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 요상하고 아름다운 스리랑카
[현지취재] 요상하고 아름다운 스리랑카
  • 여행신문
  • 승인 2013.03.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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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리야 왕국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바라본 풍경

스리랑카에서 만난 가이드 란짓씽은 “스리랑카 사람들은 너무 논다”고 했다. 설날이라고 일주일,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일주일, 공휴일만 해도 셀 수가 없단다. “대학까지도 공짜, 병원까지도 공짜”라 조금만 일하고 노는 이들이 태반이란다. 좋겠다 했더니 “그래서 못 산다”고 한다. ‘아유보원’이라고 인사하는 스리랑카가 ‘나마스떼’라고 인사하는 인도와 비슷할 거라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스리랑카 사람들의 행동과 얼굴에는 ‘잘 못 살아도 느긋한’ 요상한 매력이 있다. 똑같이 좁은 도로를 달려도 스리랑카 사람들이 경적을 덜 울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에디터=김기남 기자 gab@traveltimes.co.kr
글·사진=Travie writer 이진경


●사자 바위 ‘시기리야’

스리랑카 신화에 따르면 스리랑카는 사자의 후손이 세운 나라다. 몸 속에 사자의 피가 흐르는 그들은 사자라는 의미의 ‘싱하’를 빌어 스스로를 ‘싱할라족’이라 부른다. 스리랑카 사람들의 70%는 싱할라족이다. 국기 가운데에 칼을 든 사자를 넣을 정도로 그들에게 사자의 존재는 특별하다.

5세기, 스리랑카의 왕 카샤파 또한 사자의 기운이 절실했을까.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카샤파는 선대왕의 유업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왕궁을 짓지만 패륜의 두려움을 이기지는 못했다. ‘나도 아버지처럼 죽지 않을까’, 바위 아래 평지에 해자와 높은 성벽을 두르는 것도 모자라 그는 200m 바위 꼭대기에도 왕궁을 지었다. 바위 꼭대기 왕궁은, 지금은 발톱만 남았지만, 사자의 발을 지나 사자의 품으로 안기는 모양새다. 바위 꼭대기에 앉아 바위 아래를 감시하던 그에게는 사자 품으로의 은둔이 유일한 위안이 됐을 테다.

카샤파 왕이 8년간 공들여 세운 왕궁은 사자 바위Lion Rock, ‘시기리야Sigiriya’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고작 11년. 형을 피해 남인도로 도망갔던 동생 무갈란이 코끼리를 타고 쳐들어오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백 계단을 올라 해자를 지나 들어선 왕궁은 수영장이며 분수대의 흔적이 세월을 잊은 듯 선연하다. 먹을 것에 심취한 원숭이들과는 달리 시기리야의 개들은 얼른 바위 위로 오르라는 듯 여행자의 발걸음을 종용한다. 뒤를 돌아보며 기다리기를 반복하는 개들의 행동이 심상치 않다.

바위 아래에서 꼭대기 왕궁까지 1,200개. 꼭대기 왕궁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개들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참으로 친절하게도 누군가 세어 놓은 1,200개의 계단은 백 몇까지를 세다 말며 쉬어 가기를 반복하게 한다. 얼마나 더 올라야 하나. 나선형 계단의 등장에 희망을 품는다. 빙글빙글 길게도 꼬아 놓은 나선형 계단 위에는 카샤파를 광기 어린 왕인 동시에 예술가로 격상시킨 시기리야 프레스코Sigiriya Frescoes가 자리했다.

시기리야 프레스코는 지금의 시기리야를 있게 한 주인공이다. 프레스코에는 힌두교 신화와 불교 신화에 나오는 구름과 물의 여자 요정 ‘압사라’가 있다. 당초 500명에 달했다고 하는 압사라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압사라는 강건하게 제 빛과 상태를 유지했다. 남아 있는 압사라 수는 스리랑카 관광청의 가이드북에서는 21명, 백과사전에서는 18명이라 말한다. 숨어 있는 압사라를 발견하지 못한 탓인지 어느 수가 맞다 말하진 못하겠다. 다만 한 가지, 이곳에서는 천 년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시기리야 절정에 오르다

심정적인 거리로 시기리야 프레스코는 딱 중간쯤에 자리했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며 희망을 품었던 일부 여행자들은 도로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을 내쉰다. 천년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벽바위를 타고 부는 바람은 힘든 이들을 위로한다.

길은 곧 미러 월Mirror Wall로 이어진다. 7세기부터 14세기까지 시기리야 프레스코를 방문한 이들이 이를 찬양하며 남긴 1,000여 개의 시와 글귀가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들의 글자를 알지 못하는 여행객에게는 그저 하얗게 보일 뿐이다. 풍류를 알았던 우리네 시인묵객들이 바위 위에 아름다운 글귀를 새기고 남겼듯 그들 또한 그랬겠지 짐작한다.

사자의 발톱 앞에서는 다시 바람의 위로가 있다. 휴식이 절실해질 즈음, 바람이 부는 곳이 사자의 발톱이 자리한 곳이다. 바위 위에 바위가 솟은 그곳의 바람은 여행자를 배려하는 듯 쉬지 않고 분다. 몇 분 동안 사자의 발톱을 바라보며 맞는 바람은 한 통의 생수처럼 귀하다.

바위 절벽에 아찔하게 매달린 계단은 사자의 발톱에서 시작해 높이를 더할수록 절정을 이룬다. ‘그래도’ 하며 눈을 질끈 감고 계단을 올랐다면 계단 끝에서 두 손 두 발을 사용하게 될 일이다. 용감무쌍한 이들도 아래를 내려다보기가 아찔하다. 내려갈 수도 올라갈 수도 없는 길. 계단조차 없었던 과거, 카샤파 왕은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때렸나 보다. 마음보다 몸이 아프고 싶었을 테다. 시기리야는 1982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입장료 30미국달러.



●시속 36.25km의 나라

여행객들은 간혹, 시기리야로 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기 위해 니곰보Negombo의 호텔에 짐을 부린다. 콜롬보 사람들이 휴양 차 즐겨 찾는다는 니곰보의 고급 호텔과 해변을 카메라에 담을 시간은 아쉽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갈 길 바쁜 여행자에게 니곰보는 ‘공항에서 35km 떨어진’ 콜롬보보다 ‘공항에서 12km 떨어진’ 위치 좋은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수치로는 고작 23km 차이지만 스리랑카에서 이는 무시할 수 없는 거리다. 콜롬보에서 시기리야까지는 169km로 5시간이 걸리지만, 니곰보에서 시기리야까지는 145km로 4시간이면 닿는다. 시기리야는 스리랑카가 자랑하는 일등 볼거리다.

왕복 2차선 도로 위의 버스는 느리게 움직인다. 속도를 내다가도 화물차의 꼬리를 물거나 정차하는 완행버스에 움찔한다. 태국에서는 뚝뚝이라고 불리는 쓰리휠라Three Wheeler, 휠러가 아니고 휠라다도 한몫 거든다. 주민의 대다수가 크리스천이라 작은 로마 거리라 불리는 니곰보를 벗어나면 풍경이 엇비슷해 버스처럼 느릿느릿 눈이 감긴다.

●동굴에 모신 160분의 부처

시기리야를 찾는 이들은 담불라로 모이고 담불라를 찾는 이들은 담불라 동굴 사원Cave Temples of Dambulla을 찾는다. 기원전 1세기경 왕좌를 되찾은 왕이 감사의 마음으로 지은 사원, 담불라에는 부처보다 낮은 곳에 왕이 있다. 부처님과 함께 설 수 없어 뒤로 숨은 왕은 담불라 동굴 사원 중 가장 큰 규모인 마하라야 위하라Maharaja Vihara, 두 번째 사원에 수줍게 서 있다. 담불라는 거대한 바위 아래, 5개의 동굴 사원으로 이뤄졌다. 마하라야 위하라는 담불라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사원. 사원의 이름처럼 ‘물의 길’이 천장을 타고 흐르고, 물길 주변에는 물고기 벽화가 그려져 있다. 열반에 이른 부처님부터 비를 막아 주는 코브라 아래에서 수행하는 부처님까지, 담불라에는 160분의 부처가 모셔져 있다. 불상을 조성하고 남은 재료는 다음 동굴 사원에 고스란히 모시는 등 담불라는 부처님의 작은 흔적까지 받든다. 사원 내에서 신발과 모자 착용이 금지되는 건 당연하다. 담불라 동굴 사원은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입장료 1,300루피.

●콜롬보에서 골까지 겨우 119km!

담불라에서 4시간을 달려 진입한 콜롬보는 뭔가 다르다. 한 이틀 지방 도로 위에서 의도치 않은 시간을 보냈더니 “도로가 참 넓다”, “역시 콜롬보답다” 칭찬이 쏟아진다. 거센 바다를 보고 선 도시는 현대식 건물과 유럽풍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닷가 산책에 나섰다가 출출한 배를 길거리 음식으로 달랬다. 밀가루로 만든 빵인 난에 양배추를 썰어 넣고 매운 소스를 뿌려 준다. 뜨거워진 입을 호호 달래며 거센 바닷바람을 맞자니 조금은 처량하다.

콜롬보의 거센 바다를 뒤로한 다음 날, 골Galle로 떠난다. 콜롬보에서 119km나 떨어져 있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몇 달 전에 개통됐다는 스리랑카 1호 고속도로가 콜롬보와 골의 104.5km 구간을 잇는다. 이용객이 많지 않은 고속도로는 버스가 최고의 속도를 만끽할 수 있게 뻥 뚫려 있다.

골에는 골 포트Galle Fort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스리랑카를 식민지로 삼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차례대로 머문 그 땅이 아이러니하게도 역사가 돼 남은 거다. 골 포트 내에는 지금도 여전히 집과 학교, 교회, 법원 등이 자리한다. 교통체증까지 일어나는 이국적인 작은 사회를 좀더 깊이 보고 싶다면 포트 내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 묵어 가자.

마을을 둘러싼 성곽을 산책하는 재미도 놓치기 아쉽다. 20미국달러를 내면 까마득하고 아찔한 절벽 아래 바다로 다이빙을 대신(?)해 주는 이들이 있다. 골 포트 옆에 자리한 경기장에서 크리켓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온 마을이 축제다. 경기장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 경기장 방면 성곽을 가득 메우고 뜨겁게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Travel to Sri Lanka

▶비자- 스리랑카 공항에서 바로 발급받을 수 있다. 25미국달러. 신용카드도 가능.
▶날씨 5~11월의 우기와 12~4월의 건기로 나뉜다. 가장 더운 시기는 3~4월. 전체적으로 덥고 습도가 높은 편이다.
▶전기- 배려 있는 일부 호텔을 제외하고는 2핀 코드는 사용하기 힘들다. 미리 어댑터를 준비하거나 호텔에서 대여하면 된다.
▶호텔- 스리랑카는 허니무너도 만족할 만큼 호텔 수준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니곰보의 제트윙 비치, +94-66-4923584~6, www.jetwinghotels.com는 니곰보 해안을 보고 선 고급 호텔. 3개의 스위트를 포함해 총 78개의 객실을 갖췄다.
담불라 지역을 찾았다면 아마야 레이크(Amaya Lake), +94-66-4468100, 94-66-2231822, www.amayaresorts.com도 괜찮다. 바다처럼 넓은 아마야 호숫가에 자리한 곳으로 푸른 정원이 아름답다.
시나몬 그랜드 호텔(Cinnamon Grand Hotel), +94-112-437437, www.cinnamonhotels.com은 콜롬보 최고급 호텔 중 하나다. 깔끔하고 모던한 객실과 다양한 레스토랑이 압권이다.
▶레스토랑 레스토랑으로 따로 운영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호텔을 이용하며 여행한다면 대부분 식사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하게 된다. 담불라 폴론나루와 로드(Polonnaruwa Road)에 자리한 호텔 산다 디야(Hotel Sanda Diya), +94-66-7200336, 94-66-2284278에서는 스리랑카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이들도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골의 제트윙 라이트하우스(Jetwing Lighthouse), +94-91-2223744, www.jetwinghotels.com는 해안 절벽에 고풍스럽게 자리한 호텔. 바다를 바라보고 선 레스토랑의 정취가 일품이다. 콜롬보 멜버른 애비뉴(Melbourne Avenue)의 태국 레스토랑 싸얌 하우스Siam House, +94-112-595966, www.siamhouse.lk의 태국 정통요리도 깔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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