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FIJI관광청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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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란에 가장 좋아하는 것, 가장 갖고 싶은 것을 쓰라고 하면,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도 ‘신상 전자제품’을 적는다. 특히 디자인이 예쁜 전자제품은 비슷한 용도를 가진 것이 이미 있더라도 어떻게든 손에 넣는 편이다. 특히 ‘한 입 깨문 사과’ 브랜드의 매니아인 나는 그 회사에서 나온 모든 제품을 가지고 있고, 단연 애장품 1위로 꼽는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최첨단 신상 전자제품이지만, 정작 난 대단한 기계치다. 음악도 제대로 옮길 줄 몰라서 일단 직관적으로 마구 해보다가 여차여차 뭔가가 되면 그대로 대충 사용한다.

아버지가 LG전자에 다니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 공부를 잘하거나 칭찬받을 일이 생기면 고가의 전자제품을 쉽게 부상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펜시한 것들을 제대로 써본 기억은 거의 없고, 일단 내 손에 들어오면 알 수 없는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해 결국은 고철 장식품이 되고 만다. 운전도 마찬가지. 나는 미국 캔자스(Kansas) 주에서 운전면허를 땄는데, 당시 내 소재지는 미주리(Missouri) 주 였다. 맹인에게도 운전면허를 준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쉽다는 도로주행에서 3번이나 낙방해, 주(州)를 옮기는 수고를 하고 나서야 겨우 운전면허를 딴 것이다. 지금도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차를 몰지 않는다.

내가 기계치인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절대 매뉴얼을 안 읽는다는 것. 몇 분만 투자해서 작동원리를 배우고 나면 몇 시간씩 낑낑거리며 조물조물하지 않아도 될 것을, 난 그냥 포장을 뜯어서 덩치가 큰 물체부터 만지기 시작해 여차해서 형태가 포장지에 그려진 것과 비슷해지면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보고 일단 기본적인 반응이 오면 만족하고 덮어버린다. 그 이상의 기능을 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몇 달 전 <남자사용설명서>라는 영화가 있었다. 물론 흥행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제목은 참 끌리는 영화였다. 만약, 정말 남자, 여자 사용 매뉴얼이 있다면 인간의 마음을 가장 애달프게 하고, 잠 못들게 하는 밀땅이나 사랑싸움 따윈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 이런 설명서는 없다. 기계처럼 매뉴얼대로만 조심스럽게 다루기만 하면 사람마음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내 마음을 나도 모르니 그게 누군들 집필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난 <사람치>는 아닌 것 같다. 기계는 단순해서 설계자가 하라는 대로 따르면 문제가 생길 일이 적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도전의식과 집중력이 생기는 지도 모르겠다. 기계는 설명서만 보면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사람 속내는 파도파도 모르고 알면 알수록 더 모른다. 그래서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기계나 사람이나 성의와 집중에 따라 그 용도와 소용이 지어지는 것 같다. 아무리 값비싼 기계라도 매뉴얼도 숙지하지 않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면 오래 쓰지 못하고 다양한 기능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사람도 그러하다. 어느 누구라도 위대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상대방이 그 잠재력을 얼마나 가치있게 보아주고 소용이 되도록 꺼내주느냐에 따른 것 같다. 서랍 구석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던, 한 때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그 녀석을 충전해서 다시 만져본다. 지금 다시 보니 신기한 기능들이 많다. 그럼 이제 내 마음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는 그 사람 한번 떠 올려 보자. 또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소용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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