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원 schoi@tourism.australia.com
호주정부관광청 한국지사장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게 확실한가? 개체수로 따지면 개미가 훨씬 많고, 거대한 개미탑인 터마이트(Termite)들이 대낮의 강한 햇볕을 피해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해 세워진 것을 보고 있노라면 섬뜩한 느낌이 든다. 개미에게도 지능이 있다는 이야기인가? 어느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전문의는 주로 40~50대 남자들이 간암에 걸리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 연령대의 남자들은 이미 생식의 책임을 다했으므로, 바이러스가 공격을 해도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반면에 여자들은 아직 아이를 길러내야 하므로, 바이러스가 좀 더 놔두는 것 같다면서… 바이러스가 판단 능력이 있어 희생자를 선별하고 있다니, 이게 무슨 영화 에일리언 같은 이야기인가. 신종플루가 잠잠해졌나 싶더니, 이제는 나라 전체가 구제역에다 조류독감 발생으로 비상이 걸려 있다. 현재 우리는 바이러스와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세계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던 결정적인 계기는 사람이 일으킨 전쟁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륙을 휩쓸고 지나간 어떤 질병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질병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인간이 자연 앞에 얼마나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절감하게 된다.

중세 봉건사회의 붕괴도 무시무시한 전염병과 관련이 있다. 당시 유럽 인구 2,400만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1348~1361년 기간 동안 유럽에 창궐했던 페스트, 일명 흑사병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노동 인구 감소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자, 새로운 노동력을 찾기 시작한 것이 유럽의 신대륙 발견이며, 곧이어 경쟁적인 식민지 건설 및 제국주의 팽창의 시대가 열렸다. 1520년 코르테스가 이끈 단 몇 백명의 스페인 군대가 아메리카에 전염시킨 천연두는 2,000만명에 달하는 원주민을 사망시켜, 아스테카 문명 자체가 소멸됐으며, 아메리카에 식민지 지배가 뿌리내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18~1919년에 전파된 스페인 독감은 전세계 4,000만명을 사망케 했고, 세계 제1차 대전을 종결시킨 독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 1차 대전으로 인한 사망자가 1,500만명이었는데, 불과 6개월만에 독감 바이러스가 전쟁 사망자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 스페인 독감은 이후 조류독감(AI / H5N1)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A형 인플루엔자의 아형 중 H단백질로 불리는 헤마글루티닌(Hemagglutinin)은 바이러스를 세포 안으로 침투시키는 역할을 한다.

2년 전 국내에도 창궐했던 신종플루의 아형은 H1N1으로 사람, 돼지, 오리, 닭을 죽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류에서 돼지를 거쳐 사람에게 옮겨진다 해서 돼지 독감(Swine Flu)으로 불리기도 했던 독감 바이러스들이 1997년 변종을 일으켜 돼지를 거치지 않고, 조류에서 사람에게로 직접 전파된 것으로 파악됐다. 조류독감에 걸린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전염시키는 ‘사람간 전파력 획득 기전’은 1993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조류독감(AI)을 박멸하려면 H5N1 바이러스의 근원인 철새들을 전부 박멸해야 한다는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로 빙하 속에 갖혀 있는 온갖 병들이 풀려날 가능성이 높아서, 천연두 등 각종 질병들도 다시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자연이 인간의 숫자가 너무 늘어난다 싶으면, 한번 날을 잡아 싹 정리한다고 이야기하는 과학자들은 팬데믹(Pandemic), 즉 독감바이러스로 인한 치명적인 전염병의 대륙간 전파를 경고하고 있다. 수많은 바이러스의 다양한 변종과 공격 - 현재 지구의 지배자인 인간과 도전자들과의 힘겨운 싸움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은 섬뜩하다. 우리가 이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얼마나 되는 것인지, 앞선 대응책을 찾는 능력이 있는지 두려울 때가 많다.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