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경
㈜나스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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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이나 성탄절에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선물이 바로 책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책 읽고 공부하라고 하면 졸거나 나가 버린다. 태생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존재로 각인되어있으니 어쩌랴. 그런데 상상나라 국가 연합의 수도 ‘남이나라공화국’에 놀이터보다 더 재미있는 도서관이 등장했다고 해서 지난 주말 남이섬을 찾았다.

학창시절, 책만 보면 졸음이 쏟아졌다는 꼴찌 출신의 CEO, 강우현 대표가 만든 ‘신나는 도서관’이 궁금했다. 몇 주 전부터 그의 페이스 북에 사진과 함께 이 독특한 장소에 대한 자랑(?)이 이어졌기에 더욱 기대가 컸다. 지난 달 25일 개막된 세계 책나라 축제를 맞아 같은 날 문을 연 이 곳은 86개국 그림책 원서 5,000여 권을 소장한 국내 유일의 어린이도서관이다. 특이하게 도서관 안에 책들이 뒹굴고 미끄럼틀과 놀이기구들이 널려있다. 모든 책들은 표지 그림을 볼 수 있게 정면을 향해 전시돼 있고 밝고 편안한 분위기로 어린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책을 먹고 베고 뒹굴고 마시자’는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남이섬 세계 책나라 축제’의 슬로건이다. ‘거룩한 도서관은 가라’, ‘책을 읽기 싫다면 그냥 보면서 놀자’며 남이섬을 찾는 아이들을 유혹한다.

도서관 내 갤러리에는 덴마크 일러스트 동화전, 폴란드 동화 작가와 함께하는 동화책 읽기, 나만의 책 만들기 워크숍 등 열린 교실이 운영되고 5월말까지 계속되는 축제기간동안 체코 동화나라전을 비롯해 동화구연, 탁본놀이, 희망 동요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축제기간에는 동화책 3권을 가져오는 7세 이하 미취학 아동은 무료입장을, 다문화 가정이 오면 4인까지 입장료 면제다. 책만 보는 졸리는 90%이상의 평범한 아이들을 위해 읽는 책이 아니라 놀면서 보는 책, 도서관 가자고 하면 싫어하던 얘들이 막상 오면 가기 싫다며 울며 나가는 신기한 곳 이다.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면 아이들 스스로 책을 찾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보다 친근한 이미지의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동화작가 출신 CEO의 표정이 어린애처럼 해맑다. 신나는 도서관이 표면적으로는 놀이터 같은 콘셉트라도 실제로는 책의 격을 존중하고 기본을 알려주되 거부감 들지 않도록 편하고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하자는 것이 남이섬 신나는 도서관의 설립 취지이다. 축제 기간 동안 남이섬은 거대한 책 나라로 변해버린 듯 했다. 하지만 결코 거룩하고 지루한 책 무덤이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는 또 다른 문화공간이다. ‘한국의 디즈니랜드’나, 피터팬이 살고 있는 상상의 나라 ‘네버랜드’와 종종 비교되는 남이섬은 90년대까지만 해도 무미건조한 유원지였다.

강우현 대표의 취임 이후 10년이 채 안 돼 동화적 상상력이 넘치는 창조적인 문화공간이자 재활용품으로 장식된 에코 관광지로 변모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섬 곳곳에 기발한 상상력이 녹아 있지만 남이섬은 어른들이 더 많이 찾는 상상나라다. 연 150만에 이르는 방문객 가운데 전 세계 105개국에서 찾아온 외국인이 60만에 이른다. 보이는 풍경은 여느 관광지와 다를 바 없는데 왜 그토록 많은 관광객들이 열광하는 걸까? 책 축제는 책을 매개로하는 융합관광 콘텐츠 행사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축제지만 어른들도 배우는 동화의 세계다. 이 속에서 소통, 꿈, 상상을 나누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그것이 바로 여가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창조는 늘 처음이 어렵지만 그 다음부터는 모방만 잘하면 된다.

동네마다 하나씩 들어선 시립도서관 한 켠에 이런 공간을 만든다면 어떨까?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이 좋아할 것이고 아이들이 책과 함께 노는 동안 부모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더 이상 거룩한 장소가 아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설 것이고 책을 더 많이 읽는 한국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조만간 터키 문화관광부에 요청해서 신나는 도서관을 위해 터키 그림책도 몇 권 기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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