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
주한FIJI관광청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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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전형적인 A형’임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알고 계실 것이다. 혈액형은 이름, 소속, 경력이상으로 개인을 소개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자기소개 필수 아이템이다. 혈액형에 기반한 성격 구분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고 특정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의 경향성을 따라 두루뭉술하게 덩어리 지어 놓은 것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사주도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간지(干支)에 몰려있는 사람들의 삶이 누적된 통계 자료고, 이와 유사한 간지를 가진 사람들의 운명을 비교·대조한다는 맥락에서 아주 무시할 수도 그렇다고 맹신할 수도 없는 일종의 주장이나 학설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혈액형주의자다.

혈액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연애의 세계에 입문하면서‘밀땅’의 구도를 분석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에서였다. 상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많이 만나보고 이야기하고 경험을 공유해야 하지만 혈액형의 경향성을 미리 알면, 더 빨리 친해지고 더 빨리 사랑받을 수 있는 일종의 테크닉을 터득하는 셈. 나름의 연륜과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로는 A형에게는 O형이 이상적이고, B형은 상극이며, A형은 서로 답답해지며, 분석적이고 다중성을 가진 AB형은 A형에겐 가장 난해한 성향으로 A형이 조종당하기 일쑤다.

전형적인 A형인 나는 처음 몇 번을 만나보면 굉장히 활달하고 직선적인 사람 같아 보이지만, 소심하고 생각이 많고, 눈치를 잘 본다. 싫은 소리 듣는 것을 싫어하며, 말 한마디를 곱씹어 대하소설하나를 쓸 정도로 생각의 실타래를 끊임없이 뽑아내기도 한다. 사람을 믿고 좋아하면 아주 오랫동안 변치않는 돌부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고 지구가 멸망하는 그 날까지 증오의 칼날을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갈고 있을 것이다. A형이 겉보기엔 소심하고 만만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들에게 한번 제대로 미움을 사면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혈액형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신기해 할 것이다(그런 말 할 사람 누군지 다 안다. AB형?). 나에게 혈액형은 먼저,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위에서 열거한 A형의 참으로 비호감인 성향을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한국에 가장 많이 분포한 혈액형이 A형이고, 무려 34%나 된다니, 진심으로 위안이 된다. 한편으로 혈액형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관계를 형성하게 될 즈음, 마음가짐을 준비하는 경전 읊기와 같은 기능을 한다. 또는 그 사람을 진심으로 알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요즘처럼 사람과 사람끼리 마음을 맞대고 친해지고 깊어지기가 어려운 때도 없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많은 수의 사람과 친구의 연을 맺지만, 대부분 직업/학교/유명세 등 그 사람의 포장을 보고 다가가 그 포장을 채 벗기지도 못한 채, 그저 아는 사람으로 만족하고 끝나버린다. 물론 혈액형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고, 개인차가 존재하지만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원초적인 네 분류의 동질성으로 우리가 되기도 하고 상종 못할 적이 되기도 하는 희한한 재미를 주고, 서로 한 껍질씩 벗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재밌는 화두가 되기도 한다. 혈액형은 일단‘나의 이야기’니 누구나 재밌어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유익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혈액형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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