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경
㈜나스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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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프다”, “밥 먹자”, “불 끄고 자자”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집에 오면 딱 세 마디 말만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지만 요즘 경상도 남자들도 SNS를 통해 만나는 친구들과는 참 많은 얘기들을 쏟아놓는다. 밤 늦은 시간, 꼭 걸어 잠근 대학생 딸의 방에서는 밤새 불빛이 새나온다. 온라인 게임과 SNS로 수많은 친구들과 소통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직장에서는 신입사원이 바로 옆에 앉아있는 선배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으면 아무 말없이 메신저를 통해 작성된 파일을 보내고 퇴근한다. 점심시간, 4명의 동료들이 식사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사이 각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서로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다. 실제로 필자 또한 미팅을 할 때 좀 길어지면 불안감이 증폭돼 자꾸만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카톡에 답하며 이메일을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앞에 앉은 분께 결례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실시간으로 답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때문이다.

IT 기술과 기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보편화되고 있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들과도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덕분에 전혀 모르는 수많은 사람과의 소통이 활발해졌다. SNS 언어를 모르면 가정에서 청소년 자녀들과 소통하기 어렵고 직장에서는 신입사원들을 이해할 스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IT기술의 최강국이자 한류 같은 창조적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은 문화간 대화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미국문화와 다른 문화적 가치를 소개해 아시아·이슬람에서 환영을 받고 있는 한류는 문화의 공존을 사고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소통·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권위자로 통하는 도미니크 볼통(65)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산하 소통과학연구소장이 지난 6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문화소통포럼 CCF2012' 에서 '문화의 세계화: 한국의 역할'이란 제목의 기조연설을 통해 한 말이다. 볼통 소장은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인류학·컴퓨터공학·생물학·사회학을 접목한 소통학의 창시자로 꼽힌다. 지난해 국내에 출간된 책 <불통의 시대 소통을 읽다>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최근에 출간된 <또 다른 세계화> 한국어판 서문에 한류문화에 대해 “동양과 서양 문화의 교차점에서 '한류'라는 문화를 꽃피운 한국은 미래 문화 소통의 리더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하면서 “문화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때 문화적 차이로 인한 정체성 갈등은 더욱 커기 마련”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기술은 전세계를 하나로 연결했지만 문화가 담기지 않은 소통은 서로 다른 문화, 다른 세대 계층간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기술은 정보 전달의 매개체가 아닌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수단이 됐을 때 비로소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정보 전달만 할 뿐 소통은 하지 않는 문화 세계화는 문화적 차이를 부각하고 몰이해를 더욱 부추길 뿐이다.

터키 이스탄불 국제문화예술재단 대표 고르균 타네르는 “한국 문화의 가장 큰 경쟁력은 중독성 있는 현대 음악”이라며 “현대 예술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한국은 문화 선진국”이라며 부러워 하기도 했다. 그는 또 “70억 세계 인구가 모두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건 정치·경제 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문화”라고 말했다.

이번 문화소통 포럼은 ‘한국이 산업과 문화가 고루 발달한 경제강국으로서 위상을 다지고 세계가 한국문화의 중요성을 주목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해주었다. 12월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권의 화두 중 하나도 소통이다. 모두 소통을 강조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용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IT기술과 함께 한국의 문화지수가 높아지듯 우리의 정치·산업 또한 진정한 소통문화 속에서 발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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