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인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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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are you?”라고 물으면 “Fine, thank you!” 가 반사적으로 나오는 것처럼 어른들의 대화에서도 이런 유사한 예제가 하나 있다. 어떻게 지내냐는 누군가의 안부인사에 “많이 바빠”라고 말하면 상대방의 입에서는 거의 대부분 “바쁘면 좋은 거지”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무의식적으로 묻고, 무의식적으로 답하는 그 형식의 대화법이 반복되는 어느 날 ‘바쁘면 왜 좋은 것이지?’라는 의문이 문득 들었고 나는 외국에 사는 트위터 친구들에게 그쪽 나라의 사정을 물어봤다. 그러자 거기도 “I'm busy”하면 “So good!”이라는 리액션을 많이 한다고 한다. 특히 요즘같은 불경기에는 'busy'한 것이 'lucky'한 것과 비슷한 의미로 여겨지는 분위기라고 하니 바쁨의 정서에 있어서 동서양이 모두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해가 괄약근에 들 때까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한량처럼 좋은 곳을 휘적거리며 구경하고 아주 가끔 심심할 때만 일을 한다면 그 어찌 띵호아가 아닐까마는, 그렇게 살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어디 산골로 들어가 자발적으로 가난을 결정하고 느리게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한 도시인들은 너나없이 분주하고 예외 없이 바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에게 바쁜 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당면한 실존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바쁘더라도 세련되게 바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생각한다. 남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사는 성격이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남들에게 ‘무척 바쁜 사람’으로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세련된 바쁨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전화를 건 친구는 모임소식을 알리며 ‘바쁜데 참석할 수 있겠느냐?’며 배려의 한마디를 잊지 않았고, 내 사무실 앞을 지나던 어떤 이는 ‘바쁠 텐데 차 한 잔 할 시간은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묻고는 했다. ‘형님 바쁘시니 시간 되실 때 전화를 주세요’라는 후배의 전화는 끊고 나면 이상하게 찜찜한 감정으로 남고는 했다.

하기야 올해 계획표를 쓰면서 그 첫줄에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쁜 한해’가 될 것이라고 적을 정도였으니 남들 눈에 나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며 요것도 관여하고 조것도 진행하는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한결같이 ‘내가 술 마시자고 할 때 언제든 오케이라고 할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나의 입장에서 나는 저들에게 절대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용어 중에 ‘고르게 떠있는 주의’라는 것이 있다. 관찰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치우치지 않는 주의를 말하는 이 용어는 거센 파도의 한 가운데서도 편안하게 떠있는 돛단배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세련되게 바쁘다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서 내 앞의 사람, 지금 내 앞의 일에만 마음을 두는 것이다.

앞 사람과 차 한 잔을 마시면서도 그 시간 이후의 일에 마음을 뺏기는 것은 바쁜 것과는 상관없는 산만함일 뿐이다. 챙겨야 할 관계, 나눠야 할 정(情)을 고르게 분배하면서 자신은 바쁘되, 남에게는 여유 있게 보이는 모습, 이것이 바로 세련된 바쁨이다. 물론 쉽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안다. 다만 개념이 섰다면 진도의 반은 나간 것이다. 그래서 올해의 목표를 다시 수정한다. 올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세련되게 바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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