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프로맥파트너십 이사
akim@promackorea.co.kr

여행이 쉽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도 우리 가족은 여행을 자주 다녔다. 실상 거창하게 여행이라고 부를 것도 없었다. 자가용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전국의 도로 사정이나 관광 시설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던 시기였다. 그저 강원도에서 살아 가까운 주변에 좋은 곳이 많았던 환경 덕분이었다.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이 몰려서 자주 가던 곳이 한계령에 있던 오색 약수터였다. 도로 포장도 전혀 안 돼 있고 꼬불꼬불하고 좁은 도로가 계속되는 한계령은 쉽게 가기 어려운 곳이라, 당시에 이런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오색 약수터까지 가는 것은 지금 기준으로 일종의 힐링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어른들은 몸에 좋은 약수를 실컷 마시며 건강도 찾고, 계곡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도 힐링하자는 의도가 아니었을런지. 관리인이 없어도 그곳은 늘 조용하고 깨끗했다. 그 지역에 살던 분들이 생계로 운영하는 식당들은 허름하기는 하지만 현지 재료를 가지고 어머니의 손맛으로 만든 건강식을 판매했다. 우리가 늘 가던 식당은 나이든 자매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너무 구석에 있어서 찾기도 어렵고 작고 비좁았지만 언제나 오색 약수물로 만든 초록빛깔의 밥과 깊은 맛을 내는 음식을 내놓고는 했다.

그러던 곳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한계령 도로는 말끔하게 포장되는가 싶더니, 결국 오색 약수터도 완전히 변했다. 흩어져 있던 모든 식당과 가게, 여인숙을 철거하고 한곳에 일렬로 몰아 넣었다. 늘 무료로 마시며 서로에게 권하던 약수는 바로 앞에 요금소가 생기고 약수를 받아가려는 커다란 물통들이 줄을 섰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무슨 표준 설계도가 있는 건지 어디를 가나 입구 모습은 비슷비슷하다. 식당들은 모두 한 곳에 똑같이 정렬되어 있어 딱히 특징을 찾아내기도 어렵고, 음식도 다 비슷하며, 식당 앞에서는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한 호객행위로 넘쳐난다. 내가 아는 자매 아주머니도 그 곳 어딘가에 자리를 배정 받으셨는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한 분은 밖에서 손님을 불러대고 다른 한 분은 혼자서 음식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더 편해진 시설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는 했지만 고요하고 건강을 주던 힐링 여행지와 인간미는 사라졌다. 우리는 더 이상 그곳에 가지 않았다.

얼마 전에 다녀온 호주의 ‘아웃백’은 어릴 적 경험했던 불편한 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비포장 도로가 이어지던 그곳은 우기가 되면 진흙처럼 변해버려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런데도 도로 포장 계획 따위는 전혀 없다. 서울의 몇 배가 넘는 국립공원에 휴지통 하나 찾아볼 수 없고 앞으로도 비치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국립공원 관리인쯤 되는 사람이‘당신들이 가지고 온 쓰레기는 당신들이 다 가지고 가는 것이 맞지 않냐’고 물어왔다. 사람들이 정말 가져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쓰레기도 잘 안보였다.

전화는 지역에 들어서는 순간‘서비스 불가’라고 뜨고, 인터넷은 꿈도 꾸지 못한다. 저녁 7시 이후 소음을 내면 어마어마한 벌금이 부과된다. 멋진 리조트는 커녕 숙박시설로 쓰는 소박한 건물도 없다. 직접 텐트를 치든지 30여 개의 텐트형 숙소를 미리 예약해 이용해야 한다. 음식 재료를 먼 곳에서 공수해 와야 하니 자기가 먹을 만큼만 조리해서 먹는다. 우편 배달도 안되고, TV 시청도 안되고 신문도 없다. 세상과 단절된 생활 그 자체다. 그곳을 찾은 한 여행자에게 이런 불편한 곳에 왜 왔냐고 물으니‘도시에서는 없는 것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는 답이 돌아왔다. 교통 체증도 없고, 자신을 찾는 쓸데없는 전화도 없고,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늘 꿈꾸던 별똥별을 보면서 어릴 적 상상력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나. 이 불편한 여행지를 순례자처럼 일부러 찾아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연간 15만명이며, 한 번 온 사람들은 꼭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편리한 여행이 주는 장점은 아주 많다.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을 수도 있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에도 기여하니 더할나위 없다. 문제는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개성없는 개발이다. 어느 지역이 떴다 싶어 가보면 단기간에 어떻게 이렇게 다 만들었나 싶을 정도의 편의시설이 감탄스럽기는 하지만 감동은 전혀 없다. 불편함은 관광이 될 수 없는걸까? 불편한 여행은 그동안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렇게 없어도 삶이 얼마나 편안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런 주제로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니 어떤 이는‘그럼 해외여행에서 쇼핑과 옵션이 난무하는 불편한 여행도 참아야 하냐’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건 그냥 ‘불쾌한 여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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