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프로맥파트너십 이사
akim@promackorea.co.kr


호주 내륙 지역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긴 골프장’이라고 알려진 곳이 있다. 이 얘기를 하면 사람들 대부분이 몇 홀 짜리인지 또는 각 홀마다 얼마나 긴 곳인지를 묻는데, 사실은 이렇다. 그저 다른 골프장들과 똑같이 18홀이지만 각 홀과 홀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한 홀에서 골프를 치고 운전해서 90㎞를 달려가야 하고, 그 다음 홀 치고 다시 120㎞를 가는 식이다. 전체를 모두 끝내려면 서울과 부산을 두 번 왕복해야 하는 정도이니 최소한 4일이 소요된다.

그런데 막상 그 골프장에 가보면 페어웨이의 경계선이 어딘지 알 수도 없을 만큼 풀이 무성하여 공을 찾기도 어렵고, 그린은 정돈도 안되어 있다. 고급 골프장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하기 딱 좋다. 세계에서 가장 긴 이 골프장을 모두 마치면 손에 쥐는 것은 자기 이름이 적힌 인증서뿐인데도, 전세계 뉴스가 이곳을 소개했고, 인증서를 받기 위해서 호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곳을 찾고 있다.

이곳에 이런 엉뚱한 골프장을 만든 이유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은 마을 사람들의 열망 덕분이었다. 황량한 내륙 벌판에 직선 고속도로가 뻗어있고, 고속도로 주변에 드문드문 있는 마을들은 대부분 소규모로 어떤 마을은 50명이내의 거주자가 있는 곳도 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그냥 지나가버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마을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 골프장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실제로 차를 타고 첫 홀이 있는 마을로 가니, 골프장 표지판도 안보였다. 골프장으로 가는 표시조차 안되어 있는 불친절한 동네가 있다니 하면서 고개를 흔들고 있는 사이에 차는 동네 곳곳을 다 뒤지고 다니고 있었다. 덕분에 그 동네가 어떻게 생긴 곳인지도 눈에 들어왔고, 식당도 찾아내서 식사도 할 수 있었다. 결국 골프장 표지판이 없는 것도 전략이었다. 한 홀을 마치면 반드시 그 마을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 가서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하고 18개의 도장을 다 받아야만 비로소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허름해 보이는 안내소에 가면 반드시 각 홀을 보여주는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긴 골프장’을 순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기념품을 구입했다. 이 골프장이 생긴 이후에 존재조차 몰랐던 각 마을이 인지도가 올라감은 물론 경제 효과도 상당히 크다는 현지 담당자의 설명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내가 자란 강원도의 작은 읍 지역은 원래 관광하고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러다가 자동차로 15분 거리의 수변지역이 갑작스럽게 수상 레저 지역으로 떠오르면서 외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 주변에는 숙박시설이나 가게, 식당 등 편리 시설이 없어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있는 읍내에 와서 해결하고는 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관광객들이 읍을 관통하지 않고 바로 그 수상 레저 지역으로 갈 수 있도록 우회도로가 생겼다. 신호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직선 도로에 넓기까지 하니 이만저만 편리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우회도로가 늘 못마땅했다. 그 우회도로가 생긴 이후로, 사람들은 읍내로 들어오지도 않고 대부분 그냥 지나쳐서 수상스포츠 지역으로 가버린다. 주변 펜션들은 성수기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요금은 올라가고 서비스는 떨어지는데, 읍내에 있는 숙소나 식당들은 그런 성수기를 크게 실감하지 못한다. 관공서 입장에서 여행객 숫자는 분명 증가했겠지만 정작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혜택을 보지 못하거나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우회도로는 여행자의 편리함만을 고려했을 뿐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관광업의 본질은 여행객의 지갑을 어떻게든 열어서 가능한 한 많이 쓰고 가도록 하여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는데 있다. 그런데 그 우회도로가 생긴 이후로, 사람들은 읍내로 들어오지도 않고 대부분 그냥 지나가 버렸다. 꼭 경제적인 효과를 기대하지 않더라도, 읍내를 걸어 다니다 보면 볼 것도 많고 의외로 문화와 역사적인 명소도 있고, 장날이 되면 인심 좋은 아주머니들이 파는 신선한 야채들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도 있고, 그냥 구경하기만 해도 즐거운 광경들인데, 그 생동감을 우회도로 이용자는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혹시 지방으로 여행을 갈 때 우회도로를 만나거든 한 번쯤은 그 도로를 포기하고 읍내로 들어가 차를 세우고 돌아보시기를. 즐거운 여행은 그렇게 현지 사람들과 만나서 섞이면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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