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무가내로 찾아가 동남아 인바운드 개척

그야말로 먹고 살기도 힘들던 1970년대, 해외특파원으로 세계 각지를 뛰어다니던 신문기자가 여행업과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에는 우연이었지만 돌이켜보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벌써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여행업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26년)를 지닌 ‘관우클럽’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여행업계의 원로 세양여행사 이용훈 회장, 그는 여전히 여행업 현장에서 그 인연의 길이를 늘려가고 있다.




■일본 일색일 때 동남아 시장에 주목

1970~80년대 인바운드 시장을 돌이켜보면, 그때는 정부가 여행사에 외국인 유치목표를 거의 할당하다시피 했어요. 너희는 몇 명 유치해라하는 식으로요. 다들 외화 획득, 외화 획득 외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다른 여행사들은 대부분 일본에만 매달렸는데, 저는 시야를 동남아시아로 돌렸어요. 타이완, 홍콩 여행객을 엄청 많이 유치했지요. 물론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처음 시작하는 거였으니까 그곳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었고, 그쪽도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냥 부딪히는 수밖에 없었어요. 홍콩에 가서는 간판에 ‘여(旅)’자만 들어가면 무조건 들어갔어요. ‘여운공사’라고 써 있어서 여행사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운수회사인 경우도 있었고요.(웃음) 그렇게 막무가내로 찾아가서 설명하고 그랬어요. 1970년대 대한여행사에서 근무할 때 설국환 회장을 모시고 가서 호텔에서 연회를 열기도 했지요. 현지 여행사 사람 200~300명씩 불러서요. 돈도 많이 썼어요. 그러다 보니 성과가 있었어요. 손님 보내달라고 영업하러 간 입장인데 그쪽 여행사 사장들한테 식사대접을 받기도 했어요. 자기네도 할당해 달라고 하면서요. 투숙하고 있는 호텔 객실 앞에 줄을 섰을 정도였어요. 정말 타이완, 홍콩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왔을 정도로 성과가 좋았어요.

지금도 동남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겨울이면 스노우(Snow) 패키지 상품을 팔고 있잖아요. 그 시초가 되는 상품을 제가 처음 만들었어요. 동남아 시장을 대상으로 ‘스노우 펀(Snow Fun)’ 이라는 패키지를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었던 겁니다. 그쪽 사람들은 눈 구경을 못 하거든요. 겨울에 한국으로 눈 구경 와라, 이런 전단을 만들어서 보내고 그랬어요. 언제인가 12월 말에 홍콩에서 버스 2대 규모의 단체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새벽에 홍콩 여행사의 에스코트가 저한테 전화를 한 거예요. 눈이 올 줄 알았는데 비가 온다며 어떻게 하냐고 말이죠. 난감해서 북악산 쪽으로 데려갔더니 다행히 눈이 조금 남아 있어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지요.(웃음) 당시에는 강원도까지는 가지 못하고 서울에만 있었으니까 그랬던 거예요. 또 한 번은 동남아 관광객들한테 제주도의 폭포를 그렇게 자랑했는데 막상 가 보니 물이 없는 거예요. 손님들 컴플레인이 나고 그랬죠. 천재지변이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또 위기를 넘기기도 하고….

■출혈 경쟁하기는 지금이나 마찬가지

당시에는 인바운드 여행사가 23∼25개 정도밖에 없었어요. 많지 않았으니까 25개 여행사가 오순도순 잘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았어요. 덤핑이다, 불건전 관광이다, 시끌시끌했지요. 정부에서도 너희들 도대체 뭐하는 거냐며 난리를 치고요. 정부에서 하도 압박을 가하니까 자구책으로 관광협회 안에 인바운드 여행사 자율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었어요. 정식 이름이 ‘국제여행알선업 유치소위원회’였던 것 같아요. 시장정화를 위한 일종의 여행사 자율위원회였어요. 제가 거기 위원장이 됐어요. 대한여행사나 한주여행사에서 건전관광을 위주로 한다는 점 때문이었는지 25개 여행사들이 저를 선출한 거지요. 한마디로 여행사가 여행사를 감사하는 거였어요. 각 여행사의 서류를 갖다 놓고 덤핑을 했나 안했나 파악하고 그랬어요. 당시 각 여행사별로 500만원씩 공탁금을 냈었는데, 만약 덤핑이 적발되면 그 500만원이 모두 날라 가는 거였어요. 서류를 보면 뻔하게 보여요. 덤핑 한 거, 서류 위조한 거…. 그렇다고 어떻게 동업자끼리 고발을 해요? 적발은 했는데 고발은 한 곳도 못했지요.(웃음)

자율위원회가 상당히 오래 유지됐었는데, 지금도 신문광고 크기를 자율적으로 제한하고 있잖아요. 아마 당시 관행이 이어진 것 같아요. 아웃바운드가 막 시작될 때 광고 크기 제한에 대해서 합의를 했던 거지요. 그런데 큰 효과는 없었어요. 그 때나 지금이나 여행사가 단합이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중소업체는 전문화로 승부 걸어야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되면서 여행사도 우후준순으로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자유화로 해외여행 수요가 많아졌으니 당연히 여행사도 늘어야겠지요. 너무 많아서 출혈경쟁이 심하다고도 하는데, 여행업 하기에는 옛날보다 지금이 낫다고 생각해요. 당시에는 규제가 참 많았고 정부 간섭도 심했기 때문이죠.

세양여행사는 1987년에 설립했어요. 처음에는 여러 부문을 다루며 크게 했었는데, 아시다시피 1998년 IMF로 참 힘들었잖아요. IMF 외환위기로 많은 여행사들이 문을 닫았는데 세양도 규모를 크게 축소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뒤부터는 전문화를 추구했어요. 일본을 전문으로 하되 제 개인적으로 골프에 취미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 골프투어에 초점을 맞춘 거죠. 일반적인 아웃바운드 부문은 덤핑이 너무 심했다는 점도 감안했어요. 골프투어 손님은 대개 중산층이고 가격에 대해서도 예민하지 않아서인지 순탄하게 해왔어요. 중소업체는 어떤 식으로든 전문화를 추구해야만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