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진 여행인 홍기정 모두투어 사장
1. 스타 영어강사가 모두투어 사장에 오르기까지
2. 나의 여행업 예찬론“여행업만한 직업 없다”

여행인으로 이끈 운명적 결심
“전설적 관광안내원 돼보자”



모두투어 홍기정 사장만큼 ‘다부지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여행인도 드물 것이다. 사람을 대하든, 업무에 임하든 항상 야무지고 옹골차다. 여행업에 대해서도 그렇다. 입버릇처럼 “여행업만큼 매력 있고 도전해 볼만한 게 없다”고 강조한다. 30년의 여행업 경력에서 우러나온 믿음이고, 자신이 직접 실천하고 증명한 것이니 믿지 않을 수 없다. 잘나가는 ‘스타 영어강사’였던 그가 모두투어 사장에까지 오른 데는 그런 애정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때 결심한 겁니다. 한번 이 여행업계에서 전설적인 국민 가이드가 돼보자고 말입니다. 그게 여행인이 될수 있었던 운명적인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스타 영어강사’의 여행업 입문기

원래는 강남에서 잘 나가는 영어 강사였어요,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당시 학생 수가 1,000명 넘으면 ‘스타 강사’, 3,000명 넘으면 ‘수퍼 스타’로 통했는데 제 학생 수가 종종 3,000명을 넘기도 했으니 정말 잘 나갔던 셈이지요.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이 터졌어요. 망국적 과외를 근절해야 된다며 1980년 8월인가, 과외금지 조치를 내린 거예요. 과외를 하면 재학생은 퇴학을 당하고 그 학원은 문을 닫아야 됐지요. 대성학원, 종로학원 등 재수생을 대상으로 하는 입시학원만 괜찮았고 그 외 학원들은 직격탄을 맞았던 거예요. 과연 살아갈 방법이 뭘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1979년도에 관광통역안내원 자격증을 따 놓은 게 있더라고요. 그래, 영어로 여행사에 취직해 우리나라 자원과 문화도 소개해보자, 그렇게 마음을 정했어요. 여행사를 택한 이유는,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언젠가 경복궁에서 외국인들 상대로 안내하고 설명하는 가이드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멋있고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거예요.

그래서 관광통역안내원 자격증도 딴 건데, 당시 한국관광공사 교육원장이 바로 마카오관광청 유환규 사장님이었어요. 제가 지금도 유 사장님을 선생님, 선생님하며 스승으로 모시는 이유지요.

관광통역안내원 자격증을 갖고 고려여행사와 대한여행사에 지원했어요. 그런데 고려여행사에서 바로 연락이 오더라고요. 마침 다음날 마사회 행사가 있으니 당장 해달라고. 그렇게 관광통역안내원으로 여행업에 첫 발을 딛게 된 겁니다.

■관광안내원 콘테스트서 금메달 수상

누구에게나 운명의 결정적 전환점이 있는데, 제 경우에는 1983년 관광의 날 행사가 그랬어요. 당시 관광통역안내원 콘테스트가 있었는데 제가 영어 안내원 부문 금메달을 땄어요. 당시 이희성 교통부 장관한테 우리나라의 불상과 건축에 대해서 영어로 설명했더니 훌륭하다는 거예요. 같이 식사 좀 하자고 해서 식사도 함께 했고요. 일약 ‘금메달 안내원’ 수식어가 붙고 자부심도 커졌지요. 그 때 결심한 겁니다. 한 번 이 여행업계에서 전설적인 국민 가이드가 돼보자고 말입니다. 그게 여행인이 될 수 있었던 운명적인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86 아시안게임 전년도인 1985년까지 관광통역안내원으로 활동했는데, 주로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권 고객들을 안내했어요. 당시 고려여행사는 순복음교회 행사나 참전용사 행사 등을 많이 했었습니다.
통역안내원 업무만 한 것은 아니었어요. 고려여행사에서 안내원만 할 게 아니라 페이퍼 업무도 해야 하고, 텔렉스도 쳐야 되고, 수배업무도 해야 된다고 해서 구미·동남아 팀장직도 함께 했던 거지요. 1982년, 1983년에는 태국 ROH(Royal Orchid Holiday) 한국매니저도 했었고요.

■해외여행자유화와 모두투어의 탄생

그러다가 86년도 아시안게임 이후에 고려여행사에 ‘썬투어’ 부서가 생긴 겁니다. 아웃바운드 브랜드였지요. 그러면서 썬투어 행사과장으로 제가 갔고, 박상환 현 하나투어 회장이 수배과장을 했어요. 최현석 현 하나투어 부사장이 저와 함께 영업을 했고요. 모두투어 우종웅 회장님은 썬투어 본부장이셨어요. 당시 해외여행 브랜드로, 한진관광에는 칼월드투어가 있었고, 세방에는 아리랑세계투어, 대한여행사에는 점보, 서울항공에는 나드리가 있었는데, 고려여행사는 썬투어로 경쟁한 겁니다.

88서울올림픽이 끝나고 기회가 왔습니다. 1989년도에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거지요. 그 때 맞춰 모두투어를 브랜드로 한 ‘국일여행사’를 세운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1989년에 시작해서 이렇게 성장했으니까요. 모두투어에서는 차장부터 시작해서 부장, 이사, 상무, 전무를 거쳐 2000년에 부사장이 됐어요, 2008년까지 8년 동안 부사장을 하다가 2009년 1월1일부로 사장이 된 겁니다.

‘전설적인 국민 가이드가 돼보자’던 결심 하나로 30년을 해오다보니 북극에서 희망봉, 알래스카에서 남극, 홋카이도에서 뉴질랜드 남섬까지 다 다녀본 것 같아요. 사장도 되고, 돈도 얻고, 명예도 얻고요.(웃음) 여행업에 와서 많은 복을 받았으니까 후배교육이라든지 사회공헌 등에서 갚아 나가고 싶습니다.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