얻은 교훈이 있었던 거죠.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니 준비를 해야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꼭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는데 대중 앞에 서도 두려움이 없고, 스피치에 자신이 있었던 만큼 공부를 하면 뭐든 쓸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관광전문대학원에서도 처음으로 개설된 여행·항공·크루즈과를 전공으로 택했고, 지금은 관련 강의를 대학에서 하고 있기도 합니다.

■탕갈루마와의 인연 ‘터닝포인트’

다행스럽게도 마지막으로 근무하던 여행사를 그만두고,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호주의 탕갈루마리조트로부터 제안을 받았습니다. 한국사무소를 맡아보지 않겠느냐고…. 탕갈루마리조트는 2004년 초에 한국사무소를 설립했는데, 소장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6개월만에 그만두게 되면서 새로운 사람을 찾았던 것입니다. 박사 3학기를 하던 중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업무를 해오다가, 2006년에는 새로운 제안을 받았습니다. 사이판 월드리조트에서 한국 영업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해온 것입니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탕갈루마리조트를 많이 성장시킨 능력을 월드리조트 측에서 높이 산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월드리조트는 지사 체제를 원했고, 저는 탕갈루마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요. 오히려 이때 탕갈루마 측의 배려로 ‘KTR(Korea Tourism Relations)’이라는 법인으로 전환하게 되면서 새로운 마케팅 대행 업무를 맡을 수 있게 됐습니다.

탕갈루마리조트의 한국사무소 역할만 하다가 KTR 법인을 설립한 후, 호주 퀸즈랜드에 위치한 시로멧 와이너리를 새롭게 맡게 됐는데, 와인 수입업은 내 분야가 아니었던 터라 어렵다고 생각해 얼마 지나지 않아 업무를 중단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부터 호주의 여행업 마케팅 전문회사 파커트래블컬렉션(Parker Travel Collection, PTC)의 한국사무소를 맡게 됐습니다. PTC는 북부 퀸즈랜드를 중심으로 탕갈루마리조트, 파다라이스팜 코브리조트, 더레이크스파리조트 등 호텔·리조트를 비롯해 액티비티 업체, 전세기 항공사까지 40여 여행 관련 업체의 홍보 마케팅을 담당하는 회사입니다. 탕갈루마에서 다리를 놓아준 덕분이었죠.

■국제적 네트워크 발판…점진적 성장

KTR은 작은 회사이지만 제가 오랜 기간 여행업에 몸담으면서 맺어진 인연들로 제법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습니다. KTR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중국의 ATR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함께 WTR이라는 국제적인 마케팅 조직을 만들어 고급정보를 교류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 IMF 때 사이판에서 1년간 지냈던 것도 좋은 인연으로 지금까지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2009년 사이판 팜스리조트를 맡았고, 지난해부터는 사이판 코럴오션포인트 리조트클럽(COP)의 한국 판매를 맡게 됐습니다.

KTR은 앞으로 꾸준히 영양가 있는 해외여행 관련 업체의 한국 마케팅을 맡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외형확대는 지양합니다. 안정적인 모델로 롱런하기 위해서는 예약, 입금 등의 업무를 제외한 대행(Representative) 업무를 위주로 하고 싶은 까닭입니다. 여행업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얻은 교훈이지요. 큰 목표는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고 싶을 뿐이죠. 한마디로 ‘가늘고 길게’ 일을 하면서 여행업계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매주 금요일 업계 후배들을 오피스텔로 초청해 밥을 해주고, 주말마다 축구 동호회 ‘경연회’에서 열심히 공을 차는 소소한 낙을 오랜동안 누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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