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인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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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혼자만의 언어놀이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한 단어나 서술어를 생각해놓고는 그것의 뿌리가 어디서 왔을까를 이리저리 상상하고는 한다. 예를 든다면, 불륜관계의 남녀를 향해 ‘바람을 핀다’고 하는데, 바람은 불거나 맞는 것인데 왜 불(火)도 아닌 바람을 두고 ‘핀다’고 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비슷한 경우로, 오빠의 아내를 올케라고 하는데 ‘올케’는 어디서 온 말일까를 궁금해 한 적도 있다. 대개 이럴 경우, 인터넷 검색으로 궁금증을 풀거나 그곳에서도 답을 주지 않을 때는 술자리 수다 주제로 활용하는데 어쨌든 나는 이 놀이가 재미있다.

가장 최근에는 ‘논다’라는 동사에 꽂혔었다. 나도, 남들도 꽤 자주 쓰는 말이 ‘논다’인데 그 익숙한 말의 어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어젯밤 노래방에서 잘 놀았다’라거나 ‘여행가서 잘 놀고 왔다’, ‘엄마, PC방 가서 한 시간만 놀다올께요’, ‘만날 놀다보니 시험을 엉망으로 봤어’라고 말할 때의 ‘논다’의 행위적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러다 어디서 봤는지, 누구에게 들었는지, ‘논다'는 것이 ‘내려놓다'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아하! 하고 탄식을 뱉었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한 순간 내려놓은 상태에서 하는 행동을 ‘논다’라고 하는 것이었구나! 해야 할 일과 가지고 있는 고민과 이런 저런 잡념을 모두 ‘내려놓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고, 춤을 추고, 수다를 떠는 것, 그것이 바로 ‘논다'는 것이었구나!

그 다음부터 나는 누군가와 놀 때면 ‘내려놓는 것’을 의식적으로 먼저 생각한다. 잘 논다는 것은 잘 내려놓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의 변화다. 그런데 거기까지만 갔다면 좋았으련만, 늘 오지랖이 문제다. 이번에는 ‘쉰다’를 상상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요리조리 찔러본다.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티브이를 들여다보는 것이 쉬는 것일까?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것이 쉬는 것일까? 양파링을 먹으며 만화나 영화를 보는 것이 쉬는 것일까? 물론 모두 쉬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쉬는 것 말고 정말 잘 쉬는 것은 무엇일까?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눈이 아프고, 낮잠을 자고 나도 머리가 아프고 일요일 하루 종일 쉬었는데 월요일 아침에 몸이 더 찌뿌둥한 그런 쉼 말고, 제대로 된 ‘쉰다'는 무엇일까?

‘쉰다'도 ‘내려놓다'의 ‘쉰다'와 이란성 쌍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놀다는 조금 동적으로, 쉰다는 그보다는 정적으로, 무언가를 내려놓고 하는 행위다. 잘 쉰다는 것은 자기의 머릿속에 있는 다른 시공간의 욕구와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몸은 뒹굴거리지만 다가올 미래를 고민하고 지나온 과거에 연연한다면 머리는 절대 쉬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쉰다는 것은 몸이 머무는 그곳에 마음도 함께 머무는 것이다. 그것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잘 쉬는 방법이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 통장의 잔고, 속 썩이는 애인, 사업 고민 등 다 내려놓고 잘 놀고, 잘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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