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섭
위투어스 대표
esshin@ouitours.com


‘가깝고도 먼 나라’ 우린 일본을 늘 이렇게 부른다. 힘없는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해 무려 36년 간 우리 민족에게 치욕을 안긴 그들에게 이 표현은 어쩌면 너무 점잖은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나의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해탄 넘어 일본은 늘 분노의 대상이기만 했다.

물론 지구촌 어디를 둘러봐도 국경을 마주하거나 인접한 국가끼리 사이 좋다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과 멕시코를 봐도 그렇고 독일과 프랑스를 봐도 그렇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보면 남에게 불이익을 안겨주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니 말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은 우리에게 너무도 아물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80년대 초 필자가 혈기방장 하던 시절,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가 반일 분위기와 어우러져 당대 최고의 국민가요 반열에 올랐었다. 게다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애창곡으로 불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양국관계가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한치도 발전하지 못했다는 걸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며칠 전 우리는 68번 째 맞는 광복절을 지냈다. 이쯤에서 한번 냉정해 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언제까지 우린 불행한 과거사를 ‘트라우마’라는 굴레로 엮어 미래를 애써 외면할 건가. 이젠 냉철한 현실인식으로 우리를 돌아 볼 때다. 독도와 위안부문제, 이 두 사안이 가까운 장래에 해결 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독도를 우리 것이라고 외치지 않아도 우리 것이 남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욱 전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유감이 남는다. 그렇지 않아도 우경화를 재촉하던 일본정부에는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 격이 됐고,‘겨울연가’이후‘한류’라는 문화상품에 매료돼 한국에 호의적이던 많은 일본인들의 한국방문을 주저하게 만들고 말았다.

광복절을 맞아 제안을 해보고 싶다.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애국심이나 민족혼을 일깨울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옮기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특정 사안과 관계 없이 양국간 교류와 우호를 도모한다는 대사관 존립의 본래 취지를 되찾자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아울러 일본이 국제사회의 권고와 스스로의 깨우침에 의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국가적인 사과와 보상이 있을 때까지 우리 정부와 국민이 함께 인내하자는 것이다.

얼마 전 축구 ‘동아시안게임’ 한일전이 있던 경기장에 우리 응원단 쪽에서 스포츠정신에 어긋나는 걸개를 설치해 논란이 있었다. 충분히 공감 가는 글이었지만 결국은 스포츠가 지향하는 친선과 우의와는 거리가 먼 것일 수 밖에 없고 양국민의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경제적인 측면으로 보자. 우리 경제규모보다 다섯 배나 큰 일본이라는 시장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면 어느 쪽이 더 손해 볼 지는 자명하다. 자존과 체면을 구겨가며 교류하자는 게 아니다.

일본관광객이나 방문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이나 상점에 ‘독도는 우리 땅’이란 일본어로 된 스티커를 붙여 두는 것이 애국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독도를 방문해 정치 퍼포먼스를 한다고 해서 극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래 전 직장의 친한 일본인 동료와 한반도의 분단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일본의 강점 후 해방이 되었지만 결국은 남북으로 갈라지게 된 것이 일본의 귀책사유가 된다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 친구의 반응에 적지 아니 놀랐었다.

지금도 해외출장 중 가끔 일본인 여행업자들과 비슷한 주제를 놓고 얘기하지만 의견 일치에 이른 적은 없고 강점기에 대한 유감이나 애석함을 표하는 말은 더욱 들은 적이 없다. 축구경기장에 욱일승천기가 올려져도 그들의 눈에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광복절을 맞으며 다시 생각해 본다. 진정한 극일이란 정신적, 물질적으로 넉넉해 지고 당당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용기는 용서하되 잊지 않는 것이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들에게 꼭 대답하고 싶다. 그 사과를 흔쾌히 받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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