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인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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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에 책 한 권을 출간했다. 심리 관련 책만 내다가 오랜만에 여행에세이를 쓰게 된 것이다. 그것도 여행지에 적합한 시(詩) 하나를 선정해서 그 시에 대해 감상을 쓰고 여행 이야기를 함께 풀어가는 형식이었다.

작업의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처음 함께 일을 해본 출판사와의 관계가 자꾸 불편했다. 그쪽은 작가가 가진 정치적인 색깔에 민감해했고, 나는 그것을 검열이라 받아들여 책 작업을 소극적으로 하려했다. 우여곡절 끝에 책이 나왔을 때도 출판사에서는 “작가님, 이 책을 서자 취급만 하지 말아주세요” 라는 농반 진반의 말을 전해왔는데, 그것은 책이 출간되었음에도 작가가 그저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것의 서운함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 그랬듯이- 내가 나서서 아는 기자들에게 책을 다 돌리고, 잘 봐달라는 메일을 쓰고, 각종 이벤트 기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이유는 출판사에게 삐졌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나는 부끄러웠던 것이다. 시를 좋아해서 시와 관련된 책을 꼭 내고 싶다는 오래 전부터의 꿈이 이루어졌지만, 막상 그 책이 내 손에 들어오고 나니, 내가 풀어낸 서른 세 개의 시 평론들이 일제히 일어나 나에게 조롱과 야유를 하는 듯한 환각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너 주제에 무슨 시를 이야기하냐? 그것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외면이었다. 기자들에게 알리려고 하기는커녕, 최근까지도 누군가에게 내 책을 선물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 책만은 쏙 빼놓기 일쑤였다. 세상에 이 엉성하고 민망한 책이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던 차에 한 달 전 출근길에 출판사로부터 축하전화를 받았다. 내가 그토록 쑥스러워하던 책이 ‘2012년 문화관광부 교양도서 문학 부분’에 선정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책이 나온 지 9개월 만에 처음으로 인터넷 서점과 포탈에서 내 책을 검색해봤다. 그리고 또한 알게 되었다. 꽤 많은 독자들이, 송구할 정도의 좋은 리뷰를 남겨줬다는 것을.

얼마 전 집단상담 지도자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상당히 유능하고 그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던 분이 이렇게 자기 고백을 했다. “한번 씩 상담 특강이나 상담 의뢰를 받고나면 굉장한 절망감에 시달려요. 내 앞가림도 잘 못하고 스스로 모순투성이 주제에 누굴 상담한다는 것이 모순이라는 거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어디 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어요”.

그 분의 고백에 동료들은 뜨악한 반응을 보였고, 저 정도의 능력자가 저런 말을 할 정도라면 우린 어쩌란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리더는 냉정하게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타인의 능력은 높게 보면서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신을 폄하하고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고 자신은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건 겸손이 아니라 착각일 뿐이에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라는 마음을 갖는 것은 자기 위로가 아니라 사실 확인인 것입니다.”

내 책의 사례나 상담사의 고백처럼 우리는 지나치게 자기 비하를 하는 습성이 확실히 있다. 이 습관화된 자기 패배주의를 벗어던질 때, 삶은 조금 더 느슨하고 여유있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 해를 마감하는 지금,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진짜 수고 많았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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