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경
㈜나스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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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관광이 직판을 포기하고 홀세일 여행사로 전환한다는 소식에 여행업계에 미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는 모양이다. 현재 직판 45%, 간판 55% 비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진관광은 3년 안에 간판 비중을 90% 이상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VIP 고객층을 겨냥한 ‘칼팍’ 브랜드 또한 조만간 전문 대리점을 통한 간접판매 형태로 돌아선다고 한다. 지난 1994년, 대한항공이 ‘KAL여행개발’을 설립, 칼팍브랜드를 출시한 이후 18년만에 한진관광이 제길을 찾은 것 같다. 일부 여행업계에서 우려와 경계의 시선도 있지만 필자는 한진관광이 합리적인 대안을 선택했다는 긍정적인 기대감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과거 ‘KAL여행개발’은 VIP 고객들에게 특화된 품질의 여행상품을 개발해 대리점에게 공급하겠다며 홀세일 여행을 표방했지만 여행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제대로 정착할 수 없었다. ‘좌석 공급 특혜’, ‘패지키상품기획 독점’ 등이 우려된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칼팍은 브랜드 형태로 한진관광에 흡수 통합됐고 지금은 럭셔리 패키지 상품의 대명사로 브랜드 이미지를 잘 구축해 가고 있다. 홀세일 여행사로의 변신에는 실패했지만 ‘칼팍’ 브랜드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50년 역사를 가진 한진관광은 여전히 ‘직판과 간판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줄다리기 하는 직판패키지 여행사’로 남아있다. 한 번의 실패 이후 너무 오랫동안 움츠려 있었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 변신을 결정한 것이다.

한진관광은 지난해 21만8,000명을 모객해 161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직영·위탁 대리점수는 현재 60개에 불과하다. 지난 20년간의 홀세일 노하우와 20배 이상 규모의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하나투어·모두투어에 맞서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경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규모와 조직이다. 홀세일 사업에 도전했다 낭패를 본 몇몇 여행사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실패는 타산지석의 교훈을 남겼다. 제한된 시장에서 똑같은 수익모델로 따라잡기식 모방형의 영업전략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한진관광은 ‘대한항공’과 ‘진에어’라는 든든한 조커를 두 개나 들고 있다. 이 카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비상할 수도 추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최근 수년간 한진이 대한항공과 진에어를 이용해 단독 전세기를 운항하면서 독자적인 B2B 모델을 개발해 왔고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상’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싶다. 한진은 지난 동계시즌, 인도 바라나시와 미얀마 양곤, 케냐 나이로비, 필리핀 보라카이와 팔라완 등지로 대대적인 전세기를 운항한 바 있다. 성공적인 전세기 운항에 힘입어 대한항공은 최근 나이로비 직항 취항을 시작했고 미얀마의 양곤 또한 정기항로가 열렸다. 모두 사전 전세기 운항의 성과다. 그동안 베트남 나트랑과 알래스카 전세기도 성공적으로 운항했고 아직 정기편이 투입되지는 않지만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전세기는 매년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한진관광의 전세기가 업계의 주목을 받으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미얀마, 케냐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중장거리 노선이어서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았던 데다 직항 전세기를 이용한 기획상품을 개발, 좌석을 공급하면서 직판보다는 ‘대리점 선(先)판매’를 원칙으로 한 상생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홀세일 여행사로의 변신을 염두에 둔 예행연습에서 상생의 이미지로 일단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홀세일러 도전에서 고배를 마신 기존 여행사들과 달리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한진관광은 ‘좌석 공급 특혜’, ‘패지키상품기획 독점’이라는 비난을 피하려면 제한된 시장에서 제살깍기 식 영역 침범보다는 합리적인 영업전략으로 승부해야 할 것이다. 기존 업체와는 확실히 차별화된 전략이 있다면 이러한 변화는 여행업계의 파이를 키우는 데에 크게 한 몫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것만이 상생의 길이다. 한진관광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선구자자인 정신과 건전한 선의의 경쟁으로 소비자와 항공사, 여행업계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동반성장 모델’을 구축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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