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렬
(주)러블리투어 이사
rancet@lovelytour.co.kr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은 우리나라에서 100만부나 팔린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한국 사회에 큰 화두를 던졌다. 반칙과 불공정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정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케 한 것이다.

정의라는 단어는 옛날 만화영화에서나 듣던 말이라 생경한 것이 사실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만큼 우리는 정의 불감증에서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다. 엄청난 판매고 덕에 샌델 교수는 올 초 신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들고 우리나라를 방문했는데 그때 인터뷰에서 한 말이 또 인상적이었다. ""최저가 상품이 사회의 유일한 가치가 아니다.""

인터넷의 등장은 사회의 모든 분야를 최적화시켰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충격을 준 곳이 시장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방식에 공간과 시간의 장애를 없애버리면서 철저히 가격 기준으로 상품 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특히 한 눈에 가격비교가 가능한 메타쇼핑몰 등이 자리를 잡으면서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상점들도 가장 중요한 판매 기준을 가격에 둘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모든 상품 판매는 저가 제품이 주도하는 시장이 됐다.

그런데 이런 저가 판매 전략은 굳이 인터넷까지 가지 않더라도 여행업계에서 빈번하게 있어왔다. 여행상품에는 저작권 혹은 특허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히트친 상품은 금방 복사돼버리기 일쑤다.

이때 후발주자들이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가격 후려치기다. 또 손님들이 이 여행사, 저 여행사로 돌려가며 전화 협상을 할 때 제살 깎기도 흔하다. 영업이익이 높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우선협상자도 수익이 낮을 때 후발업체의 저가공세가 벌어지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업계 전체를 위기로 빠뜨리는 행위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값싼 여행상품은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 손님이나 판매한 여행사 모두 불만족스럽다. 또 랜드사와 서비스 제공 협력업체들도 제때 결제 받지 못하게 된다. 이런 최저가 상품은 고객과 여행사와 협력업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여행업계 전체가 하향 평준화되면서 종사자들의 사기는 저하되고, 경제적 보상은 적어지며, 사업의 성공도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샌델 교수가 언급한대로 최저가 상품끼리의 경쟁은 총체적으로 사회에 좋지 않은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행업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여행을 동경하고 있는가? 부끄러운 업계 속사정과는 별개로 빈번하게 트렁크를 끌고 공항을 빠져 나가는 모습만으로도 부러워하는 시선들이 너무나 많다. 본질적으로 여행업 자체는 사회의 가치를 높이는 산업이다. 사실 법원이나 병원은 멀리 할수록 좋은 반면 여행사는 가까이 할수록 기분 좋은 곳이 아니던가?

여행업의 현실과 본질 사이에 놓인 이러한 괴리는 결국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여행에 대한 높은 기대를 현업에서 지혜롭지 풀지 못하고 가격으로만 대응해 왔는지도 모른다.

고전적인 마케팅 전략에서도 가격정책(pricing)은 4P의 하나로 매우 중요하지만 이것이 곧 가격의 낮춤을 뜻하지는 않는다. 가격을 깎다보면 여행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 지금의 고객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이것을 발굴하는 것이 상품의 가치와 산업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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