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흔히 말하는 아침형 인간을 넘어 새벽형 인간이다. 오전2시 쯤 근무를 시작해 오후 5~6시 경 일을 마치고 6살과 2살 난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을 꽤 오랫동안 하고 있다. 일 하는 곳과 시차가 있고 아이들이 어렸을 적 새벽에 자주 깨다보니 아예 안 자버리던 습관이 몸에 밴 탓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시간이면 기상한지 15시간 이상 지나 피로가 누적된 나의 체력은 젖은 빗자루 마냥 바닥을 보인다. 한시도 몸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신장개업 집 풍선인형 같은 두 아이들의 체력저하를 유도하고, 잘 씻고 먹는 것에 대한 ‘딜’을 위해 종종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구경거리를 찾는다. 사는 곳이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희한한 동네이다 보니 나름 쏠쏠한 재미도 있다. 한 블럭만 가면 50년대를 연상시키는 허름한 아파트를 비롯해 <유한양행>마크가 떡하니 찍혀있는 갈색 나무벤치 의자를 환자 대기실에 놓고 손으로 처방전을 쓰는 병원이 있는가 하면, 바로 길 건너에는 집 한 채에 10억원을 호가하는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 있다.

아이들이 많은 동네라 모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문방구’도 빼놓을 수 없다. 동네 문방구는 여전히 정신이 없지만 팽이, 요요, 비누방울, 구슬 등‘추억 돋는’물건들도 꽤 많다. 심지어 백원 넣고 쭈그리고 앉아서 하는 눈 나빠지기 딱 좋아 보이는 검은색 네모 게임기가 있는 곳도 있다. 물건들은 주인만의 원칙과 마케팅 기법에 따라(절찬리 광고 중, 인기 캐릭터 순…) 적재적소에 어지럽게 널려있고, 아이들을 풀어놓으면 일단 몇십 분은 놀릴 수가 있다. 그런데 요 녀석들이 작고 시시한 장난감은 성에 안 차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토이저러스, 팬시전문점에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500원, 1,000원짜리 허접한 물건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아이들이 결국 집어 드는 것은 3~4만원 짜리 비즈악세서리 만들기(창의력을 키워준다며), 파워레인저 전화기(두뇌개발에 좋다며)같은 장난감이다. 그나마도 죄다 몇 번 놀다가 구석에 박힐 것을 알면서도 일단 아이들이 좋아라하니 그 동안 생각없이 참 많이 사줬지만,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사달라는 횟수도 전보다 훨씬 늘었고, 그 장난감을 소중히 다루고 친구로 여기기보다는 소모품으로 대하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걸 깨달았다. 배고플 때는 뭘 먹어도 감칠맛 돌지만, 막상 배가 채워지면 불만이 시작된다. 어느 집보다 덜하다, 잘 못 왔다, 이게 육개장이냐 MSG를 푼 국물이냐….

미국의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Paul A. Samuelson)은‘행복=소유/욕망’이라는 방정식으로 행복을 정의했다. 많이 가질수록 행복하다면 많이 가지는 것이 능사겠지만, 소유와 욕망은 늘 팽팽한 대척점에 서 있고, 욕망은 주어진 자원과는 반대로 무한하다. 즉, 욕망은 무한대(∞)니, 무작정 갖는다고 행복한 게 아니란 것이다. 원하면 원할수록 그 대상이 귀해지고, 막상 소유를 하고나면 또 다른 욕망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기다리는 법과 건전하게 욕망하는 법, 대리만족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일부러 일주일 후에 사준다고 약속하고, 실물과 닮은 그림을 그려주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 책을 읽어주어 그 장난감을 내가 얼마나 갖고 싶어하는지, 왜 가져야 하는지, 가진 후에는 어디에 쓸 것인지, 이름은 무엇으로 지을 것이고, 어떤 역할을 맡게 될 것인지를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이렇게 쟁취하듯 장난감을 얻었을 때의 만족감은 그냥 떼써서 주어진 것 보다 배가 된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귀찮고 너무 피곤할 때는 그냥 사주기도 한다.)

동시에, 어릴 적 문방구에서 누렸던 작은 행복들을 떠올려 본다. 작은 종이 딱지를 세상 최고의 보물로 경쟁하듯 모으는 재미나, 왕방울만한 눈에 노랑머리 종이인형을 오려서 종이 후크를 구부려 여러 옷을 갈아입히며 역할극을 하고 게임기의 버튼이 떨어져 나가라 손바닥이 벌게지도록 후려치며 미사일을 쐈던 기억. 50원 짜리 쫀디기와 깐돌이로‘우리 편’애들에게 한 턱 쏘던 맛깔나는 기억들은 단 몇백원으로도 가질 수 있는 행복이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고가의 장난감을 손에 넣고도 또 다른 장난감 광고가 나오면 마냥 부럽고 가지고 싶고, 우리반 누구는 가졌는데, 나는 없는 불행한 아이로 전락하고 만다.

<행복의 함정>의 저자 리처드 레이어드는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하는 이유로‘사회적 비교’와‘습관화’를 든다. 나 보다 많이 가진, 성공한 사람과의 비교를 멈추고,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는 것. 행복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가진 욕망의 정체를 깨닿는 것, 그리고 작은 소유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지혜라는 말이다. 단돈 몇백원을 쥐고 들어선 문방구에서 누렸던 행복감처럼 말이다.

*2002년부터 한국에 FIJI를 알려온 박지영 지사장은 최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지역학 공부까지 마칠 정도로 열정 가득한 워킹맘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깨알같은 인생의 재미를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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