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섭
위투어스 대표
esshin@ouitours.com

누구나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 어디서 코리아란 말만 들려와도 귀가 쫑긋 서고 한국음식점의 태극기만 봐도 마치 한국 땅을 떠난 지 수년이나 되는 양 코끝이 찡하다. 그런데 요즘 해외에 나가면 코리아란 말 듣기가 무척 쉬워졌다. 한국산 스마트폰이 세계시장을 누비고 자동차와 텔레비전이 맹위를 떨치면서 외국인들로부터 자신의 집에 한국산 제품 하나는 꼭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 건 시쳇말로 뉴스 깜도 안되는 시대가 됐다. 게다가 최근엔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킨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인해 만나는 외국인들마다 그 춤 출 줄 아냐며 ‘말춤’ 동작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게 다반사다. 과연 이런 일이 아무 나라에나 일어날 수 있을까?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은근과 끈기를 지닌 대한민국 국민들의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얘기할 때 불굴의 투지와 도전정신으로 기적을 일군 기업들과 그를 지원한 국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아마도 1987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당시 유럽항공사의 영업직원으로 근무하며 본사에서 열리는 워크숍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각국 지사에서 온 스무 명 남짓한 인원들이 함께했다.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를 분노케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무난하게 소개를 끝냈다. 아니, 무난했다기 보다는 존재감이 미약한 나라, 한국에서 온 사람의 소개에는 대다수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이게 웬 일, 일본인 동료가 자신을 소개하자 소위 잘 나가는 선진국에서 온 친구들이 휘파람까지 불어대며 환호가 대단했다. 당시 일본은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라 불릴 만큼 위세를 떨치고 있을 때여서 서구인들의 일본문화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은 대단했다. 아무튼 뜨거운 반응에 잔뜩 고무된 이 친구는 급기야 일본국가를 불러 달라는 망언에(?) 가까운 요청에 화답해 ‘기미가요’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이 순간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마치 모욕이라도 당한 듯한 낭패감과 질투심이 엉켜 그냥 뛰쳐나가고픈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25년이 흐른 2012년,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난 달 이탈리아에서 열린 여행관련 전시회에서의 일이다.

각국에서 수백명이 참석해 열띤 상담을 가지던 중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사교의 시간이 있었다. 좌중이 이런저런 화제로 분위기가 무르익던 가운데 폴란드에서 온 한 여행사 대표가 한국의 놀라운 발전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한국과 한국인의 역동성에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면서도 이웃인 일본은 기업가정신이 사라졌다는 비판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말이다. 옆에 앉은 나의 점심 단짝인 일본인 여행업자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 나는 ‘일본이란 롤모델이 있어 오늘의 발전이 가능했다’는 립서비스로 그의 무안함을 달래주었다. 상전벽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나의 가슴 속 25년 간의 응어리가 그 순간 일시에 사라졌다면 너무 감상적이었을까? 세계각국의 여행업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이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나는 일부만 인정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저력을 믿기 때문이다.

지난 날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해외에선 모두 몇 년 갈 거라고 말할 때 우린 가장 짧은 시간 안에 회복해온 것이 엄연한 사실이고 국내외의 석학들이 내놓는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적중한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우리의 노력과 열정은 예상과 전망을 훨씬 뛰어 넘는다.

경기 예측은 딱 6개월만 하자! 대선이 끝나고 봄기운이 돌 때까지 어떻게든 희망의 싹을 틔우자. 사무실 미관도 더 청결히 하고 바쁠 때 채 하지 못한 직원교육도 실시하며 자금도 챙겨보자. 차제에 그간 뛰어들지 못한 시장이나 영업처가 있다면 과감히 부딪쳐 볼 일이다. 위기를 희망과 기회로 만드는 극적인 반전은 우리들의 특기가 아니었던가?
"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