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만 가지고 따진다면 해외여행 시장은 아직 경기침체의 직접적인 사정권에 들지 않은 것 같다. 얼마 전 발표된 4월 출국자만 보더라도 110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7% 증가했다. 인·아웃바운드 수요가 동시에 집계되는 5월 국제선 항공여객 통계는 387만 명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엔화 약세 등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줄었음에도 석가탄신일 연휴와 항공 좌석 공급 증대 등이 받쳐준 탓이다. 연초에 비해 상승 폭이 둔화되기는 했지만 징검다리 연휴가 있었던 6월도 수치는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체감하는 분위기는 발표된 숫자와 거리감이 크다. 설자리를 잃고 경영난을 호소하는 중소여행사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일부 중견 패키지 여행사는 지상비를 비롯해 직원들의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시장에서는 부익부 빈익빈의 푸념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려와 경계가 늘고 있다. 실제로 하나투어와 모두투어의 영업 실적은 여행업계의 양극화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하나투어의 6월 해외여행수요는 15만5,000여명으로 지난해 보다 21% 증가했고 올해 상반기 해외여행수요는 92만6,000여 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21.4% 증가했다. 모두투어도 13% 가량 증가한 7만5,000여 명을 모객했다. 상반기 실적은 47만1,500여 명으로 9.7% 늘었다.

반면에 패키지 여행은 하락세가 뚜렷하다. 여행신문이 창간 21주년을 맞아 실시한 소비자 조사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여행신문이 매년 실시하고 있는‘소비자 해외여행’조사에서 패키지로 해외여행을 하겠다는 응답은 2011년 24.5%에서 올해 16%로 줄어들었다. 패키지처럼 여행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소비자 자체가 적어진데다 그 나마도 대형여행사로 쏠리고 있으니 나눌 수 있는 파이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형국이다. 대형여행사의 욕심을 탓하고 시기하는 말들이 많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하나투어와 모두투어만 사라지면 남은 여행사들이 골고루 파이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울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시장은 생각처럼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하나투어나 모두투어가 없다 해도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우리투어’나‘함께투어’같은 또 다른 여행사가 등장할 것이고 해외의 대형여행사도 한국 시장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지난 주 여행신문에 소개된 일본 여행그룹 HIS의‘사와다 히데오’회장은 4명으로 시작한 여행사를 JTB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8,000명 이상의 여행 그룹으로 성장시킨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여행신문과의 인터뷰에서‘지금까지 일본에서 해외로 나가는 여행상품을 주로 기획했으나 앞으로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각만이 아니다. HIS는 이미 세계 도처에 400여 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고 작년에는 방콕에‘아시아 퍼시픽 에어라인’이라는 항공 자회사도 설립했다. 국경이 문제가 아니라 수요가 있는 곳은 어디든 공략하겠다는 의미다.

물론, 하나투어나 모두투어의 불합리한 대리점 정책이나 동반성장을 무시한 그릇된 영업 행위가 있다면 그때그때 지적해야겠지만 대형 여행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여행업은 이미 여행사끼리만 경쟁하는 시대가 지났다. 여행사는 이제 고객을 사이에 두고 항공사나 호텔과도 경쟁을 해야 하고 신용카드사나 면세점과도 수익을 가지고 힘겨루기를 해야 한다. LCC는 태생적으로 여행사가 아닌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영업 방식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외국의 대형 여행사들도 힘겨운 상대다. 개별여행이 늘어나면서 호텔예약을 앞세운 외국 여행사들도 자본과 네트워크, 기술력을 내세워 빠르게 한국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2012년 본지 조사에서 2.7% 수준에 머물렀던 호텔스닷컴의 인지도는 올해 8.2%를 기록했고 아고다는 6.7%에서 8.7%, 익스피디아는 4.1%에서 6.2%로 올라섰다. 작년 조사에서 13.5%에 머물렀던 이들 외국계 3개 여행사의 인지도는 올해 23.1%로 껑충 뛰어올랐다. 2배 가까운 성장이다. 이 상태라면 내년 조사에서 외국계 여행사의 비중은 더욱 높아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중소여행사의 입장에서는 사면초가, 첩첩산중의 고약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별여행 선호 브랜드나 호텔예약 업체 인지도 조사 결과를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두 조사 모두‘모른다’또는‘없다’는 응답이 2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돌려 해석하면 그만큼 시장에 진입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고로 모든 싸움은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누구를 상대로 어떤 싸움을 앞두고 있는지,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무엇이고 충분히 내 몸에 익혀 두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처럼 쉽지 않지만 결국 그 기본에서 정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 회사는 지금 괜찮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나만의 경쟁력은 무엇인지. CEO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어쩌면 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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